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눈속의 들보. 티(루카 6,39-42)

2015. 9. 11. 오전 6: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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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눈속의 들보. 티(루카 6,39-42)

사도 바울 ⑦ 예루살렘에서 로마로(A.D 58-67년)-로마행 A.D 61년 -감옥-순교

 오늘부터 묵상하게 될 티모테오 1서는 사도들 다음 세대의 사목자들을 위한 서간이다. 이 편지는 교회 안에서 직무를 맡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바오로 사도를 모범으로 하여 제시해 주는 소중한 서간이다.(1티모  1,1-2.12-14)
1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과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나 바오로가, 2 믿음으로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09-121-6 네 눈 속의 들보를 빼어라(마7:3-5)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을 인도하는 사람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빼내려 해서는 안 된다.(루카 6,39-42)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사전] 바울서신(~書信, 書簡) - 이탈리아 로마감옥 옥중서신 등 13통

눈먼 이가 눈먼 이의 길잡이가 될 수 없듯이, 알지 못하면 가르칠 수 없습니다. 공자도 수신제가, 곧 먼저 덕을 쌓아서 자기 가정의 평화를 이룬 다음에 다른 사람 앞에 나서라고 하였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하느님과 예수님을 넘어설 생각일랑 아예 하지를 말 것이며, 언제나 그분의 모습을 삶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됩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그런데 다른 사람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려고 평생 노력을 해도, 보이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가능하다면 형제의 잘못을 지적하여 그가 고치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 또한 형제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 표현이 아닐까요?’(마태 18,15-18; 에제 3,16-21 참조)
이렇게 넋두리도 해보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형제의 눈 속에 티가 들어 있다고 해서 그에게 화살을 돌릴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형제’라면 그의 눈 속에 든 티는 나에게도 아픔이고 상처이며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보다 더, 나는 그의 눈에 든 티를 짊어질 뿐, 그는 내 눈에 든 커다란 들보를 짊어져야 하지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형제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가장 선한 사람에게도 적지 않은 결점이 있듯이, 우리 모두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에 형제적인 충고가 아닌 비난을 위한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에게도 분명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하여 헐뜯기보다는, 오히려 장점을 찾아내서 격려해 주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지금 우리가 이웃을 대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종말에 우리를 그렇게 대하실 것이라고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라

<들보, 티>  송영진 모세 신부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1-42)."


이 말씀은, 자기 자신은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형제는 죄인이라고 판단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형제를 심판하고 단죄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과(루카 6,37) 같은 뜻입니다.


좋은 예가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입니다.
어떤 바리사이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


이 말에서 '다른 사람들'이라는 말은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에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강도짓을 하고 있고,
불의를 저지르고 있고, 간음을 하고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 바리사이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죄인 취급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또 '저 세리'는 죄인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죄도 짓고 있습니다.
당시의 세리들이 일반적으로 죄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모든 세리들이 다 그랬던 것도 아니고,
특히 그가 지목한 '저 세리'가 정말로 죄인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은 하느님만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 바리사이는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라는 위선자들의 말은,
"내 눈 속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내 눈은 깨끗하니까
내가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위선자들이 자기는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는 자기 죄를 남들 모르게 감추고 자기는 죄가 없는 척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이 안타까워서 '형제애로써' 충고를 하는 경우라면?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해 주겠다."가 아니라,
"깨끗해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하자." 라고 말하는 경우라면?
예수님께서 그런 형제애 실천까지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실 아픈 사람이, 또는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회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뉘우치고, 회개하고, 보속하는 과정을 겪어 본 사람이
다른 죄인들의 회개를 더 잘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죄인이 죄인의 심정을 잘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죄인'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이 죄의 아픔과 슬픔을 잘 안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스로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즉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인은
다른 사람의 회개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인'을 가리킵니다.
자기는 회개하기를 거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외면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지적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당신의 양들을 맡기신 것은(요한 21,15-17)
그에게 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의 회개를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직접 죄의 아픔과 슬픔을 겪었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방황하는 양들을 누구보다도 더 잘 돌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바로 이어서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
그 다음에 형제를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 성덕을 쌓아서, 자기 혼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들보와 티에 관한 말씀 앞에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루카 6,39)"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인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태 5,13-16).
교회가, 또 신앙인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야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면 교회와 신앙인들이 먼저 구원받은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려면 먼저 복음 정신으로 살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교회와 신앙인들이 복음 정신으로 살기는커녕 세속화 되어서
세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는 일이 됩니다.


(정의 구현 운동을 하려면 교회 안에서부터 정의가 실현되어 있어야 하고,
인권 운동을 하려면 교회 안에서부터 인권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고...)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루카 6,39)

여러분은
캄캄하게 어둔밤을 길어 본 적이 있나요?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을 때
누가 등불을 비춰준다면
그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겠지요?

우리 삶의 여정에는
도저히 앞이 안 보일 때가
누구에게나 가끔씩은 찾아옵니다.
그때 나의 손을 잡아
앞길을 인도해 주는
빛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로 우리의 길이요 빛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걱정이 없습니다.

그분의 빛을 받아
어둠과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해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빛이신 그분의 빛을 받아
다른 사람의 길을 비추어주는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답니다.

오늘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를 보게되면
그냥 그 사람 앞에서
작은 빛만 비추어 주는 사람 되소서.

그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태양같은
더 큰 빛을 받아야 함을
늘 기억합시다.

우리가 빛이 아니라
우리는 단지
빛을 비추는 거울이나 반사경일 따름입니다.


 이정임글라라

내 눈에서 들보를 어떻게 빼 낼 수 있을까?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2)

 

오늘 복음을 통해 그렇다면 나의 눈에 있는 들보는 어떻게 빼 낼 수 있을까를 묵상해 보았다.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40) 그렇다면 스승은 누구이시고 그 스승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시고 계실까?  그 또한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과 협잡꾼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2티모 3,13-17)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 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될 때에만이 나의 눈에 있는 들보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고, 볼 수 있음으로써 빼 낼 수도 있고 그렇게 됨으로써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승을 통해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희망을 주시고 계신다. 아, 정말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리하여 제 눈에 있는 들보를 빼 내고 그리고 더불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도 보고 빼내 줄 수 있는 은총이 저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 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 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 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 * * * ~~~~~~~~~~~~

 

                                   자신의 결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웃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입니다

 

갈릴레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서 주님의 말씀은 계속 됩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 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 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함께 얽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자주 되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웃을 심판하고 저울질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말입니다.

이때마다 발견하는 한결같은 사실은, 내 마음이 하느님 안에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존재가 거부되었거나 혹은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혼란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말씀은 이어집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들보를 빼낸다는 것은 어느 때이고 중요합니다.

뒤돌아보니 '들보를 빼낸다는 것'이 저에게는 '하느님 안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리를 하다 보면 많은 부분 나 자신의 약점이나 결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웃을 심판하고 되질하며 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들보 중에 가장 큰 것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의 약점과 결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첫걸음인데도 말입니다.

오늘도 나 자신을 정리하며, 이웃을 마음깊이 받아들이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홍성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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