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화요일]좁은 문으로 (마태 7,6.12-14)
아브라함과 롯은 함께 하란을 떠났다. 그들에게 많은 가축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먼저 원하는 땅을 선택하게 한다. 그래서 롯은 요르단 들판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간다. 그 뒤에 하느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다. (창세 13,2.5-1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거기에 도달하는 그 길은 비좁다고 말씀하신다. 생명에 이르고자 한다면 많은 사람이 가는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좁은 길로 가야 한다. (마태 7,6.12-14)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성경 공부 과제물로 제출한 글에 좁은 문, 좁은 길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문이 넓다 해도 수많은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문은 좁아질 수밖에 없고, 반면 길이 좁다 해도 그 길로 가는 사람이 없다면 길은 넓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참으로 지혜로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좋은 예가 오늘 독서에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에서 아브라함이 한 일은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이서 땅을 나누어 가져야 할 때, 상대편에게 좋은 몫을 고르라고 선택권을 선뜻 내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거나, 여럿이 음식을 먹거나, 호텔이나 피정의 집 같은 곳에서 방을 배정하다 보면 쉽게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채소를 살 때도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것을 먼저 선택하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경쟁이 치열한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롯에게 좋은 몫을 양보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길에는 경쟁이 없었고 그의 문은 넓었습니다. 탐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멸망으로 이르는 문은……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뒤좇으면서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이 길이 올바른 길인지 짚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으로 이르는 길은 비록 작은 길이지만 비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의 정신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크고 거창한 일을 하라고 요구하셨다면 쉽게 순명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일을 요청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무시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만이 큰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되겠지요.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라.> 송영진 모세 신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 '거룩한
것'과 '진주'는 하느님 말씀, 복음, 성사 등을 뜻합니다. 개와
돼지는 우상 숭배자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 죄
속에서 살고 있는 타락한 자들을 뜻합니다.
묵시록을
보면 '개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개들과
마술쟁이들,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을 좋아하여 일삼는 자들은 밖에 남아 있어야 한다(묵시 22,14-15)." 바오로
사도는 '개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거짓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필리 3,2)."
어떤
가나안 여자가 와서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강아지'
라고 부드럽게 표현하시긴 했지만, 이
말씀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가나안 여자의 청을 끝까지 거절하지는 않으셨고, 그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마태 15,28). (그
여자는 자기가 강아지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앞으로는
자녀로서 살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라." 라는 말씀은 '무조건'
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선교활동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기 전에 먼저 개들을 자녀들로 변화시켜라." 라는
뜻이 됩니다. 사실
선교활동이란, 하느님도 예수님도 복음도 모르는(또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거룩한
것을) 주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냥 아무에게나 막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비신자
입장에서 말하면, 믿는다고
'말로'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세례를 받을 수 없고, 자기가
무엇을(누구를) 왜 믿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또
믿음을 실천해야 하고, 죄
속에서 살고 있다면 우선 먼저 그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비신자 교리 교육 기간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라." 라는 말씀은 '거룩한
것'을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는, 즉
거룩하지 않은 일에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성물을 부적처럼 사용하는 것도 거룩한 것을 함부로 취급하는 일이 됩니다. 예를
들면, 운전할 때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고, 난폭
운전, 신호 위반, 과속, 음주 운전 등을 하면서 차에
십자고상과 성모상이 있으니 교통사고가 안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미신이고,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는 것처럼 함부로 사용하는 일이 됩니다. (신앙인은
더욱 모범적으로 교통 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의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몬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면서, '저에게도
그런 권능을 주시어 제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사도 8,18-19)."
그때
베드로 사도는 시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하느님
앞에서 그대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일에 그대가 차지할 몫도 자리도 없소. 그러니
그대는 그 악을 버리고 회개하여 주님께 간구하시오. 혹시
그대가 마음에 품은 그 의도를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가
보기에 그대는 쓴 쓸개즙과 불의의 포승 속에 갇혀 있소(사도 8,20-23)."
이
말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시몬은 이미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사도 8,13). 그래서
그 일은, 신앙인들이
'거룩한 것'을 자기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했던 일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경우에 돈을 받는 일과 돈을 주는 일을 모두 '대죄(신성
모독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모습들을 자주 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거액의 헌금을 바치면 지옥과
연옥을 면하고 천당으로 직행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또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서 헌금만 많이 바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용서받기는커녕
죄가 더욱 커질 뿐입니다. (우리는
옛날 중세시대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혔을 때, 펠릭스
총독은 바오로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뇌물을
받으려고 바오로를 석방하지 않았습니다(사도 24,26). 만일에
그때 바오로 사도가 총독에게 뇌물을 주고 풀려났다면? 그것은
정말로 믿음 없는 태도가 됩니다. (그랬다면
바오로는 존경받는 위대한 사도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종교박해
때에 비슷한 일이 많이 있었는데, 순교자들은
돈이든 인맥이든 간에 세속적인 방법으로 풀려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사는 것은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라." 라는 말씀을 "거룩한 것을 받았다면 개가 되지 마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끝까지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등지고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가고, 다른 마음을 품고, 하느님이 아닌 것을 믿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닌 것을 희망한다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 자녀의 위치에서 개의 위치로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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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 아브라함은 참으로 대인배였나 봅니다. 조카 롯과 함께 큰 땅과 많은 가축들을 갖게 되었는데 재산이 많으면 욕심이 발동하여 형제지간에도 다툼이 일어나듯이 조카와 큰 갈등이 일어나네요. 이러한 갈등 때문에 형제나 친인척들간에 등을 지고 사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지요. 아브라함은 롯의 아저씨로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적어도 6:4 정도로 재산분할을 요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5:5로 하면서도 우선선택을 조카 롯이 하게 함으로써 큰 양보를 합니다. 오늘 예수님도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남에게 해 주어라"고 하시네요. 아브라함처럼하라는 것이겠지요. 내가 좀 손해보는 듯하는 것이 남을 기쁘게 해 주면서도 결국은 더 큰 은총과 축복을 받게 해 주기에 이익이 됩니다. 오늘 그렇게 손해같은 이익을 체험하는 복된 날 되소서~~^^ [출처] 2015.06.23.|작성자 알타반 |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소중한
이심전심의 지혜가 무언지를 만나게 됩니다.
상대의 마음하나 먼저 헤아릴 수 없는
어리석고 고집스런 우리 마음입니다.
옹졸하기 짝이 없는 저의 인격을
오늘 복음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기심과 욕심을
다시 가다듬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격의 정신을 되살리시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자신이 소중하듯
남도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불행한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이기적인 소통에서 시작됩니다.
이기심은 결국
우리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참된 배려는
우리의 이기심을 멈추게 합니다.
이해와 사랑을 배우지 않고서는
우리의 인격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람다운 삶이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삶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마음에 새기며 잊지말아야 할 정신은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는 정신입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존중과 배려의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마음을 헤아려주고 마음을 나누게되면
생명의 문은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이 됩니다.
(한상우바오로 신부)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이 이야기는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나온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7,12)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10,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