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마태 8,23-27)

2015. 6. 30. 오전 6: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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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마태 8,23-27)


하느님께서는 죄로 물든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결정하셨다. 아브라함의 간청으로 하느님께서는 의인 열 명이 있다면 그 도시들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으나,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시어 롯과 그 가족이 멸망을 피하게 하신다. (창세19,15-29)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자,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호수를 꾸짖어 풍랑을 가라앉히신다. 이를 본 사람들은 과연 이분이 어떤 분이신가 놀라워한다. 이 기적은 자연 질서를 총괄하시는 예수님의 권능을 드러낸다. (마태 8,23-27)

풍랑속의 예수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마태 8,23-27)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도시들의 멸망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침묵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진노하실까 두려워하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하느님께 청하고, 청하고 또 간청했습니다. 그 결과에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소돔과 고모라를 내려다보러 갑니다. 아마도 밤새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몇 사람이나 되는지, 그가 아는 이들을 모두 헤아려 보았을까요? 열 명에서 더 숫자를 줄였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께 더 애원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가도 고민했을까요? 어쨌든 아침 일찍 “자기가 주님 앞에 서 있던 곳으로 가서”, 자기가 주님께 매달렸던 그 자리로 가서 결과를 확인합니다.


그 장면을 보고 아브라함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록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가 그 자리에 갔다는 것은 기록합니다.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 가서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미 그의 몫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느님의 계획을 알았던 그의 몫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청하는 것뿐, 그 이상은 오직 하느님의 몫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라고 해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아무런 유보 없이 바라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은 다수의 악이 아니라 소수의 선이었습니다. 악인이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몇 사람 때문에 죄스러운 전체가 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인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호수를 건너가는 것이 중요하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태 8,23-27)"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시키시는 분"이라는 '증언'이고 '고백'인데, 이것은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 즉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라는 증언이고 고백입니다.

이 이야기를 해석할 때, '호수'는 이 세상으로, '풍랑'은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난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배'는 교회로 해석하기도 하고, 신앙생활, 또는 신앙인의 인생살이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모습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옆에 안 계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시편 23장이 연상됩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시편 23장의 작가와 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왜 배를 탔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려고 배를 탄 것이 아니라, 호수 건너편으로 가려고 배를 탔습니다.  ('호수'가 이 세상을 상징한다면, '호수 건너편'은 저쪽 세상, 즉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지상 생애는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한 여행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났을 때 겁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했을까? 아니면 그 풍랑 자체를 두려워한 것일까?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그런 일들 때문에 힘이 빠지고 기가 꺾여서 하느님 나라까지 가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 나라에 잘 도착하는 일보다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두려움은 성격도 다르고 차원도 다른데, 아마도 제자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리 큰 풍랑을 만나도 목적지를 잊어버리지 마라. 그리고 내가 함께 있으니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라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셔서 고요하게 만드신 일은 단순히 제자들을 편안하게 해 주신 일이 아니라, 호수 건너편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신 일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정반대로, 호수가 아주 고요하고,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제자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래서 노 젓는 일을 멈추고 배를 세운 다음에, 경치를 한 번 보시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깨웠다면? 아니면 옆에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면? (그랬다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더욱 엄하게 꾸짖으셨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아무런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너무 편안하게 살고, 그 편안함에 취해서 하느님 나라를 잊어버리거나 희망하지 않거나 아예 관심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고난과 시련도 위험하지만, 그 나라를 희망하지 않게 만드는 편안함이 더 위험합니다. 그것은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잠언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 30,8-9)."

이 기도를 바친 사람은, 자기가 교만해질까봐 부유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반대로 가난 때문에 죄를 지을까봐 가난해지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이 사람이 부유함과 가난함을 모두 두려워하는 것은,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잠언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큰 풍랑도 만나지 않게 해 주시고, 또 바다가 너무 잔잔해지는 일도 없게 해 주십시오. 너무 큰 풍랑을 만나면 기가 꺾여서 끝까지 가는 것을 포기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바다가 너무 잔잔하고 고요하면, 경치에 취해서 목적지를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나라를 인생의 최종 목적지로 삼고 있는 신앙인이라면, 인생살이가 너무 힘들 때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면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고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반대로 너무 편안하고 행복해서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을 때에는 그것이 고난과 시련보다 더 위험한 사탄의 유혹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긴장해야 하고,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인생이 힘들든지 편안하든지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잘 도착하는 일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마태 8,26)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무얼 믿고 있습니까?
사도신경에서 언급되는 신앙고백문을 믿고 있기에
믿음의 사람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천당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인가요?


기도를 많이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고
믿는다는 말인가요?
착한 일 많이 하면 천국가고 죄를 많이 지으면 지옥간다고
믿는다는 말인가요?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고
두렵고 걱정스럽나요?
내 안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나요?

우리가 믿음이 약하다고
질책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당신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고
함께 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쓰잘 데 없는 근심걱정에
왜 사로잡혀 있느냐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엔
두려움과 근심걱정이 있나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 두려울 것 없네" 하고 한번 외쳐보세요.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자가
아니라 참 믿음의 사람이니까요.

한해의 반을 마무리 하는 오늘
감사와 찬미의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6.30.|작성자 알타반


♥예수님이 호수의 풍랑을 가라앉히신 기적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 삶의 언저리에서


격동하는 삶을 동여맨 끈을 손에 꼭 쥐고서는, 오로지 이겨 내겠다고, 버텨 내겠다고 의지를 불태워도, 우리네 인생은 의지가지 없이 흔들리는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노를 쥐고 돛을 세워도 불어오는 바람 앞에 하잘없이 뒤뚱거리고 마는 인생에 절망하거나 ‘이놈의 거지같은 삶에 희망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체념해 버리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왜 우리는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인생의 배를 타고 죽는 날까지 애만 쓰고 마는 허무함을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알지만,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이토록 부질없이 흔들리는 낙엽 같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인생에 누군가 동승해 있다는 것은 모릅니다.

우리는 세차게 퍼붓는 비바람과 차오르는 물에 서슬 퍼런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만, 그 공포를 가로지르며 잠든 척, 아니 잠시 침묵하고 계시는 그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몰랐지만 알게 될 것입니다.


절망과 공포로 주눅든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어느새 거친 풍랑은 잠잠해지고 고요한 평화가 찾아오리란 것을.

어쩌면 바로 지금이 내 안에 그분을 깨워야 하는 시간일런지 모릅니다.


- 김태홍 신부(서울대교구 수유동성당) -

   
  지금 두렵거나 실망하고 있다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을 흔들어 깨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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