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목자 없는 양들처럼 (마태 9,32-38)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물렀던 야곱은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형 에사우 만나기를 꺼려하고 두려워한다. 야뽁 건널목을 건너기 전 그는 밤새 하느님과 씨름을 한다. 야곱은 끝까지 겨루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내고는 물을 건너 에사우를 만난다. (창세 32,23-33)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고쳐 주신다. 도움이 필요한 이가 많았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라고 말씀하신다.(마태 9,32-38)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마태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목자 없는 양들처럼>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5-36)."
이
내용을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보시고 나서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것을 아셨고, 그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고,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아셨고,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셨고, 그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모든
고을과 마을"이라는 말은 '온 세상'을 뜻합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활동은 '모든 사람을(전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병자들과 장애자들을 고쳐 주신 일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 죄인들을 회개시키신 일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실
인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 모든
사람은 전부 다 하느님 앞에서는 '허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죄 속에서 살고 있다면 전부 다 '병자들'입니다. 병들고
허약한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힘을 주시면 누구든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누구든지 믿고 회개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는 뜻입니다. "가엾은
마음"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모두 사랑과 자비라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의
활동에는 사랑과 자비 외에는 다른 목적도 이유도 없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다." 라는 말은,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의 모든 인간들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구세주를
갈망하면서 기다리던 사람들이든지, 하느님을
믿지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든지, 아예
하느님을 모르고 안 믿는 사람들이든지 간에 모두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이라는 말은, 실제로 목자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목자가
있는데도 없는 것 같은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원래
하느님은 '목자'이신 분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그러니까
단 한 순간도 목자가 없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다." 라는 말에서 "이리
떼 가운데에 놓여 있는 양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마태 10,16). 내적
욕망, 세속의 유혹과 마귀의 유혹, 정치적인 억압, 박해, 생활고, 기타 등등, 온갖
어려움들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기를 꺾어 놓아서 사람들이
마치 목자를 잃고 이리 떼 가운데에 놓여 있는 양들처럼 된 상황...
이
내용 앞에, 예수님께서 마귀 들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고쳐
주시는 이야기가 있는데(마태 9,32-33), 이
이야기를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사람들을 구해
주신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살면서 마귀들에게 시달리고 있던 사람들을 구해
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귀
들려서 말을 못했다가 마귀가 쫓겨나자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마귀가 "말을 못하게 만드는(또는 말을 막는) 마귀"였다는 뜻입니다. (말을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 '언론 탄압'과 비슷합니다.거꾸로
말하면, 언론 탄압은 마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태 9,34)."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말을
못하게 만드는 마귀도 예수님을 비방하는 바리사이들도 사람들을
억압해서 목자 없는 양들처럼 만들어 버리는 악한 세력입니다. 사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은 사람들의 말을 막는 짓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요한 9,22)."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입니다(루카 4,18). 그러나
중요한 점 한 가지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해방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해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쪽에서도 그 해방을 받아들여서 자유인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을
못하는 것과 말을 안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목자라는 것을 믿는다면 목자 뒤를 잘 따라가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안 믿는 세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면 세속의 생활이 편안하겠지만, 그것은 스스로 목자 없는 양처럼 사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힘들고 불편해도 세속 사람들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목자가 있는 양으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의견이 달라 다투며 힘을 겨루면, 이긴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하느님을 이겼으니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야곱은 물을 건너가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겨룹니다. 물을 건너가는 것이 싫고 두려운 것이 야곱의 심정이고, 그가 물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도전장을 던지십니다.
야곱이 택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씨름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야곱은 물을 건너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피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야곱이 진 것이지요.
두 번째 길은 하느님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 끝까지 놓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야곱은 다른 길을 찾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점점 더 억센 힘으로 그를 치신다 해도, 그 하느님의 공격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하느님과 겨루어 이깁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밤을 지새우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뜻 앞에서 야곱은 끝까지 버티어 냅니다. 그 하느님의 뜻을 내던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받아 안는 것, 이것이 하느님을 이기는 것입니다.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창세 32,27)
여러분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 때문에
밤새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야곱이 그랬네요.
형을 속이고 이국 땅으로 도망갔다가
이제 식솔들을 거느리고 고향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형 에사오가
절대로 반갑게 맞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태산 같았지요.
나를 때려 죽이려 할 텐데
어떡해야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가기 싫지만
가야 할 상황이고
가더라도
형이 반가이 맞아주는 상황이 되어야 할 텐데
도무지 해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요.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해법을 가르쳐주기 전엔 죽어도 못 놓아 드린다고
강짜를 부립니다.
하느님마저도
그 강짜에 굴복하시고
혀를 차시며 해법도 가르쳐 주시네요.
오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거든
야곱식으로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하느님께 강짜를 한번 부려 봅시다.
어거지로 떼를 써 봅시다.
하느님이 "내가 졌다" 하고
껄껄 웃으시며 해답을 주시지 않을까요.
[출처] 2015.07.07.|작성자 알타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