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예수님의 족보 (마태 1,1-16.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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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예언서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고 예고한다.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 두실 것이며, 태어날 이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나설 것이다.(미카 5,1-4ㄱ)<또는 로마 8,28-3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다윗의 후손인 요셉은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로써 동정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을 낳으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는데,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성모님의 탄생에 대하여 언급하는 부분이 따로 없습니다.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는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그분께서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미리 성자의 어머니로 준비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날 아드님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오래된 예언을 인용합니다.
미카 예언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분이 베들레헴, 곧 다윗의 고향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리라고 예고하였고, 이스라엘은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약속의 실현을 기다리는데, 그 아이가 이스라엘에게 평화가 될 것입니다. 한편 마태오 복음은,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고 하리라.”는 칠백 년 전의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께 이르러 성취되었음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긴 족보도 세세 대대로 준비되어 온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기나긴 시간을 거치면서 하느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공들여 이룩하신 역사! 성모님께서는 그 하느님 계획의 마지막 고리이십니다. 성모님의 탄생에서 우리는 오랜 기다림이 끝나고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께서 역사 안으로 직접 들어오실 때가 되었음을 감지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도 성모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구속 사업에 특별한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천명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택한 이 신비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성모님께서 고백하셨듯이 분명 그분의 겸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성모님을 본받아서> 송영진 모세 신부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인류
구원'이 '처음부터' 하느님의 계획에 의한 일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루카는
예수님에서 시작해서 하느님으로 끝나는 족보를 기록했고(루카 3,23-38), 마태오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나는 족보를 기록했는데(마태 1,2-16), 두
족보가 다 실제로는, 처음은 하느님이고 마지막은 예수님인 족보입니다. 이것은,
'인류 구원'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시작하신 일이고, 예수님께서
마무리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간
연결 고리라는 점에서 모두 다 중요한 인물들이고, 우리가
무시해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성모님은 족보에서(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가장
특별한 위치에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신앙인의
모범이 되시는 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중요하다는 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하느님의 계획과 상관없이, 어쩌다가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든지 무엇을 하면서 살든지 간에...
이 말을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라고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이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서 중요한 사람입니다.자기가 자기 자신을 쓸모없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누구는
주춧돌이 되고, 누구는 기둥이 되고, 누구는 작은 벽돌이 되지만, 주춧돌과
기둥만 중요하고, 작은
벽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 판단을 하면 안 됩니다.혹시
지금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는 돌이라고 생각하고 버렸지만, 그
돌은 모퉁이의 머릿돌이었습니다. 만일에
초대 교회가 '사울'을 쓸모없는 돌이라고 판단하고 버렸다면, 위대한
'바오로 사도'를 얻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앞에서,
모두가 다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성모님은 가장 특별한 위치에 계시는 분이라는 말을 했는데,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쓸모'를 우리가
열매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관해서 모범이 되시는 분이고, 그래서
하느님께도 또 우리에게도 특별한 분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우리는 성모님을 그대로 본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면 됩니다. 성모님의
믿음, 사랑, 희망, 순종, 겸손, 응답 등을. 그런데
성모님을 본받자는 말에 대해서, "성모님은
성모님이시니까 그렇게 사셨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받자는 말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따라 하자는 말입니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본받자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하신 일들은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씀은 당신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을 주실 때에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
말씀은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처럼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완전한 사랑'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지만, 인간의
힘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도 우리가 본받을 수 있고, 하느님께서 하신 일도 우리가 본받을 수 있으니, 성모님께서 하신 일을 본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모님의 믿음, 사랑, 희망, 순종, 겸손, 응답 등은, 우리 손에 닿지 않는, 어디 높은 곳에 있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성덕이 아니라, 누구나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안 하려고 하니까 못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을 기념하는 축일은 동방교회에서 먼저 지냈다.
이는 마리아가 탄생한 곳으로 여겨지는 예루살렘에 건축된 성녀 안나 성당의 축성기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마리아의 탄생 장소가 나자렛임을 주장한다.
서방교회에서는 제84대 세르지오 교황의 재임기간(687-701) 중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4대축일을 정하고 우선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이를 경축하였다고 한다.
당시 마리아의 4대축일은 성모영보(주님탄생예고)축일, 성모승천축일, 성모성탄축일, 마리아 빛의 축일이다.
이들 축일들은 모두가 예수와 세례자 요한에 대한 성서상의 탄생예고와 출생, 그리고 마리아에 대한 초대교회의 신심에 근거한 것이다.
마리아의 4대축일 중 “마리아 빛의 축일”은 마리아의 입장에서 본 객관적인 축일이지
마리아 본인의 주관적인 축일은 아니다.
이 축일은 이미 동방교회에서 예수탄생 후 8일째 있었던 예수님의 명명(命名)과
예루살렘성전에서의 봉헌(루카 2,21-40)을 기념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축일의 이름도 “예수와 이스라엘의 만남 축일”이었다.
이를 서방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축일로 받아들였고 후일 “초 축성과 촛불행렬”을 곁들였다.
1960년 가톨릭교회는 전례개혁을 통하여 이 축일을 “주님봉헌축일”(2월 2일)로 축일명을 변경하였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장소와 일자에 대하여 정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서방교회에서 9월 8일인 오늘 이 축일을 기념하였던 것이다.
이 날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없지만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9월 8일 성모의 탄신일에서 거꾸로 계산하여 12월 8일로 정하였다는 것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12월 8일 마리아의 잉태 후 9개월이 지난 9월 8일이 마리아의 탄생일이 되는 셈이다. 주님탄생예고축일(3월 25일)도 주님성탄대축일(12월 25일)에서 거꾸로 계산(9개월 전)하여 정해진 것이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축일에 봉독되는 복음은 17절과 마지막 24~25절을 뺀 마태오복음 1장 전체로서 예수의 족보에 관한 내용이다.
예수의 족보는 마태오복음(1,1-17)과 루카복음(3,23-39)에만 기록되어있다.
둘은 다 구약성서를 토대로 족보를 편집하였지만 비교해보면 조상들의 이름에서 많은 차이점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표기도 있고 누락된 조상도 있다.
아무튼 루카는 예수님부터 아담까지 77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14× 3)대를 내려가며 기록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두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족보 중 어느 것도 정확한 족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두 족보는 모두 고고학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신학적으로 예수의 정체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밝히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으로서 약속된 메시아이시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모든 조상의 계보를 통틀어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가 편집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신학적으로 두 가지 특이할만한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① 첫째는 족보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하고 부인 넷의 이름을 언급한 점이다.
여인들은 다말(3절), 라합(5절), 룻(5절),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6절)이다.
다말과 라합은 여호수아가 정복하게 되는 가나안의 원주민 출신이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인데 나중에 유다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게 된다.(창세 38,6; 1역대 2,4)
라합은 예리고를 정찰하러 나간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다고 해서 여호수아가 그녀와 가족들을 이스라엘 가문으로 받아들였다.(여호 6,25)
룻은 나오미의 며느리로서 모압 출신이었지만 예루살렘에 들어가 보아즈를 만나서 아들 오벳을 낳게 된다.(룻기 참조)
우리야의 아내는 바쎄바로서 다윗이 우리야를 전장으로 내보내 죽게 한 다음 아내로 맞아 솔로몬을 낳는다.(2사무 11,3.15.17; 12,24)
이렇게 마태오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 넷은 모두 이방인 출신으로서 각각 기이한 인연으로 이스라엘 가문과 관계를 가지게 되어 가문의 혈통을 잇게 한다.
이 점은 언급된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구원의 역사에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개입하는 하느님의 섭리를 밝히고, 예수님을 또한 이방인의 메시아로 소개하려는 마태오의 강한 의도로 보인다.
②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16절)는 대목에서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났다.”는 점이다.
족보의 모든 부분에, 또 등장하는 4명 여인의 경우에도 아버지가 “주격”으로 아들은 “목적격”으로 구사되지만 이 대목에서는 아들 예수가 “주격”으로 구사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의도를 더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를 강조하는 것이고(1,18-25), 다른 하나는 예수님, 즉 하느님이 모든 구원역사를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주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과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23절)께서 직접 자기 백성을 죄에서 해방시켜 구원하실 것(21절)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마태오가 기록한 예수의 족보(마태 1,1-17)를 일년 중 3번 미사복음으로 봉독한다. 대림시기의 12월 17일과 성탄시기를 시작하는 성탄전야미사, 그리고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축일이다. 반면 루카가 기록한 예수의 족보(루가 3,23-38)는 성서를 공부하는 개인의 몫으로 돌렸다.
마태오는 족보에서 예수가 아브라함의 정통 후손인 다윗의 왕통을 이어받은 메시아임을 보여주며, 루카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가문이 다윗과 아브라함과 아담을 거쳐 하느님께 이름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늘만이라도 예수님의 족보를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가면서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계획을 묵상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 많은 인간이 사는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철저한 구원계획에 천지창조 때부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오와 루카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역사에 꼭 필요했던 사람들, 그가 비록 여자라고 해도 초대해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성취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오늘까지 이어진 예수님의 족보에 바로 우리 각자의 이름도 등재(登載)되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 1,23)
성모님 탄생 축일,
말하자면 성모님 생신날입니다.
우리 어머니 생신 때
유일하게 온 가족이 다 모이기에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축제일입니다.
올해는 메르스 때문에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생신도
같이 못지냈습니다.
늦었지만 가을에라도
함께 모이자고들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형제가 되신 예수님의 어머니시니
생신 축하받아 마땅합니다.
오늘 성모님께 인사올릴 때
성모님 생신축하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봅시다.
성모님이 낳으신 예수님의 이름은
사실 '임마누엘'이라네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뜻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늘 느낀다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함께 계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아직
부활하시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계신 분인지
웃기는 소리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믿으시나요?
복되십니다~~^^
[출처] 2015.09.08.|작성자 알타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