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토요일]좋은열매 (루카 6,43-49)

2015. 9. 12. 오전 7: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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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토요일]좋은열매 (루카 6,43-49)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을 박해하고 모독하던 바오로를 사도로 부르신 경우는 그분을 믿게 될 이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하느님께서 죄인에게 베푸시는 인내가 그를 통하여 드러났기 때문이다.(티모1서1,15-17)
사랑하는 그대여,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좋은나무, 좋은열매 (눅6;43~49) 2014,9,21샘물교회 구역 셀 예배 공과사과나무 열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 말씀을 실천하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맺는 열매가 그들의 믿음을 입증한다.(루카 6,43-4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46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48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49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주님께서 왜 바오로를 사도로 부르셨을까요?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킬리키아 지방 타르수스의 바리사이 가문에서 그가 유다 사람으로 태어나,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으며, 그 당시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는 화려한 경력 때문일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로마 시민권을 바오로가 가지고 있고 열성도 대단하고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서였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자기가 죄인들 가운데에서도 첫째가는 죄인이었기에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평범한 죄도 아니고 바로 예수님을 박해하던 그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면서 증언할 사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바오로 사도가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가 세상 곳곳을 다니며 선포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죄인이던 우리와 화해를 이루셨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였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고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먼저 그 자신이 하느님의 인내와 용서를 체험해야 했는데, 그래서 박해자였던 바오로가 사도가 되었습니다.
중병에 걸렸다가 치유된 사람이 자기가 치료받은 과정이나 약효에 대하여 진술하면 그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신뢰를 줍니다. 마찬가지로 복음도 그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전할 때에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이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가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인내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나무 좋은열매뽕나무열매 오디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내 말을 실행하여라.> 송영진 모세 신부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루카 6,43-44)."


1) 이 말씀을, 신앙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좋은 나무에 나쁜 열매를 주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좋은 나무에는 항상 좋은 열매만 주시는 분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 될 때가 많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반드시 '구원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마태 10,22).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신앙인들의 인생을 보고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충실한 신앙생활은 결코 헛되게 끝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안 믿는 사람들이 진짜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2) 이 말씀을, 위선자들을 향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위선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무화과나무인 척 하는 가시나무와 포도나무인 척 하는 가시덤불은 모두
의인이 아니면서도 의인인 척 하는 '위선자들'을 가리킵니다.
위선자들은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느님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부인하는 위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 때에 자기가 왜 구원을 받지 못하느냐고 항의할 것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모두 보여주실 것입니다.
위선자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들의 위선을 깨닫고 후회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가 될 것입니다.


3)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좋은 나무'가 타락해서 '나쁜 나무'로 바뀔 수도 있고,
'나쁜 나무'가 회개해서 '좋은 나무'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좋은 나무다." 라고 자만해도 안 되고,
"나는 구제불능인 나쁜 나무다." 라고 포기해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6)"


이 말씀은 '입으로만'(말로만, 또는 글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에 대해서, 또 구원에 대해서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면서,
실제 '삶'은 그렇지 않은 위선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말'만 듣고, '글'만 보면 그들이 위선자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위선자들이 말은 더 잘하고, 글은 더 잘 씁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삶'에 대한 심판입니다.
물론 '삶'이 따르지 않은 '말'과 '글'에 대해서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위선자들의 '삶'은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지은 집과 같고,
심판 때에 그들의 운명은
그런 집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루카 6,49).
예수님께서는 '기초'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는데,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점은,
그런 집들은 항상
겉으로는 굉장히 멋있게 잘 지어진 집이라는 점입니다(마태 23,27).


우리는 그 겉모습만 보고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그랬다가 심판 때에 완전히 허물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내가' 바로 기초도 없이 껍데기만 멋있는 집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스스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인들 가운데에는 스스로 "나는 성인이다." 라고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서 속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자기 입으로 "나는 성인이다." 라고 말하거나,
또는 말은 안 하더라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성인이 아닙니다.


위선자가 아닌, 진실한 신앙인의 '삶'은 반석 위에 기초를 놓은 집과 같고,
심판 때에 그런 집은 전혀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루카 6,48).
사실 심판 자체는 누구에게나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실행하면서 산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그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6-18)."


"주님의 말씀을 실행한다." 라는 말과(루카 6,46),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다." 라는 말과(마태 7,21),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른다." 라는 말은(1요한 4,16) 모두 같은 말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진실하고 충실한 신앙인의 '삶'을 뜻합니다.
그렇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두려워하기는커녕 기쁨 속에서 심판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 '기쁨'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


 중풍 치매 그리고 눈에 좋은 들쭉나무 열매(한국자생 블루베리)들쭉나무열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루카 6,43)

우리 수도원 앞 밭에는
사과나무가 몇그루 있습니다.
대부분 괜찮은데
유독 한두 나무만
시원찮습니다.

사람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못되고 악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건강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영육이 건강한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기름진 땅을 만나야 하고
자신을 돌보아 줄 농꾼을 잘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마음이 건강해야 하고
자신을 돌보아 줄 좋은 이웃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나무인가요?
영육간에 튼실한 나무인가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마음밭이 잘 가꾸어져 있군요.
또 주위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군요.
그러니 감사드리십시오.

내가 좋은 나무가 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다면
그건 나의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좋은 부모형제를 만났고
좋은 벗들을 많이 만난 결과이겠지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가 감사드려야 할 분들을
오늘 기억해 봅시다.
또 그런 분들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각종 암(위, 폐 ,간, 골수, 직장, 대장, 여러 암 등) / 만병에 좋은 비파나무와 열매비파나무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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