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누가 내 어머니냐 (루카 8,19-21)
에즈라기는 바빌론에 유배 간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유배에서 해방되어 귀향한 뒤의 역사를 전해 준다. 페르시아 임금은 유배 간 이들을 돌려보내면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도록 허락한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은 기원전 515년에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식을 올린다.(에즈라6,7-8.12ㄴ.14-20)
그 무렵 다리우스 임금은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7 “하느님의 집 공사가 계속되게 하여라.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8 이제 그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12 나 다리우스가 명령을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14 유다의 원로들은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그런 다음 모세의 책에 쓰인 대로,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19 돌아온 유배자들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 당신의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신다.(루카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얼핏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 가족들을 멀리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이가 의아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초점은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형제들을 멀리하셨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형제로 삼으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본당 사제의 가족이 본당 구역 안에 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사제가 가족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당 사목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신자들보다 가족에게 관심을 더 기울인다면 신자들에 대한 보편적 사랑에 장애가 되겠지요. 본인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신자들은 바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족이 아닌 일반 신자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람들하고만 특별히 만나거나 환대하다 보면 다른 신자들이 불편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작은 가족 대신 한없이 큰 가족을 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구원하신 이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히브 2,11) 그들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께 제자를 맡겨 드리면서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외아들을 잃는 그 자리에서 모든 제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려고 부모와 자녀를 버리는 이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마르 10,30)를 백 배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영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성직자나 수도자가 가족을 떠나는 것은 더 큰 사랑을 위해서, 모든 이를 향한 보편적 사랑을 위해서, 더 많은 이를 형제로 맞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믿음, 사랑, 실천>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19-21)"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밖에 서 있는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니고,
당신의 참된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한 사람들' 가운데 첫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내 어머니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온 일은
예수님께서 '영적인 가족'에 대해서 가르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이고,
특별히 중요한 뜻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해야
한다는 말은
야고보서에 있는 '실천하는 믿음'에 관한 말에 연결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야고 2,14)"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실천 없는 믿음' 속에서
사는 사람은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라는 말은,
"그러한 믿음은 사실상 믿음이
아닙니다." 라는 뜻입니다.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안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마태 7,21-23)."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즉 믿음도 없고, 사랑 실천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들' 자체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일들입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에서
'사랑'에 관한 바오로 사도의 말이 바로 연상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3)."
지금 인용한 바오로 사도의
말도,
'주님의 이름으로' 뭔가 일을 많이 하지만,
하느님의 뜻을(사랑을) 실천하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천사의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기고...
그런 일들 자체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한 일들이라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자신들의 구원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라는 말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산을 옮겼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참 믿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또 하느님과 예수님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겉으로는 목숨을 바친 것처럼 보여도 '순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순교가 아니라면, 그것은 자살이 될
뿐입니다.
재산을 나누어 주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그게 사랑 없이 한 일이라면,
그것은 그냥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는 일이 될
뿐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원래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그래서 모두가 다 가족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각자 자기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믿고(깨닫고)
'가족으로서' 가족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가족이다." 라는 말씀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말씀을 합하면,
"내 가족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가 되는데,
원래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가족으로서
가족답게 살아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가 됩니다.
여기에 '사랑'에 관한 바오로 사도의 말을 합하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예수님의 가족답게 사는 것이고,
그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방법이다." 가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하느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가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가려면 믿음과
사랑을 제대로(온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루카 8,21)
여러분은 내 어머니와 형제들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 계시나요?
사실 요즘은 어머니와 친 형제들은
자주 만나기 힘들지요.
저도 어머니를 한두달에 한번 뵐까말까 하고
형제들은 몇개월에 한번 볼 정도입니다.
마음은 안 그런데
삶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지금 나와 가까이 있는
어머니 같은 분, 누님 같은 분,
형님 같은 분, 동생같은 이들에게
잘 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바로
실제적으로 나와 더 깊은 친교를 맺고 살도록
하느님께서 엮어주신
새로운 가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멀리 떨어진
부모형제들을 자주 못찾아 봐서
불효막급하다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새로운 가족들을 잘 섬깁시다.
그렇게 하면
내 어머니 형제들도
그 주위에 있는 이웃들이
나보다 더 잘 섬기고 모시지 않겠어요!
신앙인은
이렇게 모든 사람,
특히 내 주위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
하느님께서 주신 새로운 가족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른지요!
오늘 내 주위의 이웃들을
최선을 다해 섬김으로써
내 부모형제들에게 효성을 다하는
멋진 날 꾸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