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위선자 (마태 23,23-26)

2015. 8. 25. 오전 7: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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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위선자 (마태 23,23-26)


오늘부터 묵상하는 테살로니카 1서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먼저 작성된 책으로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 복음서들보다도 먼저 기록된 이 서간은 초기 교회의 생생한 신앙과 바오로 사도의 열렬한 선교 정신을 보여 주는데, 그는 신자들을 자녀처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 한다.( 테살전 2,1-8)
1 형제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6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서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편 139(138),1-3.4-6(◎ 1)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 제 말이 혀끝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당신은 이미 다 아시나이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저를 감싸 주시고,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으시나이다.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저에게는 너무 높아 닿을 길 없나이다. ◎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니파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드러내신다. 그들은 제물에 관련된 율법 규정들을 강조하지만,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 등 그보다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은 실천하지 않는다.(마태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율법학자들 가운데 선 예수

오늘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을 선언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바리사이들은 유다 마카베오 시대의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에게서 유래하는데, 그들은 종교의 자유만 보장해 준다면 누가 자기들을 통치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종교적인 문제에는 커다란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
바리사이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였고, 대부분의 율법 학자들은 바리사이에 속해 있었습니다. 율법의 요구대로 그들은 소출로 얻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의 십일조를 철저하게 봉헌하는 등 겉으로는 경건하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위선과 무지, 그들이 무섭게 꾸짖음을 받는 이유였습니다.
반면 바오로 사도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나 사도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지금이나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밝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달리, 바오로는 인간이 아니라 사람의 깊은 속까지도 샅샅이 살피시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였음을 강조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증인”이시라고까지 단언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예수님은 존경하며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도의 성현 간디의 진언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살피면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59) 예수님은 왜 율법학자들을 질책했을까

<위선>  송영진 모세 신부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마태 23,23)."

이 말씀에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이라는 말은 십일조를 내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 '의로움, 자비, 신의' 등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은 위선자들이 겉으로 표시 나서 생색내기 좋은 일들만 하고, 겉으로 표시도 안 나고 생색도 안 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은 안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에 '의로움, 자비, 신의' 등을 실천했을 때, 사람들이 알아주고 칭찬하고 존경한다면, 위선자들도 칭찬과 존경을 받고 싶은 욕심으로 그런 일들을 잘할 것입니다. (그래도 위선은 위선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산상설교에서 위선자들을 비판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2)." 이 말씀에서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라는 말은, 앞의 "불행하여라." 라는 말씀과 뜻이 같습니다. 받을 상이 없다면 받을 벌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일이든지 '의로움, 자비, 신의'를 실천하는 일이든지 간에 스스로 나팔을 불면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를 바라고 하는 일이라면, 그런 일들은 모두 '위선'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선'은 죄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위선'은 '선'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일이 아니라 '가짜 선'이고, 하느님과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죄'입니다. 위선자들이 낸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라고 해도 그 돈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선행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 23,24)."

이 말씀에서 '작은 벌레들'은 '작은 죄'로, '낙타'는 '큰 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작은 죄는 안 지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큰 죄는 거리낌 없이 짓는 모습을 꾸짖으시는 말씀이 됩니다. 또는 '율법의 세부 규정'은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율법의 근본정신'은 무시하는 태도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마태 12,2)." 라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배가 고팠을 때 했던 행동을 말씀하신 다음에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 규정을 안 지켜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사랑과 자비가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안식일일지라도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에 안식일을 안 지킨다고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먹을 것부터 주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안식일을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못 지키는 경우에, 그 사람의 사정을 먼저 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 없이 율법만 지킨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 23,25-26)."

이 말씀은, "몸만 씻지 말고 마음과 정신을 씻어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겉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에서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라는 말은, "남에게서 빼앗은 약탈품으로 자기의 그릇을 채우고 무절제하게 먹는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장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탈세와 횡령을 해서 모은 돈으로 호의호식 하면서, 그 돈의 일부를 하느님께 바친다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봉헌으로 인정해 주실까?

지금 '만일에' 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액의 돈을 헌금했을 때, 사람들은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모르고 칭찬할 때가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도둑질한 돈을 하느님께 바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회개한다면, 도둑질한 돈을 주인에게 돌려준 다음에 자기의 돈을 봉헌해야 합니다.

만일에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동전 두 닢이 훔친 돈이었다면, 그 돈이 생활비 전액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칭찬하시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그 동전 두 닢이 생활비 전액이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깨끗한'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왜 율법학자들을 질책했을까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마태 23,23)

여러분은
헌금과 교무금을 얼마나 내십니까?
받은 은혜와 축복에
얼마나 감사하십니까?
개신교에서는 여전히 십일조에 대해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의 십분의 일은
하느님의 몫이라 여기자는 것이지요.

그 정도야 합당한 요청이 아닐까요?
문제는 그 은혜를
돈으로만 그것도
교회에만 갖다 바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돈보다 더 값진
사랑의 희생과 봉사로
십일조를 바친다면
반드시 교회에 바칠 이유도 없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바치는 자비와 희생과 봉사는
분명 하느님께서 더 기뻐하실 테니까요.

자, 오늘
나는 하느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또 그렇다면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봅시다.

[출처] 2015.08.25.|작성자 알타반

율법학자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숲을 이루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신앙인으로 잘 키우고,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가는 어머니는 신앙의 숲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치고 힘든 어깨를 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으며 자녀들과 친구가 되어주는 아버지, 아내를 위해 작은 꽃 한 송이라도 준비하는 아버지는 신앙의 숲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부축해 드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말동무를 해 준 아들도 신앙의 숲이 될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예쁘고, 잘 생기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키가 늘씬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라도 다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숲을 이루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 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의 숲을 이루는 조건을 몇 가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서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더불어 함께 신앙의 숲을 만드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요한계시록 강해2강 – 예수가 그리스도로 종말을 살고 있는 교회에게 계시한 책(계1:1) / 온땅교회 한성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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