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대축일>(2015. 6. 12. 금)(요한 19,31-37)

2015. 6. 12. 오전 7: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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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심 대축일>(2015. 6. 12. 금)(요한 19,31-37)

영원에서 영원으로 

(사제 성화의 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부터 시작하여 점차 퍼지면서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사제 성화의 날 (이동 축일) 사제 성화의 날


호세아 예언자는 죄의 늪에 빠진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전한다.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철없는 이스라엘을 돌보고 가르치며 길러 주시지만 이스라엘은 그 하느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범하지만,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에 이스라엘을 늘 용서하신다.(호세아 11,1.3-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에페소서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신비로운 계획을 기린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다.( 에페소 3,8-12.14-19)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8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1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14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신다. 창에 찔려 피와 물을 흘리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명을 지탱해 주던 마지막 피와 물마저 내어 주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신다.(요한 19,31-37)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요한19,31-37)


주님의 눈에 드는 사람     반영억신부


오늘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신 예수 성심을 특별히 생각하는 날입니다. 또한 ‘사제 성화의 날’로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그 삶을 충직하게 사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우리 각자의 마음으로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적인 마음이 지배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심지어는 기도 안에서도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니 언제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뀔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소망은 있지만 그에 따르는 노력과 정성은 여전히 소홀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 사실을 확인하느라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흘러넘치도록 주시는 영원한 생명수이며, 흘러나온 피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먹고 마셔야 하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두를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의 샘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성체성사만큼 잘 말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사실은 이미 예언된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의 모두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에 앞서 그분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냐가 소중합니다. 우리는 분명“주님 앞에”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로마8,5. 8).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 진실로 주님을 닮고자 원한다면 모든 것의 모범인 거룩하신 그분을 응시하십시오.”


알퐁소 성인은 “예수님의 성심은 당신의 사랑을 애원하는 사람들에게 청하는 바 무엇이든 틀림없이 채워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말가리다 성녀도 “예수님의 성심을 열심히 공경하고 의탁하는 영혼은 구원의 항구로 안전하게 도착할 것”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성심 안에 모든 바람을 이루시고 또한 구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오! 저는 그분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그분이 저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 제가 그분 마음에 들고 그분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비르지니수녀).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예수 성심, 사랑>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3-34)."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은, 그 사람의 숨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이미 숨지신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때 생긴 옆구리의 상처는 손과 발의 상처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이 틀림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표시가 됩니다(요한 20,20). (그래서 그 상처들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돌아가셨다는 것과 바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온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숨지셨음을 나타내는데, 이것을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1.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생긴 것처럼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교회가 생겼음을 상징한다는 것. (예수님에게서 교회가 생겼다는 것, 즉 교회의 기원은 예수님이라는 것.)

2. 피는 성체성사를, 물은 세례성사를 상징한다는 것.

3. 피는 예수님의 희생을, 물은 구원을 상징한다는 것. 

그런데 성경 본문에는 '옆구리'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심장 가까운 곳의 옆구리, 사실상 심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면, 피는 예수님의 사랑을, 물은 인류 구원을 상징하고,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인류를 구원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이라는 용어에서 '성심'은 예수님의 심장을 뜻하는데, 심장은 '마음'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마음은 곧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경축하는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사랑입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5)."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론'일 뿐입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삶'입니다.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사도들과 신자들은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의 사랑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머리로만 생각하고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실제 '삶'에서 그 사랑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승천 후에도 바오로 사도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사랑을 받은 사람도 있고, 직접적인 어떤 체험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드물고,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이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모두 하나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변화되어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든 그 사랑은 모두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사랑하여라."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그 사랑을 통해서 이웃의 사랑과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말은 '먼저' 주면, '나중에'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줌으로써 자기가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깨닫게 해 줍니다. 자기가 사랑 받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지금 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이미' 받았고, 늘 받고 있고, 그 사랑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시고 그 다음에 사랑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언제나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가 많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는 사랑을 받는 사람 쪽에서도 그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하느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은 이웃을 통해서 옵니다. (물론 직접 받는 경우도 있고.)

자기는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을 받은 적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보면, 한 번도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불행한 인생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받은 적 없다고 생각해서 주지도 않은 것이고, 동시에 준 적이 없어서 받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 간절하게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거나, 원하는 것과는 반대의 결과가 생겼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 아닌가?" 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달라는 대로 아무거나 다 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마태 7,11).



“나의 연인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 제발 그이에게 말해 주어요”(아가 5,8).
호세아서에서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아기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고 아기가 아프면 온통 아기 생각으로 옆에서 애가 타들어 가는 엄마처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마음을 전혀 몰라줍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생략되었지만 호세아서에서 우리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구절은 11장 2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모습은 늘 그랬습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인간은 늘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늘 품어 안으려 하셨고, 사실 매번 안아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관계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듯이 하느님도 이 못난 인간들을 결코 버리실 수 없으셔서 그대로 끌어안으시느라고 매번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왜 이렇게 나약해야만 할까요? 왜 거부를 당하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사랑이어야 할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곧 ‘신비’입니다. 그저, 사랑 때문에 앓고 계신 하느님께는 당신의 그 상처보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님의 성심에서, 인간이 입혀 드린 그 어떤 상처보다 큰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예수 성심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드러냅니다. 오, 거룩한 마음이여!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심오한 신비를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마태 11,25 참조). 또한 오늘 독서 에페소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3,18-19) 하고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대축일의 의미는 주님의 거룩한 마음, 곧 그분께서 몸소 보여 주신 한결같은 사랑과 그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를 실천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라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믿음을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성심의 사랑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그 성심의 빛 속에 살아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분의 성심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호세 11,8)

오늘은

예수성심대축일이며 사제성화의 날입니다.
저희 성심원도 주보축일을 맞이합니다.
축하해 주세요.
모든 사제들을 위해서도 축하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제 성화의 날'이 뭔가요?
어느 신부님이 농담삼아 "사제가 성내고 화내는 날이니
성 많이 내고 화 많이 내어 성화됩시다" 하셨다.

사실은
사제가 성내지 않고 화내지 않음으로써
성화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제는 오늘 호세아가 노래하듯
하느님같은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
그 어떤 죄인도 야단치기보다는
미어지는 마음으로
연민 가득찬 마음으로
위로하고 안아주는 그런 마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제들이 먼저
자신들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미어지는 마음으로
연민 가득찬 마음으로
받아주시고 위로해주시는
그 하느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달아야(에페 3,18)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사제들에게
그런 은총이 임하길 기도하자.

[출처] 2015.06.12.|작성자 알타반



요즘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장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자는 인생의 길이를 이야기 하면서 인생을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나무, 거북이와 같이 오래 사는 것들에 비하면 인생은 짧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루살이에 비하면 인생은 엄청나게 긴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80까지 산다고 하면 한 시간에 4킬로씩 걸을 때 지구를 10바퀴 돌 수 있고, 달나라를 3번 왕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구의 나이와 비교하면 사람이 80까지 산다고 할 때 겨우 1센티미터를 가는 정도라고 합니다. 이 또한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인생은 의미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의미 있는 삶은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사는 것과 같지만, 무의미 한 삶은 만년을 살아도 하루를 산 것만도 못 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미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되셨고, 그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아낌없이 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에서 겸손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목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난한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권한과 능력에서 겸손하셨습니다. 자연을 다스리고, 아픈 사람을 치유시켜 주시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우셨지만 그래서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으셨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겸손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잘못한 이를 용서하심에서 겸손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배반한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침을 뱉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고, 뺨을 때리며 모욕을 한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하느님께도 용서해주실 것을 청하시면서 겸손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품어주시는 사랑으로, 끝까지 믿어주시는 사랑으로, 고통과 수난까지 감수하시는 사랑으로 겸손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겸손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 된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결합된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호된다면, 우리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꿔진다면 우리들 역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겸손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한국교회는 성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에 따라서 지난 1995년부터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신을 살아가는 사제는 이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고, 신앙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년에 한번 사제 성화의 날이 있는 것은 1년에 한번만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늘 오늘 같은 마음으로 사제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의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성덕이 부족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지덕이 부족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건강이 부족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겸손하지 못한 사제들을 위해서기도해 주십시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예수 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 앞에 꿇어 경배하오니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저희는 이미 주님의 백성이오니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나이다.
    주님과 하나 되고자
    오늘 저희를 주님의 성심께 봉헌하나이다.
주님을 일찍이 알아 모시지 못한 사람도 많고
    주님을 알고도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난 사람도 많사오니
지극히 인자하신 예수님,
이런 사람들도 다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의 성심께 이끌어 들이소서.
주님께서는 목자이시니
    주님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이미 주님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어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나
    불목하여 갈린 사람들도 부르시어
    저희가 모두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한 우리에서 한 목자 밑에 살게 하소서.
주님, 거룩한 교회를 평화의 깃발로 세우시고
    모든 나라에 참된 평화를 주시어
    온 세상 어디서나 입을 모아
    저희를 구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원히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리게 하소서.
◎ 아멘.
예수 성심,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사제들을 위한 기도 1



○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사제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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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월요일]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 5,38-42)15.06.15조회 41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루카 2,41-51)15.06.13조회 48<예수 성심 대축일>(2015. 6. 12. 금)(요한 19,31-37)15.06.12조회 70<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2015. 6. 11. 목)(마태 10,7-13)15.06.11조회 99<연중 제10주간 수요일>(2015. 6. 10. 수)(마태 5,17-19)15.06.10조회 47[연중 제10주간 화요일]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 5,13-16)15.06.09조회 45<연중 제10주간 월요일>참 행복 (마태 5,1-12)15.06.08조회 359[연중 제9주간 토요일]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르 12,38-44)15.06.06조회 202[연중 제9주간 금요일]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르 12,35-37)15.06.05조회 44[연중 제9주간 목요일] 이웃사랑 (마르 12,28ㄱㄷ-34)15.06.04조회 45[연중 제9주간 수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마르 12,18-27)15.06.03조회 45<연중 제9주간 화요일>하느님의 것, 황제의 것 (마르 12,13-17)15.06.02조회 45[연중 제9주간 월요일](2015. 6. 1)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마르 12,1-12)15.06.01조회 235[연중 제8주간 토요일] 예수님의 권한 (마르 11,27-33)15.05.30조회 457[연중 제8주간 목요일] 바르티매오 소경치유 (마르 10,46ㄴ-52)15.05.28조회 44<연중 제8주간 수요일>제베대오의 두아들 (마르 10,32-45)15.05.27조회 47[연중 제8주간 화요일]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기념일 (마르코 10,28-31)15.05.26조회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