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22.연중 제20주간 토]모세의 자리 (마태 23,1-12)

2015. 8. 21. 오후 7: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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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2.연중 제20주간 토]모세의 자리 (마태 23,1-12)

나오미와 룻 롯과 나오미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곳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즈의 밭이었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즈는 룻의 요청대로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준다. 그 집안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된다.( 룻기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1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2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 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3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8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들어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 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9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10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11 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4,13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5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롯과 보아스

시편 128(127),1-2.3.4-5(◎ 4 참조)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71(312)유다교 당파-1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말은 듣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므로, 스스로 스승이나 아버지로 자신을 내세우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낮추며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마태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 5장 17-20절/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를 무시하지 마라[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21 / 김근수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당시 지도층에 속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타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위선자’라는 그리스 말에는 가면을 쓴 연극배우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위선자는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는 자기 자신 앞에서도 연극하는 것처럼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앞의 말씀은 우리가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자위하면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든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든 권위를 지닌 사람들 아래 있는 이들이 자주 되뇌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한 구절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권위마저 잃게 되지요. 그래서 말만 번드럽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한다면, 그가 그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처럼 살아가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4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송영진 모세 신부

8월 22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 교만, 허영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마태 23,1-12).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주님이시고, 성경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이 말씀에는 "그들이(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미 알고 있거나, 자기가 듣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씀'과 그 사람의 '행실'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복음적이지 않은 행실을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씀'과 '행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행실을 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복음적인 생활인 줄 알 것이고, 그 행실을 따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은, '위선'이라는 죄에다가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죄까지 짓는 셈이 됩니다. 여기서 '행실'이라는 말을 '삶'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믿음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바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만일에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믿으라는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원래 그런 것인 줄로 오해할 것입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죽은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2)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희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못하지만, 하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믿음'과 '희망'은 하나입니다.

3) 사랑 없이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실상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인데, 그게 말로만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요한 1서 저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일치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여기서 '형제'는 '모든 사람'입니다.

4) '겸손'도 역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겸손'에 대해서, 또 '겸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보다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볼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겸손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비웃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자들의 명예욕과 교만과 허영을 꾸짖으시면서,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5)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은 성직자들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로 강론을 할 때, 그 성직자의 삶이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청중이 잘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혹시,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루카복음보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마태오복음을 더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는 안 가난해도 마음만 가난하면 된다고 우기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바로잡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부터 먼저 반성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만 가고,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걱정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일은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세속화된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선포하려면, 신앙인들이 먼저 복음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말하려면, 말하는 쪽에서 먼저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려면, 인도하는 쪽에서 먼저 '생명 속에서' 살고 있어야 합니다.


바리사이파4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 24,2-3)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는
아주 재미 있습니다.
특히 내가 오르지 못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까는 뒷담화가 최고로 재미있지요.

그래서 대통령이나 정치가들은
뒷담화의 주된 안주거리입니다.
목사님, 스님, 신부님들에 대한
뒷담화는 더 신비롭기까지 하지요. ㅎㅎ

예수님 시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뒷담화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주시네요.

그들은 어쨌든
모세의 자리에 있다.
대통령이고 대법관이고 국회의원이다.
성직자들이다.
그건 인정해라.
그들은 주로 말로 먹고 산다.


말은 그럴싸 하니
따라서 나쁜 말은 잘 안할 것이니
따라주어도 무방할끼다.
허나 그들이 하는 짓거리는
제발 배우지마라.

알타반의 말씀사랑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 말씀은
귀하게 받으십시오.
그러나 댓글을 저에게 달지 마시고
실천하는 것으로 대신 하십시오.

왜냐하면
저도 그렇게 다 실천 못하니까요.
저를 배우지 마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에 옮기시면 됩니다.

그리하실꺼죠?
고맙습니다.


[출처] 2015.08.22.|작성자 알타반


위선자의 무리, 바리사이파 사람들

 

저는 24년 사제생활을 하면서 많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과연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어떤 향기가 났을까? 생선을 담았던 종이에는 생선비린내가 나고, 꽃을 담았던 종이에는 꽃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내가 머물면서 담았던 것들이 복음이었다면, 하느님의 사랑이었다면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났을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머물면서 담았던 것들이 나의 욕심과 아집이었다면 악취가 났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각에만 머무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생각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직접 사랑을 해야 하고, 희생을 말하는 사람은 직접 희생을 해야 하고, 나눔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직접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남을 섬기는 사람, 타인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신약인물 - 위선자의 무리, 바리사이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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