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목요일]그물에 비유 (마태 13,47-53)

2015. 7. 30. 오전 6: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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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목요일]그물에비유 (마태 13,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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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의 마지막 부분은 시나이 산에 천막 성소가 완성된 사실을 전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규정에 따라 성막을 완성하자, 구름이 성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운다.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표시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은 늘 신비로운 분이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탈출 40,16-21.34-38)

그 무렵 16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7 마침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18 모세는 성막을 세우는데, 먼저 밑받침을 놓은 다음 널빤지를 맞추고 가로다지를 끼운 뒤, 기둥을 세웠다. 19 또 성막 위로 천막을 치고 천막 덮개를 그 위에 씌웠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20 그런 다음 증언판을 가져다 궤 안에 놓았다. 그 궤에 채를 끼우고 궤 위에 속죄판을 덮었다. 21 또 궤를 성막 안에 들여놓고 칸막이 휘장을 쳐서 증언 궤를 가렸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34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5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 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6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모든 여정 중에,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났다. 37 그러나 구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구름이 올라가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다. 38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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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84(83),3.4.5와 6과 8ㄱ.11(◎ 2)
◎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은 더욱더 힘차게 나아가리이다. ◎
○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에 비유하신다. 그물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나쁜 것들을 밖으로 던져 버리듯이, 마지막 때에는 의인들과 악인들이 구별될 것이다.(마태13,47-53)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이스라엘의 성막 개념도

성막이 완성되자 구름이 성막을 덮습니다.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표시해 주기 때문에, 그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길을 떠나지 않고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가면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구름은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도, 보여 주지도 않습니다. 구름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구름 속을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름은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면서도 동시에 당신을 감추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나타냅니다.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늘 나라도 신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우리에게 와 있지만, 큰 나무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천국이었으면! 이 세상에 악이 없고 모두가 천사 같은 사람들만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신다면, 마태오 복음서에서 명확한 답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 하늘 나라가 완성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제일지 알 수는 없어도, 세상의 모든 악이 없어지고 하늘 나라가 더 이상 신비로 감추어진 채 남아 있지 않고 모든 이의 눈앞에 환히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종말입니다. 그래서 종말에 대한 기다림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지금도 간과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기도하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신앙의 내용은,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종말을 기다리는 현실을 표현합니다. 그러니 마지막 날, 종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종말은 우리가 기다리는 하늘 나라의 완성이고, 구름 속에 감추어진 그 신비의 드러남입니다.

마태복음 25:14 - 25:30 달란트의 비유

<그물의 비유>  송영진 모세 신부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13,47-50)."

그물을 바다에 던져서 고기를 모아들이는 것은 교회의 복음 선포 활동을 뜻하고, 온갖 종류의 고기가 모여 있는 그물은 교회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 라는 말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도' 라는 뜻입니다.)

그물이 가득 차는 때는 '종말'입니다. (복음 선포는 종말이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입니다.)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지는 일"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는 일"이고, 그것이 바로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물(교회) 속에 좋은 것들(의인들)과 나쁜 것들(악한 자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교회의 현실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의인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몸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이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비유를 보면, 어부들이 일단 마구잡이로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모아들인 다음에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구분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이 내용만 보면 아무에게나 마구 복음을 전한 다음에, 즉 구원을 받지 못할 '악한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다음에 심판 때에 그 '악한 자들'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르 16,15).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안 받아서 못 받는 사람들입니다.

'가라지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마가 와서 밀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수확 때에 가라지를 거두어서 불에 태운다고 되어 있지만(마태 13,38-40), 처음부터 밀과 가라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좋은 밀'이었는데, 자기들이 스스로 가라지로 변절한 것입니다.

'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마태 13,1-9)'도 같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땅과 길과 돌밭과 가시덤불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처음에는 '좋은 땅'이었는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길, 돌밭, 가시덤불로 바뀌는 경우가 생깁니다.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할 '악한 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또 만일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는 악한 자가 있다면 그런 자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일도 없습니다. (이미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처럼.) 만일에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다면, '회개' 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고, 신앙생활도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심판 때에 악인들이 받게 될 벌을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금' 회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가 어떻게 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심판 때에 성인으로 인정받을 가능성과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될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지금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각 개인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구원받을 사람들의 수는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역시 잘못된 주장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정원제'가 아니라 '자격제'입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인류 전체가 들어갈 수도 있고, 인류 전체가 못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노력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노력하지 않아서 못 들어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이" 라는 말씀에는 그 수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각자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아서 못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라는 말씀은, "지금은 누가 보아도 구원받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회개하고 노력해서 구원을 받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지금은 누가 보아도 성인으로 보이지만, 교만과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 타락해서 구원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태 13,48)

저는 상추를 좋아하기에
수도원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 올 때가 있습니다.
야채든 생선이든
과일이든 그 무엇이든
상품과 하품을 구분하고
안 좋은 부분은 손질하여
내버리고 좋은 것만 주워담아
먹거리로 만듭니다.

예수님도 어부들이
잡아 온 고기들을
분류하며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듯이
우리의 작은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묵상할 꺼리가
엄청 많습니다.

오늘도 내가 만나는 일상 안에서
아~
하느님 나라는 이런 것이겠구나
한번 묵상해보면 어떨까요?

하느님 나라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여기에서 만날 수 있는
실재입니다.

이렇게 일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나중에 죽어서도
하느님 나라를 명료하게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나쁜 것은 내버리고
좋은 것을 주워 담으면서
하느님 나라를
가까이서 경험해 보시길
축원합니다
.

[출처] 2015.07.30.|작성자 알타반






이스라엘의 성막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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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그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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