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금요일]예수님을 도운 여인들 (루카 8,1-3)
사목자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할 때 올바른 가르침에서 쉽게 떠나게 되고, 교만해져서 논쟁과 시기와 분쟁과 중상에 빠지게 되며, 사람들 사이에 의심과 알력이 생겨나게 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이다. 하느님의 사람은 의로움과 신심을 추구해야 한다.( 티전 6,2ㄹ-12)
사랑하는 그대여, 2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3 누구든지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4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5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 갑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6 물론 자족할 줄 알면 신심은 큰 이득입니다.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9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시편 49(48),6-7.8-10.17-18.19-20(◎ 마태 5,3)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뒤쫓는 자들이 악행으로 나를 에워쌀 때, 그 불행한 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들은 자기 재산만 믿고, 재물이 많다고 자랑한다. ◎
○ 사람이 사람을 어찌 구원하랴? 하느님께 제 몸값을 치를 수도 없거늘. 그 영혼의 값 너무 비싸 언제나 모자란다, 그가 영원히 살기에는, 구렁을 아니 보기에는. ◎
○ 누군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부러워하지 마라.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으며,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
○ “네가 잘한다고 사람들이 칭찬한다.” 사는 동안 스스로에게 말할지라도, 조상들이 모인 데로 내려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리라. ◎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여러 여자가 그분을 도와드렸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티모테오 1서는 사목 서간으로 분류됩니다. 이 서간의 권고 내용은 모든 신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사목자들에게 해당됩니다. 이 서간은 그릇된 가르침, 교만, 병적인 논쟁과 설전, 시기, 분쟁, 중상, 못된 의심, 끊임없는 알력, 이 모든 것이 돈을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릇된 가르침이라고 하면 고대와 중세의 각종 이단을 생각하기가 쉽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성경과 교리를 따르는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들을 현혹시켜 맹종할 만한 내용들만을 나열하는 경우도 있고, 가톨릭 교리에 다른 종교의 것을 혼합하여 어느새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떠나는 주장도 있으며, 교회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릇된 신심을 전파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 이득은 사람들의 인기나 세속적인 명성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익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신심을 전파하는 것이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거기에는 반드시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람이 하는 일들이 현세적 이득을 위한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늘 복음의 한 단면이기는 합니다만,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가난하여 머리 둘 곳도 없었기에 여러 여인이 그분들을 적극 도와드렸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여자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돕다.> 송영진 모세 신부
복음서 저자가 예수님의
활동을 도와드린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것은 그 여자들도 '제자들'이었음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공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후원하는 일을 했던 것 같은데,
그들도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까지
예수님과 동행한"(사도 1,21-22) 사도들과 동등한 자격이 있는 '부활의 증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는
분입니다.
여자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들이신 것은 바로 그 여자들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인간적으로는) 여자들이 예수님을 도와드린
일이지만,
사실 그 일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자캐오'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과 자캐오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집에 머무르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루카
19,5), 그것은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9-10)."
자캐오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서 접대한 일은 사실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전을 지을
때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의 집을 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전은 사람들을 위한 집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다음에 하느님께 바친 기도가 그것을 잘 나타냅니다(1열왕 8,27-30).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정화하실 때,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11,17). 성전은 모든 사람을 위한 집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하느님의 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성전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성전 건축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예수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전부 다
사실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니
생색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파견하셨던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말씀드렸을 때(루카 10,17),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이 말씀은, 제자들이 한 일들도 중요하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들의 구원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내용을 "겸손하게
섬겨라." 라는 가르침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9-10)."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주님은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겸손'을 강조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결코
'쓸모없는' 종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중요한
일꾼들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신앙생활을 내세우거나 자랑하거나 생색내면 안 됩니다.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크고 어렵고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자들이 한 일의
의미와 가치를 깎아내리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는 일들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여자들이 예수님을 도와드린 일은 분명히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었던'(루카 9,58) 예수님께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여자들에게 크게 고마워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어서 고마워하신 점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여자들이 구원을 향해서 가는 것을 기뻐하시고 고마워하셨을 것입니다. 부모들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자녀들에게 고마워하면서 기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은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서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은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고, 넓게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도와드린 여자들의 반대쪽에는 사사건건 예수님의 일을 비방하고 방해한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기도 하셨고, 비판하기도
하셨고, 안타까워하시기도 했습니다(루카 19,41-44). 당신의 일이 방해를 받아서 안타까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충실한 신앙인들을 보면서 기뻐하시는 것도 '사랑'이고,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시는 것도 '사랑'입니다.)
지금 '나의' 신앙생활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고마워하실까?
아니면 안타까워하실까?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티모 6,10)
오늘날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돈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돈을 쫓아 다니고
돈의 노예가 되고 돈이 우상화됩니다.
옛 사람들은
돌고 도는 게 돈이고
돈을 쫓는 자 돈으로 망한다고들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따라다니지 말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내가 돈을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어야 옳지요.
내가 돈의 주인이어야지
어떻게 돈이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예나 지금이나
돈을 밝히고 사랑하고
쫓아다니다 패망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돈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내가 돈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돈이 나의 주인입니까?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는
참으로 부자가 될 겁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을
맘 깊이 새기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신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필요 없지만 우리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 그것은 보험입니다. 보험의 종류도 무척 많습니다. ‘자동차 보험, 생명 보험, 저축 보험, 화재 보험, 암 보험, 건강 보험, 상조’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보험은 우리들이 위급할 때 도움을 주는 것들입니다.
저도 부모님을 위해서 ‘평화상조’에 가입을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평화상조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건강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병원비의 혜택을 받습니다. 자동차 보험을 들어서 26세 이상이면 누구나 저의 차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저축 보험도 들어서 매달 조금씩 이자가 나오고 그것으로 부모님을 위한 용돈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어떤 보험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주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보험도 죽게 될 질병에서 치유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혜택을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혹 내가 사망을 하면 나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보험은 있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합니다.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 겸손, 온유, 나눔, 희생,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는 세상의 어떤 보험도 줄 수 없는 확실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 말씀을 따라서 살았고, 우리는 세상을 떠난 신앙인들이 천상에서 영원히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천국에서 성인들이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것이 가톨릭의 신앙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시중을 들고, 자신들의 재산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세상을 따르는 것 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험을 들은 사람들은 보험회사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역시 우리들의 신앙, 우리들의 교회가 더욱 발전하고 성장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