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 칼 (마태 10,34-11,1)

2015. 7. 13. 오전 7: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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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 칼 (마태 10,34-11,1)


요셉의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등장한 것을 배경으로 하여 탈출기가 시작된다. 야곱의 후손이 왜, 어떻게 이집트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집트 임금은 이스라엘 백성을 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괴롭힌다. 이러한 억압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탈출 1,8-14.2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삶에 대하여 사도들에게 말씀하신다. 믿음의 결단은 선택을 촉구한다. 예수님을 열심히 뒤따르려는 과정에서 그분의 가르침과 충돌할 때, 집안 식구도 자기 자신도 버릴 것이 요구된다.

(마태 10,34-11,1)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칼을 주러 왔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평화, 칼>   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1) 이 말씀을,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는데,  세상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선택하였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거부하는 것이고, 평화를 거부하는 것은 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신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주신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예수가 칼을 주었다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4-5)." 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9-20)." 이 말씀을 앞의 평화에 관한 말씀과 연결하면, '빛'은 '평화'이고, '어둠'은 '칼'입니다.

인간 세상을 보면, 평화보다 전쟁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과 증오심을, 용서보다는 복수를, 일치보다는 편 가르기를, 믿음보다는 의심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전쟁이 예수님 때문인가?" 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많습니다. 자기들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일으킨 전쟁에 예수님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2)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라는 말씀을 "내가 '세상이 주는 평화 - 세속적인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칼'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얻기 위해서 세속의 거짓 평화를 버리는 '선택과 결단'이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세속 사람들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들, 즉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혼자만의 안전을 추구하는 이기심, 영혼이야 어떻게 되든지 관심 없고 몸만 편안하면 그만이라는 육적인 사고방식,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소유욕 등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버리려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결단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에게 십자가는 거짓 평화를 잘라내는 칼이 됩니다.

3)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 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속 한가운데에서 살면서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신앙을 증언해야 하는 사도들과 신앙인들은 마치 이리 떼 가운데에 놓여 있는 양들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옛날 교리서에서는 천국에 있는 신앙인들을 '승리한 교회', 연옥에 있는 신앙인들을 '보속하는 교회', 지상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들을 '싸우는 교회' 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인들이 믿음, 희망,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영혼의 평화를 누린다고 해도, 지상에서의 신앙생활은 '싸움'이기 때문에 고달프고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도 많고, 유혹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신앙생활과 먹고사는 문제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라는 말씀을 "누구나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어려움들을 참고 견뎌야 한다."가 됩니다. 잘 참고 견디면,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묵시 21,4)"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을 내적 갈등 상황에 관한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로마 7,21-23)." (바오로 사도 같은 위대한 인물도 이런 갈등을 겪었으니...)

죄가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하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하고 싶다는 욕망과 죄가 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반대로,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하기 싫은 일들이 있습니다. 싫으니까 하지 말자는 욕망과 신앙인이니까 해야 한다는 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런 갈등 때문에 내적 평화를 잃게 되는데, 그럴 때에 더욱 단호한 결단과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칼'은 그런 내적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즉 글자 그대로 '칼 같은' 결단과 의지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테마묵상(다해) 10-07-12] - 칼을 주러왔다

{선택}

오늘 복음은 아주 간단합니다. 길을 가다가 네거리를 만났을 때 오른쪽 길과 왼쪽 길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마태오 복음 전체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을 요구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둘 다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도 선택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 시어머니도 선택하고 내 목숨도 버리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양립이 가능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두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저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습니다. 현재의 자연 과학에 따르면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목숨을 바쳐 가면서까지 맞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보다 제 목숨을 더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 우리가 그러한 타협을 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순간에 다른 무엇과 타협하려고 하늘 나라의 요구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내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한도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르고, 희생이 요구되는 순간에는 잠시 귀를 막는다면 하늘 나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인생의 참 평화와 행복의 길을 가자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41)

내가 왕이 되고싶다면◆
내 아내를 왕비로 대하면 되고
내가 왕비처럼 살고싶다면
내 남편을 임금으로 받들면 됩니다.

내가 성인이 되고싶다면
다른 사람을 성인으로 여기면 되고
내가 부처가 되고싶다면
다른 사람을 부처로 바라보면 됩니다.

내가 남을 무시하면
나도 그렇게 무시당하게 되고
내가 남을 존중하면
그만큼 나도 존중을 받게 됩니다.

내가 남을 욕하고 씹으면
남도 나를 욕하고 씹을 겁니다.
내가 남을 칭찬하고 우대하면
나도 그런 대접을 받을 겁니다.

이 당연한 진리를
왜 애써 외면하며 살아야 하는지
참 바보스런 인생이 아닌지요.

오늘 임금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왕비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되어보자구요.
그리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7.13.|작성자 알타반


초복초복
날짜 2015년 7월 13일(월)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
의미 일년 중 더위가 가장 심한 세 절기 중 하나
추천정보 삼계탕 만들기여름철 건강 지킴 노하우삼복의 세시풍속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 번의 절기.
첫 번째 복날을 초복이라 하고, 두 번째 복날을 중복, 세 번째 복날을 말복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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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날짜 :  초복 7월 13일 (월) 중복 7월 23일 (목) 말복 8월 1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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