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목요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7,36-50)

2015. 9. 17. 오전 7: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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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목요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7,36-50)


원로단의 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직무를 받은 이는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함으로써 그는 자신과 자신의 말을 듣는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티전 4,12-16)
사랑하는 그대여, 12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니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13 내가 갈 때까지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 14 그대가 지닌 은사, 곧 원로단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15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일에 전념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 16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일을 지속해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인 시몬의 집에 계실 때,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린다. 시몬은 죄인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해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많은 죄를 용서받은 죄인이 당신을 사랑함을 아신다.(루카 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 마리아! (요 12장 1~5절)

 시몬이라는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였는데, 복음의 정황을 살펴볼 때, 그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부족한 것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고, 더욱이 윤리적으로 깨끗하기에 용서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나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처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은 뒤 향유를 발라 드리는 여인은 죄스러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머리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스스로 죄인이요 부족한 사람이기에 주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이 절실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모두 그 여인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예수님만 모르시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저런 죄인을 못 알아보다니 예언자가 아닌 모양이구나.’ 하고 바리사이는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예수님께 그 여인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었고 당신을 많이 사랑한 이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는 그 여인이 죄를 용서받았음을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에 대한 그 여자의 사랑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리는 행동을 보고 험담을 하는 사람들과, 그 행위에서 그 여자의 지극한 사랑을 알아보시는 예수님 가운데 과연 어느 편이 옳을까요?
어떤 사람의 잘못을 알고 있다고 하여 그를 죄인으로 영원히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가 죄를 용서받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도 그를 더 많이 사랑하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를 곰곰이 살펴볼 때, 악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일수록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더 많이 느낀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은 여인

<용서, 사랑, 회개>  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루카 7,41-43)."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


여기서 '채권자'는 하느님이고, '채무자'는 인간들입니다.
'빚'은 죄를 뜻하고,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용서'를 뜻합니다.
"누가 더 사랑하겠느냐?" 라는 말씀은 "누가 더 고마워하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는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죄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남들보다 죄가 더 큰 사람도 있고, 더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베풀어집니다.
더 큰 용서도 없고 더 작은 용서도 없습니다.
죄가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똑같은 용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교리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하고,
교리를 바탕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는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 더 많이 고마워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사실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더 많이 탕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이 고마워하게 됩니다.
즉 자기가 큰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이 고마워하게 되고,
더 많이 회개하게 됩니다.
은총을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덜 고마워하고,
그래서 적게 회개하게 됩니다.
(은총을 안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고마워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따라서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이 여자는 자기가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크게 고마워하고 있고, 크게 회개하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라는 말씀은,
"자기가 적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게 고마워하고 적게 회개한다." 라는 뜻입니다.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은 본질적으로 별로 차이가 없는,
사실상 같은 죄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 죄를 뉘우치기는 했는데 회개는 하지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마태 27,3-5).
용서받기를 거부하고 완전히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베드로는 크게 회개하고(마태 26,75)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셨고,
똑같이 용서하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누구의 죄가 더 큰 죄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일에 유다가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왔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받아주셨을 것이고, 그러면 유다는 '배반자 유다'가 아닌
'사도 유다'로 이름이 남아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왜 자살했을까?"
아마도 분명히 그는 "나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다.
내가 회개해도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예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모습입니다.
반대로, 베드로가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 무제한이라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미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것을 믿는다면 당연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받기 위해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았기 때문에 회개합니다.
회개는 이미 받은 용서에 대한 응답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보면,
집에 돌아간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
그는 자기가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회개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29-30)."


"아버지를, 아버지는, 아버지의" 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의 원문을 보면,
"당신을, 당신은, 당신의"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말 번역이 잘못된 것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또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의 저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큰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고,
아버지의 사랑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 집의 '안'에 들어가서 잔치 음식을 먹고 있는데,
큰아들은 집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밖에' 남아 있습니다.


 고난주간 넷째날(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가룟유다의 배신)/막14:1-11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7,48)

                                                         4왕 알타반

여러분은 지은 죄가 많나요?
그 때문에 늘 마음이 찜찜하고
괴롭진 않으세요.

엄청난 죄를 짓고도
철면피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사람들이
때론 부럽기도 하지요?

죄를 짓지 않고 산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인간인 이상
죄를 안 짓고 살기는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니 죄를 안 짓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지은 죄를 탕감받고 용서받는 것이
더 중요할 겁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받는 길은
그만큼 더 사랑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시네요.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괴로워하거나
자학하기보다는
더 사랑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지요.

죄가 많은 당신, 복되십니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오늘 더 사랑함으로써
죄의 멍에를 말끔히 벗는 날 되소서.


주님 앞에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간절함을 갖고 나아가야조재형가브리엘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서 1년 이내에 16가지 이상의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예방 주사를 맞기 때문에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방 주사를 통해서 깨끗해진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고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비염, 아토피, 각종 알레르기에 감염된다고 합니다. 너무나 깨끗해진 아이들의 몸이 그런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아직도 4만 년 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환경은 급속하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비만이라는 새로운 질병과 싸우게 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게임, 텔레비전, 컴퓨터라는 굴레서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들판의 꽃도 보게 하고, 도토리도 줍게 하고, 흐르는 물에 발도 적셔 보게 하면 좋겠습니다. 머리로 세상을 살기 보다는 가슴으로, 몸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예방 주사 때문에 오히려 약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신앙은 생활이며 실천입니다. 때문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면 감사하고 고마워 할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에 미워하고 분노하면 미워할 일, 분노할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복음화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리고, 씻어 드린 여인은 신앙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 또한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 25장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너희는 내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우리를 행복에로 이끄는 것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 힘들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것,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넘어 참된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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