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십자가 아래 (요한 19,25-27)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자식의 아픔은 어머니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시메온은 성모님의 그 고통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 때 이 기념일이 정해졌다. 1908년 비오 10세 교황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기념일을 옮겨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계하여 기억하도록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죽음을 앞두고 매우 괴로워하시며, 하느님 아버지께 그 잔을 거두어 주시기를 눈물로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같은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브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아래의 부속가는 자유로이 할 수 있다. 11절부터 시작하여 짧게 할 수도 있다.>
1. 아들예수 높이달린 십자곁에 성모서서 비통하게 우시네.
2. 섧고설운 슬픔고통 성모성심 칼에찔려 참혹하게 뚫렸네.
3. 독생성자 수난하니 여인중에 복된성모 애간장이 다녹네.
4. 아들수난 보는성모 맘저미는 아픔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5. 예수모친 이런고통 지켜보는 우리죄인 누가울지 않으리?
6. 십자가의 아들보며 함께받는 성모고통 누가슬퍼 않으리?
7. 우리죄로 채찍모욕 당하시는 아들예수 성모슬피 보시네.
8. 기진하여 버려진채 죽어가는 아들보고 애처로이 우시네.
9. 사랑의샘 동정성모 저희들도 슬퍼하며 함께울게 하소서.
10. 그리스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제마음에 불이타게 하소서.
11.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상처 깊이새겨 주소서.
12. 저를위해 상처입고 수난하신 주님고통 제게나눠 주소서.
13. 사는동안 십자고통 성모님과 아파하며 같이울게 하소서.
14. 십자곁에 저도서서 성모님과 한맘으로 슬피울게 하소서.
15. 동정중의 동정이신 성모님의 크신슬픔 저도울게 하소서.
16. 주님상처 깊이새겨 그리스도 수난죽음 지고가게 하소서.
17. 저희들도 아들상처 십자가위 흘린피로 흠뻑젖게 하소서.
18. 동정성모 심판날에 영원형벌 불속에서 저를지켜 주소서.
19. 그리스도 수난공로 십자가의 은총으로 보호하여 주소서.
20. 이몸죽어 제영혼이 천국영광 주예수님 만나뵙게 하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그분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몇몇 여인과 제자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제자를 어머니께 맡기신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는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신다.(요한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약속, 실천> 송영진 모세 신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마태 20,22).
그때 두 사도는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시려는 '잔'이 무엇인지, 그 잔을 마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어떻든 두 사도의 생애를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말을 충실하게 실행했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가브리엘 천사도 성모 마리아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먼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또 하느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하시게 되는지 설명한 다음에(루카 1,26-37), 그 일이 이루어지려면 마리아가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는 듣기에 좋은 말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리아가 겪게 될 고난과 시련도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그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먼저 높은 자리를 청했기 때문에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경우에는 청하지도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메시아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 그리고 메시아의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처음부터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보다 더 긴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마리아는 천사를 천사로 바로 알아보았다는 것, 그리고 천사가 하는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바로 알아들었다는 것.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마리아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는 마리아의 말에는 이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응답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확신에 의한 응답이었고, 믿음을 고백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응답은 '약속'이기도 합니다.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고, 메시아의 어머니로 사는 것은 한 번의 응답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생애 전체에 걸쳐서 실행해야 할 일이고, 그래서 마리아의 응답은 그렇게 살겠다는 약속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모든 것을 다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고, 메시아의 어머니로 살 때 겪게 될 고난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응답과 약속은 그냥 한 일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끝까지 자신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제자를 맡기신 일은(요한 19,26) 사실은 당신의 교회 전체를 맡기신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믿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일은(요한 19,27) 사실은 어머니를 본받으라는 '당부'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어머니의 신앙과 생애 전체를 예수님께서 직접 '보증'해 주신 일과 같습니다.
사실 말로만 응답하고 약속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어떤 확신도 없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약속부터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랬다가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이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거나, 자기가 경솔했다고 후회하거나... 그러면서 약속한 것을 취소하기도 하고...잘 모르고 한 일이니 무효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모든 신앙인은 세례성사 때 '서약'을 합니다. 그것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는 약속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약속을 지키는 생활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더라도, 목숨을 잃더라도...(혼인성사 때의 서약도, 신품성사 때의 서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킬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서약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한 번 서약했다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주님은 당신의 약속을 틀림없이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 쪽에서도 주님께서 믿어 주실 수 있도록 자기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 버리는 정치인들을 자주 봅니다. 선거 때에는 표를 얻으려고 아무 약속이나 막 하고, 당선된 뒤에는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도 안 하고...정치인들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유권자들도 문제인데,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개인이든지 공동체든지 간에 금방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마태 7,26-27). 신뢰라는 기초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날인 오늘, 우리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지내는데, 오늘 말씀은 이 두 축일을 연이어 지내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우선 십자가를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라고 고백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삶의 자세는 오늘 십자가 아래 계신 성모님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성모님께서도, 제자도, 그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눈물과 탄식으로 기도하셨듯이, 성모님께서도 그 자리에서 조용히 계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느냐고 부르짖으실 때, 성모님께서도 하느님을 향해 그렇게 외치셨을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듣는 이 없이 그저 홀로 허공을 떠돌며 울부짖는 소리로 그쳤을까요?
오늘 히브리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기도와 탄원을 들어주셨다고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시도록 그분의 청원을 들어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분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일어나게 하심으로써 그 죽음을 구원의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비로소 구원의 길을 깨닫게 되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곁을 늘 지키시는 성모님이셨지만, 십자가의 길에서는 예수님을 어느 누구보다 더 바짝 따라가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탄원하시고, 아드님의 죽음을 끌어안으심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순종을 배우시고 구원의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성모님께서는 정신적인 순교자가 되시어, 순교자의 모후도 되셨습니다. 그러고는 이제 당신 외아드님 대신에, 그분의 제자를 아들로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셨듯이,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2015.09.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7)
여러분은 어머니가 계시나요?
몇 분이나 계시나요?
아니, 어머니가 한 분이지 몇 분이라뇨 하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한분이시죠.
그렇지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여러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도 어머니고
제가 모시고 있는 어르신들도 모두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신앙의 어머니들도 있고 영적 어머니도 있습니다.
이 어머니들은 모두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오늘 저를 수도성소로 인도해 주고
수도생활의 모범이 되어주신
영적 어머니 수녀님이 수도서원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합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성모님처럼
아들의 고통과 아픔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함께 아파해 주시고
아들의 기쁨을 자신의 것인 양
함께 기뻐해 주신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자식이 행여 잘 못 살까 봐
늘 기도로 함께 하시고
자식이 당신보다 더 훌륭한
수도자가 되길 끊임없이 바라왔고
지금도 기도로 뒷바라지 해주십니다.
이런 어머니를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나의 어머니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살기도로
함께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성소국장)
개신교회에는 없고 성당에는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제대 뒤편에 있는 십자가상입니다. 요즘은 ‘승천, 부활’의 십자가상도 있지만 대부분의 성당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인 것입니다.
성당 양 옆 벽면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길은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따라서 지고 가는 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시고, 승천하셨으며, 천주의 모친이 되셨지만, 많은 고통을 간직하고 사셨습니다. 교회는 성모님의 고통을 ‘성모칠고’라고 이야기 합니다.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시몬의 예언을 들었을 때, 이집트로 피난 갈 때, 예수를 잃고 찾아 헤맬 때, 십자가를 진 예수를 만났을 때, 못 박혀 죽은 예수 앞에 섰을 때, 십자가에서 예수의 주검을 내렸을 때와 묻을 때 겪은 고통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당신의 어머니십니다.’ 사랑을 받던 제자는 이제 성모님을 자신의 집에 모셨다고 성서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과 갈등, 고통과 절망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힘들지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면 우리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 희망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