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목요일]깨어 있어라 (마태 24,42-51)
(성녀 모니카 기념일)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오늘의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듣고 격려를 받았다고 밝힌 다음,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님께서 친히 신자들의 사랑을 길러 주시고 그들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기를 기도한다.(테살전 3,7-13)
7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 8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1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기를 빕니다.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시편 90(89),3-4.12-13.14와 17(◎ 14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가 기뻐하리이다.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소서. ◎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종말이 언제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시더라도 우리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마태 24,42-5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테살로니카 1서는 박해를 견디면서 믿음을 굳건히 지켜 나가는 신자들을 격려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유다교 묵시 문학은 세상 종말 이전에 메시아가 직접 통치하러 오실 때까지 환난과 불행이 들이닥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이 마지막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분께서 곧 오시기를 고대하였는데, 오늘 독서의 말씀도 이 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재림을 갈망하는 신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1서의 끝부분에서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5,16-18) 하고 힘주어 권면하는데, 바오로 사도가 먼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신자들에게서 어떤 영예나 보답도 바라지 않았지만, 신자들의 믿음에 대해서 기뻐하고 그들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는 소식에 힘을 받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오늘 축일을 지내는 모니카 성녀의 일생도 그러했습니다. 부모의 권유로 나이 많고 자유분방한 남편과 결혼하여 생활이 평탄하지 않았고 더욱이 매사에 아들 편을 드는 시어머니는 물론, 방탕한 생활과 마니교 이단에 빠진 아들 아우구스티노 덕분에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희생하면서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모니카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아들마저 모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자, 모니카는 “현세의 소망이 다 채워졌으니 세상 낙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남긴 다음, 얼마 뒤에 이 지상 나그네 생활을 마감하고 꿈에도 그리던 하느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여인은 연약할지 모르나 어머니는 강합니다. 감사하며 기도하는 어머니는 놀라울 정도로 강합니다!
<깨어
있어라.> 송영진 모세 신부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2-44)."
이
말씀은, 종말과 재림에 관한 말씀인데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종말과 재림은 틀림없이 온다. 2)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른다. 3)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도둑이
온다는 것은 분명한데 언제 올지 모른다면 주인은
계속 깨어 있으면서 집을 지킬 것입니다. 반대로,
도둑이 언제 올지 안다면 그 시간에만 깨어서 대비하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이라는 말은, "밤
몇 시에 올지는 몰라도 도둑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을 집주인이 알면" 으로
읽어야 합니다. 집주인이
알고 있는 것은 도둑이 오는 시각이 아니라 온다는 사실입니다.
종말과
재림의 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마태 24,36)." 그러니
인간들이 그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셨을까? 아버지와
예수님은 완전히 일치되어 있으니 아버지께서
알고 계신 것은 예수님도 알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씀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을 '말할 수 없다.'로 해석하기도 하고,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알고 계시지만 사람이신
예수님은 모르신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어떻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종말의
날과 시간을 계산하거나 추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항상 깨어 있는 일', 그것뿐입니다.
어떤
재난이 발생하면, "혹시
이것이 종말의 징조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답은
"모른다."입니다. 그
재난이 종말의 징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종말은
천 년 뒤, 만 년 뒤에 올 수도 있고, 오늘, 아니면 내일 올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왜 우리는 종말의 날과 시간을 몰라야 하는 것일까? 만일에
우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미리 알게 된다면, 아마도
분명히 인간 사회의 모든 활동이 정지될 것입니다. 대규모
혼란이 일어나든지, 아니면 전부 다 무기력한 상태가 되든지... 그러니
그날과 그 시간을 미리 알아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말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하면 안 되는 일은 안 하고... 평소에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면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고...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마태 24,45-47)."
주인이
없는 동안에 '종'이 해야 할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식솔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는 일"은 평소에도 하는 일입니다. 그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라고 인정을 받는 것은, 주인이
있든지 없든지, 주인이 보든지 안 보든지 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평소에 하던 대로 성실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4,48-51)."
'못된
종'이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되는 것은, 주인이
볼 때에는 성실하게 일을 잘하다가 주인이 없으면 일을 안 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감독할 때에 일을 잘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주인이
없거나 안 볼 때에도 잘해야 진짜로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씀에서는,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방심하다가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주인을 맞이하는 상황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반대로
주인이 예상했던 때보다 더 늦게 온다면 어떻게 될까? 주인이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그 시각에는 당연히
성실한 모습으로 일을 잘하고 있겠지만, 그
시각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면 기다리다가 지칠 것이고, 차츰
긴장이 풀어지면서 방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이천 년 동안 "지금이 혹시 종말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무디어졌고, 이제는 종말과 재림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바로 이런 때가 더욱 조심해야 할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이라는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입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4,44)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해야겠지요.
안스럽지만 잠도 못자고
공부 또 공부하는 아이들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저렇게까지 꼭 해야만 하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금메달이라는 목표가 있기에
그토록 매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떤가요?
그냥 대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늘나라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해서
과연 들어갈 수는 있을까요?
아무리 하느님 자비하시고
천국이 널널하다 하더라도
이러다가 미끄러지지는 않을까요?
"나중에 더 열심히 하지 뭐" 하며
하루하루 미루다가
정말 때를 놓치면 어떡하지요?
그러니 오늘부터
바로 열심히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더이상 기회가 없으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출처] 2015.08.27.|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