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월요일]요나보다 더 큰 이 (마태 12,38-42)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고 나자 파라오는 그들을 내보낸 것을 후회하여 이스라엘을 추격한다. 바다에 맞닥뜨린 이스라엘은 공포에 떨면서 두려워하지만, 모세는 그들에게 똑바로 서서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한다. 공포에 질려 그들이 무력하게 멈추어 우왕좌왕할 때, 하느님께서 당신 능력을 드러내실 것이다.(탈출14,5-18)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당신께서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시지만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마태 12,38-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마태 12,38-42)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사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요구하곤 하였습니다. 이처럼 지금 표징을 청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었다고 그들을 비난하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고(마태 12,1-8),
또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까지 하였습니다(마태 12,9-14). 더욱이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헐뜯었습니다(마태 12,22-3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부르셨습니다(마태 12,33-37). 그들은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당신의 일을 계속하시면서 당신을 계시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아주 특별하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을 만나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무엇으로도 강요되지 않습니다. 표징도, 기적도, 말씀도 믿지 않으려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믿음도 싹틔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표징을 보여 주셨다면 과연 그들이 정말로 믿었을까요?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보냈듯이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다음에 그들이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결단을 내린 뒤에도 우리는 결단이 눈에 보이는 명백한 증거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압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요?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송영진 모세 신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39-41)."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 라는 말은, 죄
속에서 살면서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으면서 표징만
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넓은
뜻으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신앙인들도 포함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표징을 요구한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요구한
일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마태 27,42)." 이
말은, 믿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마태 27,44).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 사람들도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믿기 싫어서' 요구한 사람들입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하신 그대로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을 가리키고, 그
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일로 해석합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이 말씀은, "나의 죽음과 부활을 보게 되면 너희는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로 해석됩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신자 수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이고,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생겼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여주신 많은 표징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가장 중요한 표징이고, 사실상
유일한 표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자체를 안 믿는 사람들도 있고, 부활을
믿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어도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안 믿습니다.
2)
요나가 겪은 일을 요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일은 죽었다가 살아난 일과 같습니다. 하느님을
피해서 달아났던 요나는 그 일 때문에 회개하게 됩니다(요나 2장). (사실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나의 회개도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를 "너희는
요나처럼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을 겪어야만 회개하겠느냐?" 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기 전에 먼저 회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3) 최후의 심판 때에는 심판을 받기 위해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요한 5,29).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이지만, 그 부활도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날이 되면, 예수님을 안 믿은 자들과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심판관으로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를 "너희는 죽었다가 부활해서 심판을 받을 때가 되면,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회개하기에는 너무 늦은 때가 될 것입니다. 그날은
심판을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심판을 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이
세대는 유죄" 라고 증언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창피한 줄 알아라."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원래 하느님을 안 믿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요나가
멸망을 선포하자 즉시 하느님을 믿었고 단식을 선포했습니다(요나 3,5).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생각하면,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을 표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또
곧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공포심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느님을 믿고 회개한 것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신앙이었겠지만, 그래도
어떻든 안 믿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믿었고 회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는, '니네베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로 하느님 마음에 들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로, 또 '이 세대'는 "신앙인이었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신앙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신앙인들을 꾸짖을 것이다."가 됩니다.
지금도 비신자들이 신자들을 비판할 때가 많습니다. "명색이 신자라면 신자답게 살아라." 라고...신앙인이, 또 교회가 제대로 살지 않아서 비신자들로부터 그런 비판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마태 12,38)
여러분은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면서
뭘 기대하십니까?
여러가지 기도를 바치면서
뭘 바라시나요?
유명강사들의 강의나 피정에서는
뭘 기대하나요?
예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기적이나
메시지를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나요?
내 기도중에
짠~ 하고 나타나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가르쳐주시길 기대하나요?
유명강사의 강의나 설교에서
내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를 기대하나요?
사실 그런걸 기대한다면
스마트폰으로
구글검색을 하면
모든 답이 다 나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받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고
해답을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내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답을 찾아나갑니다.
그분이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기적을 알아갑니다.
더이상의 기적과 표징은
무의미합니다.
이미 수많은 이적과 표징들이
우리 눈앞에 펼처져 있고
그것에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이적도 그때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고◆
삼라만상이 살아있는 하느님의 계시임을
새롭게 깨닫는 날 되소서~~
[출처] 2015.07.20.|작성자 알타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