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사랑의 계명 (마태22,34-40)

2015. 8. 20. 오후 10: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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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사랑의 계명 (마태22,34-40)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투아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또한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대항하여 싸웠다. 1914년에 선종한 비오 10세 교황은 1954년에 시성되었다.    

  (45) 룻과 나오미 나오미와 룻

유다 베들레헴 출신으로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내려간 나오미는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는다. 그러나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올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모압 여자인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지내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룻기1,1.3-6.14ㄴ-16.22)
1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시편 146(145),5-6ㄱㄴ.6ㄷ-7.8-9ㄱ.9ㄴㄷ-10ㄱㄴ(◎ 1ㄴ)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네. ◎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네.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된다.(마태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오늘 독서 룻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 줍니다. 모압 땅 친족에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홀로 남은 시어머니 곁에 남을 것인가?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룻은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룻은 자기를 사랑해 줄 사람, 곧 새로운 배우자를 찾아 나서지 않고 자기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을 선택합니다. 나오미와 함께 머물겠다는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룻기는 룻의 동서인 오르파를 비난하지 않으며, 반드시 룻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오르파의 선택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모압 여자였기에, 모압인들이 섬기던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도 룻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합니다. 오르파의 선택은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아들이 없는 과부는 살 길이 막막했기에, 차라리 자기 친족에게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지켜 가기에도 너무나 각박한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타산적으로 삭막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룻은,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이 세상에는 룻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수많은 ‘나오미’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룻의 선택으로 나오미의 생존은 물론, 훗날 다윗 왕조가 탄생하게 됩니다.
오늘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당연한 선택과 결정이라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계명>  송영진 모세 신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이 말씀은, "모든 계명과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계명들과 율법들을 실천하는 일에 관한 가르침만은 아니고, '신앙'은 곧 '사랑'이고, 신앙생활은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1코린 13,1-3).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께서 예수님 잉태를 받아들이신 일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또는 인생 전부를 걸고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복종하신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했기 때문에 하신 일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말은 실제로 '종'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종처럼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바랍니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나도 바란다." 라는 뜻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분이 바라시는 일을 함께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는 사랑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또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일은 성모님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 그것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을 더 꼽는다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어떤 가난한 과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3-44)."

그 과부는 '자신의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겼기 때문에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 사랑입니다. 생활비든지 목숨이든지 간에. 그 가난한 과부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카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아들이시고, 카인의 제물은 받아들이시지 않은 것은 그의 제물이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타냅니다. 물론 창세기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즉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바쳤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만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대충' 준비해서 바쳤을 것입니다. 혹시 정성을 다 쏟아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복을 받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바친 제물이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인에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지만 이웃을(형제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가 아벨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했다면,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아들이신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기의 제물을 받아들이시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반성했을 것입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동생을 죽이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카인과 아벨이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던 때에는 계명이나 율법 같은 것은 아예 없었던 때입니다. 그래서 카인의 죄는 계명을 어긴 죄가 아니라, '사랑을 거스른 죄'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살인죄를 단죄하시고, 그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신 일은(창세 4,11), 계명과 율법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사랑'이 하느님의 법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아직 십계명이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법'으로 카인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도 심판의 기준은 '사랑'입니다(마태 25,31-46).

'사랑'은 계명들과 율법들 위에 있고, 계명들과 율법들의 원천입니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모든 계명들과 율법들은 '사랑'이라는 '하느님 법'의 구체적인 실천 지침, 즉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을 하여라." 라고 되어 있든지 "...을 하지 마라." 라고 되어 있든지 간에 계명들과 율법들은 모두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따라서 사랑 없이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킨다면, 그것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정말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지극 정성으로 하느님의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킬 것입니다.

사랑 없이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법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또 그들은 하느님은 사랑하지 않고 법만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룻 1,4)

나오미는 모압출신 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아들 둘이 다 죽어
며느리들 밖에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둘 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오르파는 그 길로 떠났는데
룻은 늙은 시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정성과 효심으로 시어머니를 섬겨
훗날에 이스라엘의 구원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며느리이신가요?
어떤 사위이신가요?
좋을 때만이 아니라 안 좋을 때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하는 며느리시리라 믿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일수록
장인장모를 더 잘 섬기는
그런 사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며느리고 사위시기에
하느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여러분을 보살펴 주실 겁니다.

오늘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
문안인사 드려보면 어떨까요?
장인장모님께
안부 전화 올려 보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출처] 2015.08.21.|작성자 알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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