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금요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마태 6,19-23)
거짓 사도들을 물리치려고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들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그들과 논박을 벌인다. 물론 바오로도 이러한 자랑이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논리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적법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자기가 겪어야 했던 수고를 열거한다.(코린토 2서 11,18.21ㄷ-30)
예수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재물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또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판가름 난다. (마태 6,19-23)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바오로 사도가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라고 계면쩍어하면서 말을 시작하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잔뜩 늘어놓을 때 듣는 것을 민망해하면서도 정작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도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자랑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대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거짓 사도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바오로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온갖 수고와 고생과 고난을 겪었다고 밝히는 이유는, 코린토 신자들이 그런 기준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들이 그릇된 교설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지위와 학력과 재산이 뛰어나다고 해서 남다르게 대접받아야 하며 더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가 참된 사도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속된” 것입니다. 그런 “속됨”에 빠지지 않으려고 바오로는 즉시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가 비록 속된 세상에서 살아갈지언정, 속된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2코린 10,3). 그러니 속된 자랑거리나 자격을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이라고 하여 늘 특별나고 특출한 행동이나 선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마에 ‘성인’이라는 표찰을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성인도 우리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 가는 성인과 평범한 사람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재화를 나눌 때나 선행을 할 때에, 평범한 사람은 앞과 뒤를 충분히 재고 나서 ‘아니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예’ 하고 대답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마태 6,19-20)."
이
말씀을 간단하게 줄이면, "세속은
허무하게 사라지지만, 하느님 나라는 영원하다."입니다. 이
말씀에서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라는 말을, "자신만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로 읽을 수도 있고,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않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라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여라." 라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혜로운 일이고,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을 땅에 쌓아 두는 것은 언젠가는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않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다." 라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보물을
땅에 쌓아 두기만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가 되는데,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 되기는커녕 자신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땅의
재물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면, 땅에서는
그 재물이 모두 없어지겠지만, 하늘에 자신의 보물이 쌓이게 됩니다.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훔쳐 간다는 말씀은, 언젠가는
모두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고, 지금은
'자기의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지 않는 귀금속과
보석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
도둑들이 훔쳐 가지 못하도록 잘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후손에게
모두 물려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는 말씀에서 중요한
말은 '못한다.' 라는 말입니다. (하늘에
좀과 녹과 도둑들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못한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어떤 것도 건들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는 보물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과 함께 영원합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이
말씀은, "네가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느냐에 따라서 너의 인생이 결정될 것이다.", 또는
"네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재물을
땅에 쌓아 두기만 하는 사람은, 또
'세속의 것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땅과
함께 사라질 것이고,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또
하느님 나라에서 받게 될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이 허무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우리는 사는 동안 '허무함'을 자주 경험합니다. 그러나
'영원함'은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일입니다. 도대체
영원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본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냥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과 지상에서의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 그럴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은 소중한데, '영원함'은
믿을 수 없거나 실감나지 않거나 너무 멀게 느껴지거나... 그것이
바로 믿음 없는 사람이 더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 6,22-23)" 이
말씀에서 '눈'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신앙으로, '몸'은
인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서 실천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향해서 가게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를 앞의
보물에 관한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네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보물이 아니라면 너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느냐?" 라는
뜻이 됩니다.
(영원한
줄 알았는데 금방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들을 우리는 자주 경험합니다. 연인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기로 맹세했다가 몇
년 가지도 않고 사랑이 식어버린다든지...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 권력, 명예 등이 영원히,
또는 최소한 죽을 때까지 만이라도 지속될 줄 알았는데,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고, 허무하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든지... 그런 일들.)
흔히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고 말하는데, 후세에 길이 남을 이름이 영예로운 이름인지 수치스러운 이름인지, 하느님께서 알아주시는 이름이 될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지워버리실 이름이 될지... 하느님께서 알아주시지 않고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이름을 길이 남긴다고 해도 먼지처럼 사라지는 하루살이와 다를 것 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부자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가난하며, 병든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가는 것들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가 깃들어 있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용문 청소년 수련장에 있을 때입니다. 서울에 일이 있으면 주로 용문 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한 자매님이 제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서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나요?’ 저는 제가 서울로 가기 때문에 ‘저를 따라 오셔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될 줄은 잘 몰랐습니다. 그 뒤로 불교 신자인 자매님의 집을 방문하여 기도를 드렸고, 투병 중에 있는 형제님이 대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고, 형제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차(茶)에 대한 공부를 하신 자매님은 저에게 맛있는 차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제가 차를 다 마실 즈음이면 새로운 차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다기 세트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새로이 집을 장만하신 자매님 가정을 방문하였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차역에 있었지만 그 자매님은 유독 제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무척 선해 보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네요. ‘눈은 마음의 등불입니다.’ 어쩌면 선한 마음은 그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스 북에서 저보다 훨씬 멋진 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셨다고 합니다. 학교로 가는 길에 한 노인이 집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수님은 출근길에 노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주말에는 노인의 집 정원의 잔디를 깎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면서도 노인의 가족은 누구인지, 노인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잘 몰랐다고 합니다.
2년이 지났을 무렵, 학교로 가는데 노인이 없어서 궁금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의 가족들이 교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노인의 유언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세계적인 기업인 코카콜라의 회장님이셨다고 합니다. 노인은 2년 동안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교수님에게 자신의 유산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노인이 남겨준 유산은 우리 돈으로 2500억 원이랍니다. 덤으로 노인께서는 회사의 주식 5%을 교수님에게 넘겨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상대방이 누구인 줄 몰랐지만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엄청난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을 학교를 위한 발전 기금으로 기증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학교의 총장이 된 교수님은 엄청난 재산이 있었지만 늘 같은 시간에 학교로 출근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을 재산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금, 다이아몬드, 고가의 미술품, 땅, 현금’은 아닐 것입니다. 하늘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 결코 남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재물, 사라지지 않은 재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결실인 희생, 봉사, 나눔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하늘나라에 우리의 재물을 쌓아 보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1)
여러분의 보물1호는 무엇인가요?
1~5호까지 한번 나열해 보세요.
자, 되셨나요?
그럼 이제 그 보물들 중에
가장 빨리 없어질 것부터
순위를 역으로 매겨 보세요.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게 진짜 보물1호입니다.
진짜 보물은
그래서 물질적인 것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보물이긴하지만 영원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진짜 보물은
영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칫
가짜 보물을 진짜로
알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은 나의 진짜 보물1~5호를
다시 정해보는 날 됩시다.
[출처] 2015.06.19.|작성자 알타반
나의 보물 1호 반영억 신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요? 천상을 그리워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의 보물 1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으로 족합니까?
이 시간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2,7-8).
세상의 사람들은 감히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지배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서로를 섬기면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믿는 이의 삶은 당연히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아는 바를 행함으로써 선한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워 기도하신 후 특별히 열 두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뽑힌 이들을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죄인으로 멸시 받던 세리 마태오, 혁명당원 시몬, 배반자가 된 유다, 베드로…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한 것이 실패였나요? 그 반대입니다. 품이 크시니까 모든 과거를 용서하시며 미래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희망을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허물을 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용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오직 사랑이라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때때로 기적을 베풀고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능력을 드러냈을 때, 딴지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소신 있게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도 시작한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합하고 선하다면 흔들림 없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8).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모든 멍에와 짐을 예수님께 돌려드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살피시기 바라며 부디 주님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의 날이 되길 빕니다. 한 점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요,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주님의 눈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볼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늘의 문은 여기 삶의 자리에서 열리고 있는 만큼 우리 마음이 늘 천상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