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목요일]원수사랑 (루카 6,27-38)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콜로새서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을 입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이다.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콜로3,12-17)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주는 것은 죄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우리는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루카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콜로새서는 하느님께 선택받은 거룩한 사람들은 위엄이나 권위를 갖추어야 하거나, 더욱이 그들이 무슨 벼슬을 받은 사람처럼 위세를 부리거나 세상 사람들에게서 당연히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콜로새서가 권면하는 덕목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 한결같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 등 어쩌면 약하게만 보이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늘 굴복해야 하는 듯한 태도들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말며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고, 하느님처럼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정말로 힘들기 때문에 의지가 따라야만 가능하겠지요.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헐뜯는 사람, 곧 원수 같은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그를 위해 축복을 기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동태 복수법을 예수님께서는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의 계명으로 대치시키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소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하는 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죄인들도 자기들이 원하는 반대급부가 분명하면 다른 사람을 돌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는데, 여기서 기준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선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느님처럼 선하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강조하십니다. 미운 사람, 원수 같은 사람의 행복을 기원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그러니 그저 결단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송영진 모세 신부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 6,27-28)."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사실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느님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의로운 이와 불의한 이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의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너희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라. 비록 원수라고 해도 똑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더라도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더라도 축복하고, 너희를 학대하더라도 그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여라." '모든 사람'이 다 우리의 이웃이고 형제입니다. (우리의 이웃과 형제는 '모든 사람'입니다.) 이웃과 형제 가운데 원수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한데, 그래도 이웃이고 형제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원수 같아도 부모는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모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확대해서 실천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루카 6,29-30)." 이 말씀은 하느님의 '선(善)'을 실현시키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악으로는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선은 오직 선으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악인의 악행을 참기만 하라는 뜻도 아니고, 그 악행을 도와주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악을 막고, 선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나의 것을 훔치려고 한다면 그것을 막고,그 다음에(또는 훔치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에게 나의 것을 주면 됩니다. 이것은 이중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을 막는 것도 선이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의 것을 주는 것도 선입니다.
그런데 나보다 더 부유하고,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와서 나의 것을 빼앗아가려고 한다면? 예를 들면 독재자가 권력의 힘으로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간다면? 당연히 그것을 막아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는 안 되니까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막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독재자가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독재 권력의 횡포를 막는 것도 선이고, 독재자를 회개시키는 것도 선입니다.
그렇다면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폭력에 굴복하는 일이 되지 않는가? 이 말씀은 '앙갚음' 하지 말라는 뜻의 비유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말 때문에 우리는 구약시대를 사적인 복수가 허용되었던 시대로만 생각할 때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피성' 제도가 좋은 예입니다. 민수기 35장과 여호수아기 20장 등을 보면, 실수로 사람을 죽인 이가(과실치사 용의자가) 정당한 재판을 받기 전에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보복 살인을 당하지 않도록) 도피성을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민수 35,9-12; 여호 20,1-6).
용의자에게 정당한 재판을 받을 기회를 주었다는 점도 중요하고, 재판과 처벌이 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의 죄를 개인이 마음대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앞에서 공적으로 재판과 처벌이 이루어졌다는 것. 이것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루카 6,37)."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심판은 하느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렇지만 최후의 심판만 기다릴 수는 없고, 지상에서 처리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 권한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바오로 사도는 세속의 정부와 사법제도도 하느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제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13,1-7).
구약시대의 도피성 제도나 사도들의 교도권이나 세속의 사법제도나 모두 정의와 선의 실현을 위한 제도입니다. 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없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만일에 그런 제도가 없다면, 힘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기가 정말로 힘들어집니다. "앙갚음 하지 마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약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복수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 힘으로 복수할 수 있어도 그 힘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콜로 3,13)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았지만
열심한 신자가 된 콜로새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새길 만하지만
오늘 말씀 중에는
이 구절이 눈에 띄네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서로 불평할 일이 참 많지요.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라"고
하시네요.
사실 서로 불평해 봤자
짜증만 나고
사이만 안 좋아질 뿐인데
어리석게도 그게 정상인 양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오늘 사랑 때문에
혹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생기더라도
참아주고 용서해 주면 어떨까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2015.09.10.|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