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수요일]마귀들과 돼지 떼(마태 8,28-34)
독서 말씀으로 이번 달 초반에는 창세기가, 후반에는 탈출기가 이어진다. 오늘 독서에서 사라에게 쫓겨난 하가르는 아기가 죽어 가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그 아기를 돌보시어 하가르가 우물을 발견하게 하신다. 하느님의 약속은 이사악을 통해 이루어지겠지만,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창세 21,5.8-20)
가다라인들의 지방에서 마귀 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본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다. (마태 8,28-34)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마태 8,28-34)
예수님께서 호수 28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야고보 사도는 마귀들도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무서워 떤다고 강조하면서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는데(야고 2,17 참조), 오늘 복음의 마귀들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이 마귀들은 남들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자기들을 쫓아내실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만 구원하고는 아주 멀고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그 돼지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점은 마귀들의 파멸을 뜻합니다.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습니다. 물 또한 때로는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혼돈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여하튼 오늘 복음의 마귀들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라는 마귀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과 함께 계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그분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 오히려 자기들을 방해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과 함께 있기보다 부정한 돼지 떼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하느님을 뵙고도 구원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궁금한 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 상황을 목격하고 예수님께 자기들의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도 혹시나 내 소유인 돼지를 잃지 않으려고 예수님께서 제발 멀리 가 주시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귀들과
돼지 떼>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가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이 쫓겨나게 될 것을 알고 근처에
있는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마태 8,28-31). 그런데
돼지들은 마귀들이 들어오자 그것을 거부하고 집단 자살을 해버립니다(마태 8,32). 그
일을 알게 된 지역 주민들은 예수님께 떠나라고 요구합니다(마태 8,33-34).
복음
말씀의 본문을 보면,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마태 8,34), 내용과 뜻을 생각하면, 떠나달라고
'간청'한 것이 아니라 떠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상 예수님을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가다라인들은 왜 예수님을 거부했을까?
1)
가다라인들은 하느님을 모르고,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다른 신을(우상을)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낯선 이방인이었을 뿐이고, 마귀들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권능이 두렵기만 했을 것입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예수님께 떠나라고 요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루카 8,37).
2)
'두려움' 외에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귀들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겠지만, 또
그들도 마귀들이 쫓겨난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마귀들이
자기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익숙한 생활과 관습과 종교를 버리는 것도 싫어하고, 새롭고
낯선 신, 또는 낯선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도 싫어하는, 즉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루카 5,39)."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안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이론과 사상만 좋아하다가 신앙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낡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새로운 가르침을 찾아다닌다면, 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찾아다닌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버리고 '안
좋은 것, 나쁜 것'을 가지려고 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새로운
것만 찾다가 이단에 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3)
가다라인들이 물질적인 손해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돼지
떼는 모두 '이천 마리쯤'이었습니다(마르 5,13). 그래서
돼지 떼의 주인은(또는 주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쩌면
주인은(주인들은) 예수님께 손해 배상을 요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가
예수님에게 돈이 없음을 알고 쫓아낸 것은 아닐까?
그들이
영적인 이익보다 물질적인 손해가 더 크다고 계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기들을
괴롭히던 마귀들이 쫓겨나서 얻게 된 이익은 적거나 없고, 돼지
떼를 잃은 피해는 너무 크다고... 또는,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때 얻게 될 이익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계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영적인
이익과 물질적인 이익은 원래 비교할 수 없는 일이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하나를 따서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일을 대표적인
예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열매 하나를 얻고 에덴동산에서의 행복한 삶을 잃었습니다.)
4)
혹시 그들은 직접적인 재산 피해만 없다면 마귀들과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마귀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고 마귀
들린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내 재산'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랑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에
그들이 마귀 들린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했다면, 또
마귀들이 자기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마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거나, 누군가가
와서 마귀들을 쫓아내 주기를 바라는 중이었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을 크게 기뻐했을 것이고, 예수님께
고마워했을 것이고, 예수님을 환영했을 것이고, 자기들과
함께 살자고 예수님께 청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 떼가 죽은 일은 마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가다라인들의
모습과 어떤 사마리아인들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어떤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시고, 그
여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자의 말만 듣고 예수님께 머무르시기를 청합니다(요한 4,40).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에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말씀만'
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예수님과 함께 살기를 원했습니다.
가다라인들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었고,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다르고, 또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에는 마귀 들린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마귀들이 설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도 사마리아인들의 모습은, "은총은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게 된다."는 것을 잘 나타냅니다. (가다라인들은 은총을 주셨는데도 안 받으려고 해서 못 받은 사람들이고.)
◆ 어떤 관계인가요? ◆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마태 8,29)
올해의 하반기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전반기의 삶은 어떠하셨나요?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꽤 있을 겁니다.
이제 하반기를 더 열심히
시작합시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2천년 전의 나자렛 사람 예수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하느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결국 돼지 떼에게 들어가
물에 빠져 죽게 되는
마귀들과 같은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사돈에 팔촌보다도 더 먼 이웃인가요?
아니지요.
여러분은 하느님과 부자지간이고 부녀지간이지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니까요.
여러분은 예수님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사제지간이지요.
우리에게 그 아버지를 가르쳐준 스승이며
우리의 맏형이고 큰오빠이시지요.
여러분과 저는
어떤 관계인가요?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렇듯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살아가니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 아니겠어요?
관계의 축복을
세상사람들과도 나눌 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서로 형제가 됩니다.
오늘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물에 빠져죽은 마귀들린 사람은
무덤에서 나왔음을 유념하십시오.
무덤은 고립과 불통의 상징입니다.
7월은 더 적극적으로
아름다운 관계 회복을 위해
소통하는 달로 삼아 보면 어떨까요?
[출처] 2015.07.01.|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