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월요일]기쁜소식 (루카 4,16-30)

2015. 8. 31. 오전 6: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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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월요일]기쁜소식 (루카 4,16-30)

성경이야기 색칠자료

테살로니카 1서가 작성되던 시기에, 신자들은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신자들이 염려하자,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시리라고 설명한다(제1독서테살로니카 1서  4,13-18).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의 설교로 공생활을 시작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당신의 사명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이로써 구약의 기다림이 성취된다(루카복음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이사61,1-2)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아침 편지/12월 24일/성탄의 기쁜 소식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내용이 복음서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각 복음서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설교가 예수님의 첫 말씀으로 소개되는데, 일종의 취임 연설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사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이 돋보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 곧 메시아시라고 선언하셨는데, 나자렛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으로 당신께서 구약의 가르침을 성취하는 분이라고 선포하시자, 고향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못합니다.
둘째는 메시아 예수님의 사명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희년 선포라는 점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예수님의 첫 말씀으로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인 복음 선포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다 알지만 따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기차역에서 노숙인들이 사소한 문제로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조용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들이 서둘러 자리를 옮겨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 오늘의 복음 말씀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곧바로 그 생각을 접기는 하였습니다만, 이런 마음이 지속된다면 “요셉의 아들”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결코 알아볼 수도, 고백할 수 없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회개의 진실: 기쁜소식선교회의 회개에 관하여_1

<기쁜 소식>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그런데 '모든 사람'이 기쁜 소식을 듣고 기뻐한 것은 아닙니다. 기뻐하기는커녕 화를 내거나 싫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복음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 방법을 물었던 어떤 부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시자 슬퍼하면서 떠났습니다.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는 이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루카 18,22-23)."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분명히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 기쁜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는커녕 슬퍼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늘의 보물보다 지상의 재물에서 더 큰 기쁨을 얻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라고 가르치셨을 때,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루카 16,14).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구원과 생명'보다 지상에서의 부귀영화를 더 원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2) 예수님의 '해방 선포'는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기쁜 소식'이었고,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지배 세력은 예수님 때문에 기득권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습니다(요한 11,45-53).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이 '두려운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8월 15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친일파 무리에게는 '슬프고 두려웠던 날'입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잃게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처음부터 버리신 것일까?" 그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해방은 '모든 사람'의 해방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들이고, 그들은 그 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노예제도 폐지는 노예들에게만 해방을 준 일이 아니라, 주인들에게도 해방을 준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악'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일이기 때문입니다.)

3)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좁은 문'을 향해서 가는 것은 싫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복음이 달갑지 않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배고픈 자유인의 삶'보다는 '배부른 노예의 삶'을 더 원하는 경우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히 노예 생활이 싫어서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고향을 향해서 갔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게 되자 이집트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했고, "왜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는가?" 라고 불평했습니다(탈출 16,3).

오늘날에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신앙생활이) 왜 꼭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좀 더 편안한 길은 없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활, 생명, 영광은 좋은데 그 앞에 있는 십자가는 싫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4)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신 일은, 유대인들만의 구원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구원을 선포하신 일이기 때문에 인류 전체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화가 나는 소식'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 이야기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 이야기를 하셨을 때(루카 4,24-27), 나자렛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기쁜 소식'은 '나에게만' 기쁨을 주는 소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나만' 들어가면 그만인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들어가야 하는 나라입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은 모두 제외하고, 친한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는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고 복음을 받아들여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인이라고 해도, 복음이 주는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자기 안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


성경 보존의 역사 1부 (마조레트)[성경의 맥을 잡아라] 90일만에 성경 일독 끝내는 통큰 통독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21)

어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들으면
참 좋습니다.
어떤 스님의 법문도 참 멋집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도
참 재미있습니다.

이런 좋은 말씀을 늘 듣고 살면
참 좋습니다.
그렇게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아무리 좋은 말씀도
그것이 내 안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다 헛것입니다.

그 말씀이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말씀이구나
느끼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그저 좋은 말로만 남고
다른 누군가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여긴 적은 없는지요?
그렇다면 말씀을 잘못 알아들은 겁니다.
나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면
그 말씀은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죽은 말씀에 불과합니다.

말씀이 참으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바로 나에게 달렸습니다.

오늘 내가 들은 말씀은
바로 나를 위한 말씀인가요?

[출처] 2015.08.31.|작성자 알타반

새로운 눈을 떠라       반영억라파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혼을 내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으면 좋으련만 그게 여의치 않자 결국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아닌 척 하면서 자기 뜻을 관철합니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쓴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통해 오히려 자기발전의 기회를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눌러버리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남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예수님을 좋게 생각했습니다(사도10,38). 그가 하는 말씀이 진리요, 은총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목수 요셉의 아들로 알려지면서 그 권위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은총의 보유자이시고 권위를 지니셨지만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은 주어진 은총을 놓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는 게 병’입니다. 사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얻게 됩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시라는 표징과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구미에 맞는 표징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육받은 편견대로 판단하며 자기들 식으로 구원을 상상하였습니다. 고은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통찰한 것처럼 힘이 빠지고 내 것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고 그러다가 의심하며 심지어 예수가 밥 먹여 주냐? 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기대가 자기방식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혼란을 겪으며‘다 필요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가실 길을 가십니다(루카 4,30).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 그대로 입니다.“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5510-11).


결국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같지 않고 주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같지 않습니다.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고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삶을 우리가 살아야지 그분이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기를 바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 생각과 욕구에 맞지 않으면 내 것을 바꾸어야지 주님께 바꾸라고 떼를 쓰고 배척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너 죽을래!’'살려면 내 입맛에 맞춰!' 하고 구박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희년과 안식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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