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하늘 나라의 신비.(마태 13,10-17)

2015. 7. 23. 오전 5: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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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하늘 나라의 신비.(마태 13,10-17


탈출기 19장에서 이스라엘은 시나이에 이른다. 40장에서 천막 성소가 완성되기까지 탈출기의 후반부는 시나이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계약을 맺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탈출 19,1-2.9-11.16-20ㄴ)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가르치시지만, 마음이 무디고 눈과 귀를 막는 이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예언자들이 갈망하던 것을 지금 보고 있다.(마태 13,10-17)   


『음성강론』?2012년 7월 26일 마태오 13,10-17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니 3,52.53.54.55.56
◎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
○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마태 11,25)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참 이상합니다. 강론이나 강의를 하다가 예화를 들면서 설명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은 청중이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예고한 대로, 당신께서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대답에는 특별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라는 구절입니다. ‘신비’, 예수님 시대 이방 종교들과 유다 묵시 문학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던 개념입니다. 바오로 서간들에서도 여러 번 사용되지만 복음서들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는 맥락에서만 사용됩니다.
신비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 오래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면서, 또한 하느님께서 그 신비를 계시해 주시는 이들에게만 드러납니다(복음 환호송 참조). 그리스 종교들에서는 특별한 예식을 통하여 신비 종교에 입문한 이들에게만 전해 주던 은밀한 가르침을 지칭했습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의 신비”는, 비유가 전달하는 하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이 누구에게나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뜻에 따라 깨닫게 해 주시는 이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번 주간에 묵상해 온 마태오 복음 12―13장에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하늘 나라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늘 나라의 가르침은 과학적으로나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진리가 아님이 드러납니다. 왜 어떤 이들에게는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주어지고 어떤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그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을 찬미할 뿐입니다. 아울러 하느님 앞에서 끊임없이 철부지가 되려는 노력도 절실할 뿐입니다!    
 


묵주기도 말씀과 함께 묵상하기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송영진 모세 신부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마태 13,10)"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자주 사용하신 이유는 세 가지로 생각됩니다.

1)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리를 더욱 쉽게 설명하시려고.

2) 스스로 깨닫게 하시려고.

3) 청중의 수준에 맞춰서 가르치시려고.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리를 인간 세상의 언어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르치는 쪽의 한계가 아니라 배우는 쪽의 한계입니다.) 또 경험하지 않은 일을 설명만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비유로 사용하셔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비유' 라는 것은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교육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신앙 교육은 지식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 방식은 맞지 않습니다. "믿어라." 라고 명령할 수도 있겠지만, 믿음은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에서도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설교를 할 때에는 가장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교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있다면 어린이들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마다 지적 수준도 다르고 믿음의 수준도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눈높이 교육'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따로 비유의 뜻을 풀이해 주셨습니다(마르 4,34). 이것은 일반 청중과 제자들을 차별 대우 하셨다는 뜻은 아니고,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일을 일종의 지도자 양성 과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마태 13,11)."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너희는 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너희에게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저 사람들은 아직 믿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가르칠 때에는 비유를 사용한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허락되었다." 라는 말은 "믿음으로써 은총을 받았다." 라는 뜻이고, 비유를 사용할 필요 없이 바로 가르쳐도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허락되지 않았다." 라는 말은, 여기서는 믿음이 없어서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래서 먼저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일방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가르친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쪽에서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신앙 교육은 더욱 그렇습니다.아무리 잘 가르쳐도 믿으려고 하는 사람만 믿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사용해서 쉽게 가르치셨지만, 안 믿으려고 한 사람들은 안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려워서 못 믿은 것이 아닙니다. 믿으려는 마음도 없었고, 믿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아서 안 믿은 것입니다. 좋은 예가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하셨을 때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사용하지는 않으셨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투덜거리면서 모두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요한 6,60.66).

반대로 사도들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 곁에 남았습니다. 사도들은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알아들어서 남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남았습니다.

믿으려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알아듣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려고 하면, 아무리 쉬운 말로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점점 더 가까이 가게 되지만,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지식을 얻기 위한 생활이 아니라 구원과 생명을 얻기 위한 생활입니다. 성경 공부나 교리 공부도 지식을 쌓기 위한 일이 아니라 더 잘 믿기 위한 일입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내용들과 교리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 궤변, 허무맹랑한 옛날이야기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의 진리' 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써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6)

얼마 전에
최도마 신부님의 성지인
베론에 다녀왔습니다.
최도마 신부님 조각공원 중앙부분에
'눈 내린 땅에 드러난 예수님 얼굴'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아무리 들여다봐도
예수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함박눈이 내린 땅밖에 안 보인다고...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수염있는 예수님 모습이
그토록 선명한데...

여러분은 시력이 좋아
사물을 잘 보고
청력이 좋아
소리를 잘 듣지요?
물론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도 좀 침침해지고 돋보기도 써야하고
귀도 점점 잘 안들리기도 하지만
아직은 쓸만 하지요?

축하합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으니
장님과 귀머거리에 비하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진짜로 축하할 일은
단순히 사물을 바라볼 수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적인 것을 바라볼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소리를 들을 수 있기만 한 것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이 아니기에
여러분은 참말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보고 들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느껴보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7.23.|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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