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수요일]열두 제자 파견 (루카 9,1-6)

2015. 9. 23. 오전 7:11:00

글자

[연중 제25주간 수요일]열두 제자 파견 (루카 9,1-6)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가 된 그는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 채 고통받았다. 곧, 그의 양손과 양발, 옆구리에 상흔이 생기고 피가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비오 신부를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페르시아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명령에 따라 율법 학자 에즈라는 백성에게 법을 가르치고 판관과 행정관들을 세우려고 예루살렘으로 온다. 그는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이 이민족들과 혼인을 맺고 있는 현실을 보고 통탄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조상들의 죄를 고백한다.(에즈라 9,5-9)
저녁 제사 때에, 나 에즈라는 5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 주 나의 하느님께 6 말씀드렸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7 저희 조상 때부터 이날까지 저희는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악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임금들과 사제들과 더불어 저희가 여러 나라 임금들과 칼에 넘겨지고, 포로살이와 약탈과 부끄러운 일을 당하도록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8 그러나 이제 잠깐이나마 주 하느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저희에게 생존자를 남겨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곳에 저희를 위하여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눈을 비추시고, 종살이하는 저희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주셨습니다. 9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성화편지지]12제자 파견 안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다. 그들은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지니고 가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루카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9월 23일의 복음 말씀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루카 9,1-6).'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떠나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 곁을 떠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함께 있다." 같은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항상 제자들(신자들) 가운데에 현존하시고,
제자들(신자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승천하실 때 하신 약속이지만,
우리는 '한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떠난 때는 많아도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떠나신 적은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항상 사람들과 함께 계셨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 눈에 안 보였을 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느님(예수님)께서 곁에 안 계시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고,
버림받은 것처럼 느낄 때도 있고,
"나를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입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4)."
누구든지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둠의 골짜기'를 만날 수 있는데,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그 골짜기를 지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셨을 때,
제자들은 가기 싫은데도 가라고 명령하시니까 어쩔 수 없이 떠난 것도 아니고,
두려워하면서 떠난 것도 아니고,
분명히 충만한 믿음, 용기, 기쁨, 사명감으로 떠났습니다.
자기는 믿지 않으면서 남에게 믿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는 기뻐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기뻐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면
우선 먼저 자기 자신이 그 소식을 믿고 있어야 하고, 기뻐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루카 9,3)." 라고 지시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믿음과 기쁨'을 전해 주기 위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기쁨'만 가져가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물질적인 것에 대한 걱정도 가져간다면,
사람들에게 그 걱정도 전해 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걱정되는 소식'을 전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만일에 제자들이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준비해서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빈손'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즉 물질적인 것으로 '가득 찬 손'으로 떠났다면?


그랬다면 아주 편안하게 선교활동을 했겠지만, 그렇게 풍족한 상태라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0.24)."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복음(기쁜 소식)'은 세속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소식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소식입니다.
또 복음 선포는 '말로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온 삶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기 자신부터
세속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 초월해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세속적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사이비'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선포하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을 경고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루카 9,5)."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리는 행동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 때에 먼지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위협'이나 '앙갚음'이 아니라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은 글자 그대로 '기쁜 소식'이 되지만,
복음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소식'이 됩니다.
이 '경고'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해당됩니다.
남에게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자신부터 먼지처럼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배반자 유다의 경우가 궁금해집니다.
복음을 선포하던 그 당시의 유다는 어떤 상태였을까?
그 당시에는 아직 배반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충실한 사도였을까?
아니면, 말로만 복음을 선포하는 위선자였을까?
어떻든 유다가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 자체는 진짜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한 유다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고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마태 7,21-23)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2월 7일 연중 제4주간(목) *열두 제자의 파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루카 9,2)

예수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자들을
양성시키고나서
여러가지 능력과 권한을 주고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두 가지 일을 하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고
피정과 교육을 받고
기도생활을 배우는 것은
내 자신만이 행복해지고
하늘나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렇게 열심히 배우다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능력과 은총을 주셔서
당신의 제자로 파견하십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나라를 알게하고
영육간에 고통을 받는 병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주라고...

오늘 충실하게
주님에게 배웁시다.
그리고 스승이신 그분의 제자로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파견해 주시도록 청합시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특히 영육간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이웃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복된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 루카 복음서 ] 제 9 장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루카9,1-6)

  -故유광수 신부-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운명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고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살고 예수님과 하나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할 때만이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8,25)라는 그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삶을 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분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가르침이다. 파견된 이들의 목적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의 빵을 주기 위함이다. 이런 사람이 되게 위해서 예수님은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시어 당신을 따르도록 하셨고(5,1-11), 두 번째, 그들 중에서 열두 제자들을 구성하시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셨고, 그들을 교육시키셨다.(6,12-8,56까지) 그리고 이제 이렇게 준비된 이들을 파견하신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며 교육의 목적이다. 즉 부르심-교육-파견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교육과정이며 그 목적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이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교육시키셨고 또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힘과 권한을 주셨다. 오늘 복음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따라서 제자는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또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생활해야하는 가를 알아야 한다.


그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힘과 권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귀가 갖고 있는 힘과 권한이 아니라(4,32.36) 죄를 사해주는 힘과 권한이다. 이 힘과 권한은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낫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파견된 사람들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불러 주셨고 양육시켜 주셨고 파견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허락된 사람들만 알고 다른 이들은 비유로만 알아 듣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따라서 선교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이다.

선교를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신자라고 할 수 없다. 참된 선교사인가 아닌가는 내가 어디에 있든 또 어떤 신분으로 있든 반드시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을 하고 있는 가에 달려있다. 내가 그리스도 신자이면서 아직까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용기가 없고 또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해야하는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왜 그런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전하는 법이다. 내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없다면 또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이 없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전할 수 없고 또 병자들을 고쳐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을 갖게 하기 위해서 그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해주셨고 그런 교육을 통해서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훈련을 시키셨다. 오늘 복음 이전의 모든 교육은 바로 제자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신 내용들이다.


우리도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성당에만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또는 맹목적으로 믿기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제자들처럼 직접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복음을 공부하는 것이고 공부하고 묵상한 말씀을 실행하면서 복음적으로 사는 삶의 방법을 훈련받을 때 가능한 것이다. 

복음 선포자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 오늘 복음에서 가르쳐 주신 내용들을 묵상하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지팡이, 여행 보따리, 돈, 여벌 옷이다. 복음 선포자가 여행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마라는 것은 복음 선포자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즉 선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예수님이 생활하신 방법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2,6-7) 복음 선포는 물질적인 것을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복음 선포는 물질적인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코후8,9) 복음선포자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가난한 모습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해주기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복음선포자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 많은 것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다.


이토록 가난한 모습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복음 선포는 나의 능력이나 재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과 능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코후12,10)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에게서 활동하신다.

제자들이 가지고 가지 말아야할 것들은 우리들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고 필수적인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지니지 마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복음 선포자는 선교를 떠나면서부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 하지 말고 "그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야 한다. "(마태 6,32-33)


지금은 우리가 이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 생활의 여정은 항상 나만을 위한 생활에서 다른 이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진보하고 성숙해지는 여정이어야 한다. 

떠남과 머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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