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

2015. 7. 21. 오전 8: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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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화요일]<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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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명한 대로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멈추어 서자, 모세는 바다 위로 손을 뻗는다. 하느님께서 바다를 가르시어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가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주님의 권능을 보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찬미의 노래를 부른다.(탈출기 14,21─15,1ㄴ)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당신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가족을 이룬다.(마태12,46-50)


탈출 15,8-9.10과 12.17(◎ 1ㄷㄹ)
◎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 당신의 성난 숨결로 물이 모이고, 파도는 둑처럼 우뚝 섰으며, 깊은 물은 바다 속에서 엉겼나이다. 원수가 말하였나이다. “그들을 쫓아가 붙잡으리라. 전리품을 챙겨 내 욕심을 채우리라. 칼을 뽑아 들고 이 손으로 쳐부수리라.” ◎
○ 당신이 바람을 일으키시니 바다가 그들을 덮쳤나이다. 그들은 거센 물 속으로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나이다. 당신이 오른손을 뻗치시니, 땅이 그들을 삼켜 버렸나이다. ◎
○ 당신은 그들을 데려오시어, 당신 소유의 산에 심으셨나이다. 주님, 그 산은 당신 거처로 삼으신 곳, 주님 손수 세우신 성소이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의 12제자의 이름분석

오늘 독서는 화답송까지 이어서 읽고 묵상해야 본문이 완결됩니다. 여기서 루카 17,11-19의 단락이 떠오릅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치유를 받았지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병의 치유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치유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믿게 됨으로써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탈출도,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어 이집트인들의 추격을 벗어났다는 데에서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화답송 끝 부분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하신 땅으로 이끌고 들어가시어 성소를 짓게 하시리라는 말씀으로 마감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이처럼 이집트 탈출은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에서 완성됩니다(탈출 3,12 참조).
하느님께서 은총을 비처럼 내려 주실 때, 하느님께서 나의 나병을 고쳐 주시고 나를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실 때 나는 얼마나 자주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수많은 사건 안에서 우리가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총의 비를 하수구로 그냥 흘려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하루, 마음을 기울여 바다를 가르시는 하느님의 입김을 느껴 봅시다.


예수님의12제자 이름1분 암송법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태 12,50)

여러분은 오늘
뭘 하고 싶으세요?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이것저것 많지요?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보면
때론 실수도 나오고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지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고
어떻게 해야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내 뜻대로 하지말라시네요.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며
일하라네요.

내 신분에 걸맞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어느 회사 사장의 일꾼입니까?
하느님의 자녀입니까?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 때 나는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일해아겠지요.

자, 오늘도
열심히 일합시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귀한 아들이고 딸임을
잊지말고 그분의 뜻을 생각하며
일해 봅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하더라도
기쁨과 보람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런 기쁨과 보람 누리시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7.21.|작성자 알타반


 

성화속의 12제자

<예수님의 참 가족>  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8-5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부인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는 "어떤 사람이 나의 가족인지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자."로 해석됩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고 '이들만' 내 가족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이들과 같은 사람'은 모두 나의 참 가족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말씀 앞에 "내 어머니처럼"이라는 말을 넣어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참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예수님께서 육적인 가족을 부정하시고 영적인 가족만(신앙 공동체만) 강조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라는 말씀까지 끌어들여서 육적인 가족은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주장은 더욱더 옳지 않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해석한다면, 절대로 이혼하면 안 된다는(가족을 해체하면 안 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태 19,6)과 모순되고,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을 예수님의 부모로 정하신 일과도 모순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일과도 모순됩니다(요한 19,27). 예수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영적인 가족이면서 동시에 육적인 가족이었습니다. 성가정에서는 그 두 가지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도 육적인 가족과 영적인 가족을 구분하는 뜻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들마저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그들이 가족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은 아니었고, 가족을 실제로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장모를 고쳐 주신 일은(마태 8,15) 베드로 사도가 장모와 함께 살고 있었음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일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당신의 제자로 뽑으신 후의 일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지낼 때에는 아마도 베드로 사도의 집에서, 또는 그의 처갓집에서 지낸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 승천 후 사도들이 교회를 다스리던 때에, 베드로 사도는 계속 아내를 데리고 다닌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1코린 9,5).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인생의 모든 목표를 세속에서 하느님 나라로 바꾸는 일입니다. 지상에서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는 것. 그래서 실제로 가족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가족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라."로 생각할 수도 있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내 가족으로 사는 것이다."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 이 말씀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경우에는 우선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이 말은, 원래 권한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새로 권한을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 권한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 또는 잃어버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그 권한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신앙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하느님의 자녀라면 자녀답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라." 라는 뜻이 됩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는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사람도 있고, 루카복음 15장에 있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작은아들처럼 집을 떠나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마태오복음 21장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의 아들처럼, 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마태 23,3)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예수님)은 아무에게도 "너는 내 가족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자신이 가족답게 살지 않아서, 즉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아서 스스로 자격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생활이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생활은 아닌지, 각자 스스로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로 하느님의 자녀답게(신앙인답게) 살고 있는 신앙인인가?"



예수님의 일생을 그린 영화 선오브갓 잼있네요~

형제와 자매, 어머니를 얻다 반영억 사제


우리나라의 인구가 지난 2015년 1월말 5천1백 3십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45년에 이르면 다시 5천만명 이하로 떨어진답니다. 저 출산, 고령화 문제로 이제는 혈육으로서의 형제, 자매라는 관계도 형성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하시며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50)하십니다. 결국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새로운 형제자매를, 어머니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앞서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어서 제자들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시고 하늘나라의 가족관계를 형성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제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로마8,14-15).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1요한 5,1).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3,26).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에폐5,8).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에페5,1).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들을 형제라 부르셨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 하겠습니다…….하느님께서 나에 주신 자녀들이 나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히브2,11-13).


믿음으로 형성된 새로운 관계를 생각하며 하느님의 자녀다운 품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 사이에 형제애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하겠습니다. 성당에 잘 나오지 않는 분들이 가끔 “아내가 열심히 해서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으면 반 천당은 갈 것”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주님과 맺은 관계와 내가 맺는 관계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뜻을 열심히 실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아내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묵주반지를 끼고 신자라고 폼 냅니다. 그것도 금으로 만들고, 때로는 보석을 박아 자랑합니다. 자동차 안에는 십자가나 묵주를 걸어놓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 것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주님을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매달고 다니며 간직하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요? 생각 없이 지니고 다닌다면 부적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 스승과 제자, 스승과 나의 깊은 관계는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상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혈연이나 가정, 민족이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영적인 관계를 통해서 장차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의 가족을 미리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사는 이들은 이미 한 가족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창조물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태양을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노래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차원을 뛰어넘어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사는 가운데(갈라2,20) 형제자매의 관계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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