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이들은 예언자를 박해한다. 예레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악을 고발하며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사람들은 그를 없애려 한다. 예언자는 자신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일했음을 하느님 앞에서 토로한다(제1독서예레미야 18,18-20).
예수님께서도 구약의 예언자들과 같이 당신께서 박해와 죽임을 당할 것임을 아셨고,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도 그러한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러 오셨다. (마태오복음 20,17-28).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마태오복음 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6).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의 길을 가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도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려면 세상의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의 말은 듣기도 받아들이기도 버겁고 싫습니다. 세상은 모두 태평성대라고 하면서 괜찮다고 말할 때, 예언자는 거꾸로 이 세상의 썩은 구석을 들추어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가면서도 예언자는 이렇게 몸이 썩어 가고 있으니 이제 죽음이 임박하였다고 알려 주지만, 세상은 그 썩은 부위를 보지 않으려 합니다.
예언자의 쓰디쓴 비난은 바로 당신 백성을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손길과 배려였지만, 그들은 애써 외면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언자를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의 길과 운명이 어떠하였는지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받으셔야 할 잔이 어떠한 것인지 내다보십니다. 그 잔을 마시지 않고서는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들에게도, 그 길이 평탄하고 아름다운 장밋빛 길이 아니라는 점을 결코 감추지 않으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 잘못된 환상을 갖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제자들처럼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종처럼 다른 이들을 섬기고, 필요할 경우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쳐야 하는 것이 내가 마셔야 할 잔임을 알고 계십니까?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아마도 감히 청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 그 잔을 청한 야고보와 요한은 순교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안일한 생각을 접고 두 사도처럼 주님을 따라나설 준비가 되셨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많은 사람이 으뜸으로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충분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더라도 진정한 존경과 사랑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속 안에 있으면서도 세속을 떠나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진정 존경을 받을 사람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하지만 오히려 섬기는 사람, 세상은 첫째만을 기억하지만 오히려 종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께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자기 두 아들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을 어찌 탓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아무 정성과 노력이 없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을 지니게 되면 반드시 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낌새를 알아챈 다른 열 제자가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생각한 것에서도 바로 그러한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무엇을 원하느냐?”물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영광을 원합니다. 그러나 영광은 고통 없이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로 나아가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시지만 제자들은 딴청을 부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20,22)하고 물으시자 “할 수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의미도 모르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 잔은 모욕과 천대,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뜻했습니다.
종이 되어 남을 섬기는 낮아지는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덥석 대답해 놓고는 딴전을 피우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분명 예수님의 길은 장차 어떤 '자리'에 앉기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 다만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완성하는 길이기에 그리로 갈 따름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기에 행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제가 어느 본당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정초가 되면 평협회장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점 보러 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철학관에 찾아가서 일 년 운수를 보는 일은 미신행위다'라는 것을 환기시켜 주십시오." 점 보러 가서는 사람이 많으면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기다린답니다. 양다리 걸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성사를 받으면서 마귀를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해 놓고서는 어려운 일이나 우환이 닥치면 하느님 보다는‘어디 용한 사람이 없나?’살피게 됩니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고 맹세하고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합니다.
남이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허영의 마음이 가득할 때도 있습니다. 오로지 주님을 믿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하고서는 미사참례를 소홀히 할 때도 있습니다.
모처럼 손님이 오면 함께 미사 참례하자고 권유하면 좋으련만 그를 배려한다는 빌미로 주일미사까지 궐합니다. 약속된 영생에 대한 희망을 말하면서도 눈앞에 것에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아직도 아무 수고와 땀도 없이 영광을 바라느냐? 고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기꺼이 “할 수 있습니다.” 대답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대답에 항구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군림해서 힘으로 내리누르는 삶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출세와 섬김> 송영진 모세 신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가장 높은 자리 두 자리를 청하자(마태 20,20-21) 다른 제자들이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깁니다(마태 20,24). 이것은 열두 사도 모두가 그때까지는 권력욕과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사도들만의 모습은 아니고, 보통 사람들, 즉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섬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마태 20,25)." '너희도 알다시피'는 '너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또는 '너희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이라는 뜻입니다.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일에서 쾌감과 만족감을 얻고, 그것을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민족들, 즉 하느님을 안 믿는 세속 사람들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6ㄱ)." 이 말씀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즉 신앙인들은 그러면 안 된다."입니다. 이 말씀도 예수님의 '계명'에 포함됩니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안 믿는 세속 사람들처럼 살면 안 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ㄴ-27)." 이 말씀은 '높은 사람', 또는 '첫째'가 되는 일에 대한 방법론이 아닙니다. "높은 사람이(첫째가) 되고 싶다면 섬기는 사람이(종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높은 사람이(첫째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종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군림하거나 세도를 부리지 말고 섬겨라."입니다.)
또 "높은 사람이(첫째가) 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종이) 되지 않아도 된다."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은 "너희는 모두가 서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3-4)." 자신을 낮추어서 섬기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 신앙인은 누구나 예외 없이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서로 섬기고 있고, 그래서 모두가 다 높은 이들입니다. 누구는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고, 누구는 남들보다 더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두가 다 높은 사람이고, 모두가 다 낮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이 말씀과 필리피서 2장의 내용이 연결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예수님은 섬김을 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섬기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낮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러 오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높이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낮춘 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이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고, 그런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느님 쪽의 의무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제가 이렇게 낮추었으니 이제 저를 높여 주십시오." 라고 하느님께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또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서 높은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누군가는 앉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는(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잊어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주게 될 것이고, 그 자신도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꼭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정치 지도자에게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어떤 공동체의 대표자에게도, 아주 작은 모임의 장에게도 모두 다 해당되는 가르침입니다. 어린이에 관한 말씀을 생각하면, 직책과 직위와 상관없이 모든 신앙인에게 다 해당되는 가르침입니다.
권한을 조금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권력으로 억압하는 동안에는 자기가 대단히 높은 사람으로 생각되겠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높여 주시지 않는다면 비참하고 비천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인간 세상의 권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것입니다.

‘살신성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을 바쳐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분들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메커니즘을 따르게 돼 있습니다. 이것은 오랜 세월 터득한 생명의 진화입니다. 또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이란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스승들은 이런 보편적인 삶을 뒤로 하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것을 더욱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인류는 문명과 역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에덴’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낙원입니다. 사람은 그 낙원에서 살 수 있었는데 교만함과 욕심 때문에 ‘에덴’에서 더 이상은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에덴은 어느 장소가 아닙니다. 에덴은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탐욕과 욕망 때문에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못 살게 하는 사람들은 늘 ‘에덴의 동쪽’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서 희생하며, 양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현실은 각박하고 힘들어도 늘 ‘에덴’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렇게 이야기 했었습니다. ‘나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을 하십니다. 아이라는 말을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 주어야 한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에덴’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오늘의 복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왕국을 이루시면 한 아들은 예수님의 오른편에 다른 한 아들은 예수님의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합니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의 생각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가입니다.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명예와 권력, 부와 건강에 있다면 그것은 절반의 행복과 성공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성공은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희생과 봉사, 겸손과 사랑이 바로 진정한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에덴’에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마태 20,26)
어떤 사람은
자기보다 좀 못하다고 여기면 무시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많이 아는 체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도 다 하는데 나는 왜 못하나 하며
해서는 안 될 일도 별 부끄럼 없이 행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제 꼬라지는 모르고 남을 흉보고 뒷담화를 즐깁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쌍스런 욕설을 쉽게 내뱉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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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계속해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