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토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루카 8,4-15)

2015. 9. 19. 오전 7:04:23

글자


 

[연중 제24주간 토요일]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루카 8,4-15)


티모테오 1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킬 것을 권고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눈으로 뵐 수 없는 분, 홀로 불사불멸하시는 분이시다.(티모전 6,13-16)
사랑하는 그대여,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그 뜻을 풀이해 주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들 마음에 떨어졌을 때, 어떤 이들은 시련과 세상 걱정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여 열매를 맺는다.(루카 8,4-15)
그때에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송영진 모세 신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복음 선포의 결과가 사람마다 다른 것에 대한 설명인데, "너희는 어떤 땅인가?" 라는 질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은 씨를 뿌리셨는데, 어떤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쪽의 문제도 아니고 씨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 씨를 받아들인 사람들 쪽의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은 원래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길, 바위, 가시덤불'이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비유의 표현은 가르침을 좀 더 생생하게 하기 위한 표현일 뿐입니다.) 원래는 다 '좋은 땅'이었는데, 자기 스스로 '길, 바위, 가시덤불'로 변질되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1) '좋은 땅'이었는데 '길'로 변해서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배반자 유다입니다. 배반자 유다의 일은 많은 부분이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어떻든 예수님께서 그를 사도로 뽑으신 것은, 글자 그대로 '사도로' 뽑으신 것입니다. 배반자를 뽑으신 것은 결코 아니고, 또 처음에는 사도로 일하다가 나중에 배반자가 되라고 뽑으신 것도 아닙니다.


그가 사도로 뽑힌 것은 분명히 사도가 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좋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고(그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고),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루카 22,3-4). 이것은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2)." 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유다가 원래 '길'이어서 악마에게 말씀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 말씀을 빼앗겼기 때문에(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좋은 땅'이 '길'로 변한 것입니다.


2) '바위에 떨어진 씨'의 경우 가운데 대표적인 예는 베드로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예수님 뒤를 따라갔다가, 사람들이 "당신도 예수와 한패다." 라고 말하자 자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루카 22,54-60). 자기도 예수님처럼 체포될까봐 두려워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루카 8,13)." 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는 원래 좋은 땅이었는데 '시련'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그래서 그가 받은 말씀은 바위에 떨어진 씨처럼 되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금방 회개했고, 다시 좋은 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바위' 라는 말에서 베드로의 이름이 바로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새 이름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마태 16,18)" 우리말 성경에 베드로의 이름과 관련해서 '반석'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바위' 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원문에서는 같은 단어인데, 그리스어로 '페트라' 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 라는 새 이름을 주실 때에도, 또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도 똑같은 단어 '페트라(바위)'를 사용하셨습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는 '돌밭'으로 되어 있는데, 이 단어도 '페트라'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교회의 반석'도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말씀의 씨가 말라죽게 되는 '죽음의 바위'가 됩니다. 반대로, 죽음의 바위도 회개하면 반석이 될 수 있습니다.


3) '가시덤불'은 거의 대부분의 신앙인들의 현실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4)."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인생의 걱정, 재물, 쾌락'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인생의 걱정'이라는 말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근심 걱정을 다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이 선한 일일 수도 있고, 악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성모님도 근심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 때부터, 그 뒤에 겪으신 많은 일들은 전부 다 성모님이 근심해야 하고 걱정해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런 일들 때문에 숨이 막히지는 않았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으로 그런 근심 걱정들을 극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 때문에 숨이 막히지 않으려면 믿음을 가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루카 12,29-30)." 이 말씀에서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걱정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말은, 아버지만 믿으라는 뜻입니다.


걱정할 일이 생겨서 걱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걱정거리들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숨이 막힌다는 말은, 걱정거리들 때문에 기가 꺾여서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는, 즉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충실하게 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마태오 복음. 제 13장 1절 - 58절 ::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루카 8,5)

오늘은 저희 인근 산청본당이 설립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기념미사와 견진성사까지 있는데
저희 성심원 준본당에서도 6명이 함께 견진을 받는답니다.
모두에게 축하드립니다.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가장 먼저 씨를 뿌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저는 그게 가장 궁금합니다.

누군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가 없겠지요?
예수님은 오늘
씨가 어디에 떨어졌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씨 뿌리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중요하고
예수님이 중요하고
성직자, 수도자들, 선교사들이 중요하지요.

나는 어떤 씨를 뿌렸나 한번 돌아봅시다.
오늘도 씨 뿌리는 작업을 힘차게 합시다.
그 결실은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그저 열심히 씨만 뿌리면 됩니다.
씨 뿌리러 나갑시다!


보도블록 사이사이, 돌 틈새에서 자라 나오는 풀들을 보면 그 생명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얼마 되지 않는 흙과 물과 햇빛만으로도 풀들은 자랍니다. 그 풀들이 보도 위에 씨앗을 떨어뜨릴 때, 과연 그 가운데 몇 개나 싹이 틀 수 있을까요? 가을에 떨어진 코스모스 씨앗 가운데 몇 퍼센트가 싹이 터서 다음 해에 다시 꽃을 피울까요?
나무와 꽃들이 수많은 씨앗을 만들어 세상으로 흩뿌려도, 그 가운데 적은 수만이 싹이 트고 자라나고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을 만듭니다. 나무는 훨씬 더 많은 씨앗을 잃어버리면서도 계속 씨앗을 뿌립니다. 자라나서 열매를 맺을 그 얼마 안 되는 씨앗들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숲에는 나무가 계속 자라나고 들판에는 풀들이 해마다 자라납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도 그 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말씀의 씨앗 가운데서도 좋은 땅을 만나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고 귀띔해 줍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구석에 떨어진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 큰 나무가 되기도 할 것이고 어디인가에서는 소리 없이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씨앗도 있을 것입니다. 들판에 나무와 풀이 자라듯, 말씀의 씨앗들도 그렇게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 믿음의 훌륭한 싸움을 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어떤 직책을 수여할 때 하던 훈계 내용인데, 세례를 받을 때와 박해를 받을 때에 명심해야 할 말씀이기도 하지요. 이 권고대로 살 때, 우리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처럼, 곧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을 하지만 삼일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한번 길들여진 습관은 좀처럼 고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기본기를 충실하게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기본기에 충실한 선수들은 힘든 시기가 다가와도 곧 극복할 수 있지만,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들은 힘든 시기가 오면 좀처럼 예전의 실력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잠자리에 들기가 쉽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시작하는 사람은 하루를 기쁘고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친절하게도 그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 성경 말씀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밭은 우리들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들 마음의 밭에서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들 마음의 밭이 좋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밭이 좋은 밭입니까? 잡초가 무성하고, 자갈이 많은 밭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는 아닐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양분이 가득하고, 토질이 좋으며, 잘 다듬어진 밭이 좋은 밭입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도 그렇게 가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들 마음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잡초들을 뽑아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의 밭에 기도의 거름, 나눔의 거름을 뿌려 주어야 합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기쁨을, 위로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흠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감추인 말씀


음력8월7일 김종업로마노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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