[연중 제11주간 목요일]주님의 기도 (마태 6,7-15)
바오로 사도는 거짓 사도들에 맞서 자신의 사도직을 옹호한다. 바오로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그릇된 가르침을 전파하자 코린토 신자들은 그를 따라간다. 거짓 사도들은 바오로보다 말주변이 뛰어나지만,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참된 신앙을 계시 받은 바오로는 신자들을 위하여 복음을 대가 없이 전해 준다.(2코린토 11,1-11)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 가신다. 기도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기도는 일곱 가지 청원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용서를 청할 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마태 6,7-15)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마태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말에서는 “우리 엄마, 우리 집,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을 꼭 “나와 너”의 아버지가 아닌 경우에도 쓰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라는 말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 사람과 대화하면서 “내”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면 큰일 납니다! 자기 형제가 아닌 사람에게는 결코 “우리 엄마”라고 하지 않고 자기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우리 집”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은 분명 “아버지”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 형제라는 의미도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기도는 공동체적입니다. 양식을 청하면서도 나의 양식만을 청하지 않고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죄의 용서를 청해도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십사고 간청하며 또한 “저희를”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주님의 기도 전반부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올리지 않더라도 당신 뜻을 충분히 관철하시어 역사를 움직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원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간청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순종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지요.
전반부의 기도는 찬미와 감사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후반부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하느님의 손에 맡기며 기원합니다. 우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현재 필요한 일용할 양식과 영혼의 양식인 성체성사도 청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조건에서 우리가 범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아울러 미래에 있을 시험과 시련, 유혹과 악에서 구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기도는 기도의 본질적인 찬미와 감사, 속죄와 청원의 내용을 담은 기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완전한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옆 사람이 나의 형제라고 느껴지시는지요? 이 기도를 올릴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꺼이 받아 주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어 봅시다.
<주님의 기도>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것만 말하는 것, 이웃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고 말만 하는 것,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빈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기도가 될 수 없고, 그냥
혼잣말, 또는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이
말씀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앞의 말씀을 다시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모르고 계셔서 알려드리는 일이 아닙니다. 모르는
쪽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또
지금 자기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청할 때가 많습니다.
야보고와
요한이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높은 자리를 청하는 것 자체를 꾸짖으시지는 않았고,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또 어떤 사람을 위한 자리인지, 그리고
그 자리에 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마태 20,23-28).
예수님께서는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빈말'이 아닌 기도, 즉 '참말'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바람보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먼저 생각하면서 바치는 기도이고, 자기의
이익보다 이웃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면서 바치는 기도이고, 말만
하고 그쳐도 되는 기도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기도이고, 진심으로
바쳐야 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라는 말씀을 먼저 하십니다. '이렇게'
라는 말은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 기도하는 방법 등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기도문의 견본이 아니라, 기도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의(신앙인들의) 평소의 신앙생활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하여라." 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기도하여라." 라고 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인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는 사람이고, 아버지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나라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 살게 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신앙생활이란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대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이다." 라는 가르침이고, 주님을
위한 기도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가 됩니다.
'땅에서도'
라는 말은 아버지의 나라는 저승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지금의 인간 세상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고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우선
먼저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 있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에는 세 가지 중요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내가' 먹을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양식이고, 부귀영화가
아니라 오늘 하루 먹을 양식이고, 죽은
다음에 저승에서 먹을 양식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먹을 양식입니다.
주님은
신앙인들이 이 세상에서는 고생만 하다가 죽은
다음에야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우리가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혼자만 복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이 없습니다.
'용서'에
관한 구절은 우리 모두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와 '우리가'
먹을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기도와 모두 연결됩니다. 용서가
이루어져야 진심으로 일용할 양식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과도 함께 음식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참으로 함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구절과 '악에서' 구해 달라는 구절도 앞의
내용들과 연결되고, 이것도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기도이고, 다짐입니다. 사실
유혹이 사탄에게서만 오는 것은 아니고, 인간들이
서로 유혹하면서 죄를 지을 때가 많은데, 그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악'이 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기도 후반부는 단순히 개인을 위한 청원기도가 아니라, 전반부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지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일치를 이루어서 함께 구원을 받기 위한 실천 지침.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마태 6,7)
여러분은 기도를 많이 하는 편입니까?
하루에 몇시간 기도하나요?
몇시간이라뇨?
몇분이라 해야할까요?
신자들의 기도를 시키면
잘 하시나요?
써 주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난감한가요?
보통 많은 신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나는 기도를 잘 못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많이 못 한다는 것이더라구요.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여러분은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하시나요?
잘 하시나요?
요즘 세상은 가족끼리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고
밥 같이 먹기도 쉽지 않으니
대화할 시간도 별로 없지요?
그러나 가족끼리는
꼭 말로 안해도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해 주고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고
눈짓 하나로도 압니다.
하느님과의 대화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자꾸만 이것 해 주세요.
저것 해 주세요.
말만 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자녀임에 감사하고
나에게 잘못하는 이들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네요.
오늘은 많은 기도를 바치려
욕심 부리지 말고
"주님의 기도"를
정성드려 한번 바쳐봅시다.
천천히 진지하게
감사와 용서의 마음을 담뿍 담아서...
[출처] 2015.06.18.|작성자 알타반
지난 월요일 모임이 있어서 올림픽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올림픽 대교 쯤 가는데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차 앞에서 연기가 났습니다. 순간 비상등을 켜고 근처 현대 아산병원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차는 트렁크 부분이 파손되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고, 상대방도 과실을 인정하였기에 원만하게 사고는 수습이 되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차량의 블랙박스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경찰 분들께서 이 정도의 사고면 충격이 컸을 텐데 다행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사제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살핀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크게 다친 곳이 없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간은 아침 6시 40분가량이었는데, 그 시간에 저를 아는 분께서 저를 위해서 기도하였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무사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의 힘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매일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십니다. 동생 수녀님께서도 기도 중에 저를 응원해 주십니다. 그리고 복음화 학교의 가족들도 저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십니다. 제가 함께 했던 본당의 신자 분들 중에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구의 성소 후원회에서도 사제들과 사제성소를 위해서 매일 고리기도를 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런 기도의 힘들이 저를 지켜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자주 바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큰 핵심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모님도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의 뜻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에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성모님과 예수님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어려움이 없어지기를 기도하기 전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 나가듯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우리는 살면서 고난과 역경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고, 유혹에 빠지지 말며, 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되는 기도를 하라 반영억 신부
살아가면서 흔하게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기도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기억을 되살리고 약속을 지켰는가를 생각해 보면 소홀함이 많습니다. 약속도 하고 결심도 하지만 그저 흘려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하고 삶의 기도를 봉헌해야 효과 있는 기도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열매를 맺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원의를 알고 계시는 분께 떼를 쓰는 것보다는 제가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니 그 바람을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십시오. 하오나 제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제가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씀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허공에 대고 빈말을 되풀이하기 보다는 의심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들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니만큼 어눌한 말이면 어떻고 두서없는 말이면 어떻겠습니까? 그저 마음을 담고 사랑을 담아 믿음으로 올리면 그 정성을 헤아리셔서 흔들어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믿고 바라고, 믿고 감사하고, 믿고 기뻐하며, 믿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확고한 믿음이 있는 만큼 최선의 방법으로 들어주실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약속한 기도를 잊었다면 오늘 그 기도를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바라는 간절함이 큰 만큼 걸 맞는 삶으로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지적인 사색에 있다기보다는 사랑에, 그리고 의지의 실천에 더 있기 때문입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사실 간절함이 크면 클수록 입은 다물게 되고 마음은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아직도 입에 있다면 깊은 침묵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소음이 크면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기도하려면 먼저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 외에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성 보니벤뚜라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묵상할 때 감각적으로 무엇을 느껴야만 제대로 기도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감각적인 느낌 없이 기도하는 편이 하느님께 더 큰 봉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감각 없이 기도를 지속함으로써 그 사람은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낮출 줄 알게 되고 겸손하게 되어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 감각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면 그런 감각이 자칫하면 그 사람을 부풀게 만들고 자기가 성덕의 최고봉에 도달한 것처럼 느낀 나머지 교만해지고 게을러져서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그저 사랑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도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