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9.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마르 6,17-29)

2015. 8. 29. 오전 5: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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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9.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마르 6,17-29)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이러한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마르 6,17-29 참조).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비롯되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2014,12,19 대림 제3주간 금요일 - 삼손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품은 죽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면서, 그가 온 나라와 맞서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임금들과 사제들과 백성들 모두가 자기에 맞서 싸우겠지만,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예레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세례자 요한

시편 71(70),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15ㄴㄷ 참조)
◎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
○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할 산성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보루시옵니다. 저의 하느님, 악인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
○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 ◎
○ 당신 의로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저의 입은 온종일 이야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을 전하여 왔나이다. ◎     

세례자 요한의 죽음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이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지만, 잔치 자리에서 자기를 즐겁게 한 헤로디아의 딸에게 한 사소한 약속 때문에 요한의 목을 베어 죽이고 만다.(마르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평소에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싫어하였지만, 진리 편에서 말하는 그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과 무모한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쏟아질 비난과 비웃음이 두려워 요한의 목을 베도록 지시한 뒤, 괴로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자기의 불의를 질타하는 요한을 죽이려고 자기 딸마저 이용합니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여인! 세상에서 요한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언자를 대하는 인간의 양면적인 태도를 보는 듯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예언자가 전하는 말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를, 또는 그의 말을 가두어 두기는 하지만 죽이기까지는 두렵습니다. 가두어 두는 것, 그저 진실을 꼭 덮어 두려는 시도겠지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없애야 할 것 같습니다.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도 되겠지만,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없애 버려야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의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짐이 되어 그에게 덫을 놓으려 하고(지혜 2,12-14 참조), 그럴 듯한 핑계나 이유로 포장하고 과장해서 상대방을 제거하기도 하는데,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헤로데처럼 다른 사람의 비웃음이 두려워서 진리보다는 거짓을 선택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오늘도 옷깃을 여며야 하겠습니다
.     


<세례자 요한의 죽음>  송영진 모세 신부

복음서를 보면,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혼인을 비판하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이 헤로데와 헤로디아를 비판한 일은 그의 '회개 선포'에 속한 일이고, 따라서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죽은 순교자가 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를 공격하면 자기가 어떻게 될지 몰랐을까? 아마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자기가 살해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

말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충성심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침묵을 지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예언자가 자기 한 몸 편하자고 침묵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예언자가 아니고, 그러면 그의 예언 활동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가 전에 했던 말들까지 전부 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 됩니다.

만일에 세례자 요한이 "이것은 왕의 사생활이니 참견하지 말고 내버려 두자." 라고 생각하면서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혼인에 대해서 침묵을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그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회개하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그의 '회개 선포' 전체가 힘을 잃었을 것이고, 그는 '메시아의 선구자' 라는 지위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우리가 그를 기념하고 존경하는 일도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은 일종의 언론 탄압입니다. 듣기 싫은 말을 하니까 죽여서 그의 입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만일에 탄압이 무서워서, 권력의 '악'에 대해서 언론이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언론이 아니고, 그런 언론이 하는 말들은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요즘에 보면, 권력의 '악'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권력자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는 언론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론의 탈을 쓴 간신(奸臣)일 뿐입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예언자들의) 죽음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당신의 예언자가 억울하게 죽는 것을 보고만 계셨을까? 왜 예언자가 살해당하는 일을 막지 않으셨을까?"

마침 제1독서에 하느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예레 1,19)."

그런데 예레미야는 평생 박해받으면서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예언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박해받고 살해당한 예언자들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그냥 그렇게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실까? 이 질문은 카인이 아벨을 죽일 때 이미 시작된 질문이고, 오늘날에도 의로운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나 계획을 잘 모릅니다.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카인과 아벨이,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가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구하기 위해서 헤로데에게 천벌을 내리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죄를 지은 자녀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을 때, 또는 죄를 지으려고 할 때, 바로 천벌이 내린다면 우리 가운데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교회 박해를 주도했던 '사울'에게 천벌을 내리셨다면, 우리 교회에 '바오로 사도'는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를 비판한 것은 '죽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 헤로데를 회개시켜서 '함께 살자고' 한 일입니다. 만일에 헤로데가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했다면...? 헤로데도 바오로 사도 같은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회개를 거부하고 멸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세례자 요한의 활동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세속의 눈으로 보면 실패로 보이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성공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또 신앙인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임무 수행은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억울하게 죽었지만, 죽은 것은 그의 '육신'이었을 뿐이고, 그의 영혼은 하느님 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니 그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라고 하신 말씀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과 함께 있겠다고 하신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의 육신을 죽였지만, 그가 진짜로 죽인 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이었습니다.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마르 6,23)

우리는 가끔 기분에 따라
좋으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까지 덜렁 해버리곤 합니다.
또 마음에 안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등
너무 과장된 표현을 하지요.

나름대로 지혜롭게
왕노릇을 하던 헤로데도
헤로디아의 딸의 춤에 매혹되어
그만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습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있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입니다.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이 헛말 때문에
헤로데는 2천년 역사 안에
악인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나도 가끔 그렇게
헛말을 내뱉지는 않는지
돌아 볼 일입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은
허풍이나 과장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잘 생각하며 내뱉읍시다.
그 헛말이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출처] 2015.08.29.|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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