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14,13-21)
시나이를 떠난 다음에도 광야의 여정은 계속되는데, 아직도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불평한다.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을 듣고, 이 백성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힘겹다고 하느님께 탄원한다. 하느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고 동시에 원로 일흔 명을 세우시어 모세의 짐을 나누게 하신다.(민수11,4ㄴ-15)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이 4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6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 7 만나는 고수 씨앗과 비슷하고 그 빛깔은 브델리움 같았다. 8 백성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거두어서,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과자 맛과 같았다. 9 밤에 이슬이 진영 위로 내리면,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 10 모세는 백성이 씨족끼리 저마다 제 천막 어귀에 앉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대단히 진노하셨다. 모세에게도 그것이 언짢았다. 11 그래서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 밖에 나서,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12 제가 이 온 백성을 배기라도 하였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당신께서는 그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유모가 젖먹이를 안고 가듯, 그들을 제 품에 안고 가라 하십니까? 13 백성은 울면서 ‘먹을 고기를 우리에게 주시오.’ 하지만,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14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15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제발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눈에 든다면, 제가 이 불행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시편 81(80),12-13.14-15.16-17(◎ 2ㄱ)
◎ 환호하여라, 우리의 힘 하느님께!
○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나를 따르지 않았다. 고집 센 그들의 마음을 내버려 두었더니, 그들은 제멋대로 제 길을 걸어갔다. ◎
○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이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 나 그들의 원수들을 당장 꺾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적들을 치리라. ◎
○ 그들이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아첨을 받고, 이것이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되리라. 내 백성에게 나는 기름진 참밀을 먹이고, 바위틈의 석청으로 배부르게 하리라.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선 군중을 가엾이 여기시어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먹이신다.(마태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대단히 진노하셨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만나와 메추라기에 관하여 전하는 또 다른 성경 본문인 어제 제1독서인 탈출기 16장에는 하느님께서 진노하셨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탈출기와 민수기 사이에는 시나이 계약이 있습니다. 탈출기의 광야는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에 이르기까지 여정이고, 민수기의 광야는 시나이에서 출발하여 모압 평야까지 여정입니다.
그 두 여정 사이에 시나이 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십계명과 법전도 받았습니다.
애인 관계와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가 차이가 있다면, 민수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미 부부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탈출기에서 백성의 불평이 단순한 배고픔의 호소였다면, 민수기에서 불평은 하느님에 대한 불신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노와 징벌을 가져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게서 구할 수 있었는데 모세도 잊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명하실 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었어야 했지요.
주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망설임 없이 빵 다섯 개를 들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을 철석같이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주님께서 이미 우리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로 이어진다 반영억라파엘 사제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는데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린 빵은 물론 제자들의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내놓고 예수님을 통해 이웃과 나누었을 때 큰 무리의 굶주림은 간단히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나누면 그다음은 주님의 몫입니다. 아무 것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아무도움도 받을 필요가 없이 넉넉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더군다나 하느님의 은혜가 없이는 존재조차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23,1-3) 우리의 주님, 예수님은 푸른 풀밭에 쉬게 하시고 생기를 돋우어 주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의탁하면 육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 배고프지 않게 됩니다. 나의 모두를 주님의 손에 올려놓아야 하겠습니다. 물질,지식, 재능, 시간뿐 아니라 동안에 축적한 무엇인가가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도록 쓰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나눔의 신비’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지구상의 드러난 기아문제가 해결된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수가 25년 전보다 2억 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세계식량계획(WFP)은 '2015 세계 식량 불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전세계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할 만큼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인구가 7억9천500만 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전체 인구에서 기아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23.3%에서 현재 12.9%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매년 1천만 명이 기아 또는 기아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어 가진 것을 나누기만 하면 기아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 통계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쓰지 않아서 문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결식아동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은 사랑입니다. 무상급식문제로 아직도 시끄러운 것이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고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베푼다는 시혜의 개념보다 서로 나누는 것에 마음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에 앞서 영적으로 충만하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감사할 있다면 더 큰 감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주면 줄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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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3.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민수 11,15) 때로는 내가 맡은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족 식솔들을 먹여살리는 일 또한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부모를 모시고 시집식구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며느리로서의 일도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책임자 일도 쉽지 않고 회사나 시설의 장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모세처럼 말하고 싶습니다.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그렇습니다. 무거우면 무겁다고 말해야 합니다. 혼자 무작정 낑낑대며 힘들어하고 짓눌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면 하느님께 넋두리 하십시오.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만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내가 도와주마~ 내가 너와 함께할테니 힘내거라 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괴로워도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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