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화요일>바리사이의 누룩 (마르 8,14-21)

2015. 2. 17. 오전 7:56:48

글자

 [말씀의 초대]

 갈수록 사람들의 악이 드러나는 것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것을 마음 아파하시면서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로 하신다. 그러나 오로지 마음에 드셨던 노아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계획하신다(창세 6,5-8; 7,1-5.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이르신다. 이를 알아듣지 못하자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빵의 기적을 상기시키신다.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마르 8,14-21)

 

 

 

<연중 제6주간 화요일>(2015. 2. 17. 화)(마르 8,14-21)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라고 분부하시자, 제자들은 '누룩'이라는 말 때문에 '빵'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면서 '빵의 기적'을 이해하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8,14-21).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은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파의 위선적인 종교생활, 율법주의, 현세주의 등을 가리킵니다.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풍조 등을 가리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사고방식과 풍조에 물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빵이 없다고 걱정하는 모습도 먹고사는 일만 걱정하는 세속적인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에 이미 물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물들 위험이 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의 기적'을 말씀하신 것은 "빵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내가 기적을 일으켜서 빵을 만들어 주겠다." 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제자들이 먹을 빵을 마련하시려고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빵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빵의 기적'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배고픔이 없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체험하게 해 준 일입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일입니다.

따라서 '빵의 기적'을 이해하고 깨달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먼저 추구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산상 설교'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이 말씀에서 '다른 민족들'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만 걱정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추구합니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실제로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마르 8,2-3).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사신 분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동을 해야 하지만, 걱정하거나 집착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이라고 믿고, 아예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면,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 됩니다. 

'바리사이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라고 가르치셨을 때,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루카16,14).

그들은 돈이 많은 것은, 즉 부자로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신앙생활을 잘할수록 부자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복을 못 받은 (또는 벌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로데 당파는 원래 세속의 부귀영화만 추구하던 사람들이고...)

오늘날에도 바리사이들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빌고,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우리는 그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기복 신앙'은 사실은 신앙이 아니고 '미신'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기복 신앙에 빠져 있어도, 그리고 아주 이기적으로 살아도, 실제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그 부유함은 하느님께서 주신 복일 수가 없습니다.

"해가 떠서 뜨겁게 내리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야고 1,11)."

반대로, 정말로 참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성실하게 노동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맨날 쪼들리면서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벌을 받은 것도 아니고, 복을 덜 받은 것도 아닙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12)."

사실 인간 세상에서의 가난은 절대적인 가난보다 상대적인 가난이 더 문제이고, 그것은 가진 자들의 이기적인 독점에서 비롯되는 일입니다.

가진 자들의 죄가 가난이라는 악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와 사랑 실천입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 8,14-21

바리사이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    반영억신

 

누룩은 부풀리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트나 베이킹 파우더와 같은 일종의 발효제입니다. 그래서 빵과 술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누룩과 비슷하다. 어떤 부인이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마태13,33). 고 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누룩이 좋은 것에 들어가서 부풀리면 그만큼 좋은 것으로 부풀려질 것이고, 반대로 나쁜 것에 부풀려지면 나쁜 것이 그만큼 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누룩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마태23장 참조)이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율법준수에만 구원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헤로데는 구원을 소유와 지배, 권력의 화려함 속에서 찾았습니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은 그들의 사고방식, 행태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4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게 해 주셨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빵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참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필리피서 3장 7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주님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것을 모두 버린 바오로 사도가 부럽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나의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꼭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는 바리사이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바리사이, 헤로데의 누룩이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삶의 자세, 잘못에 대해 벌주시고 나를 감시하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시각, 재물에 대한 욕심, 부귀영화에 대한 동경,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도 자동차에 십자가나 묵주를 매달고 있으면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려니 생각하는 태도, 허영, 가식 등등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누룩은 버리고 하느님 말씀의 누룩을 부풀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결국에는 빵의 기적에 관한 얘기를 상기시키시면서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8,21)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까?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느냐? 아니면 때가 되면 알리라. 어떻게 받아들이든 능력의 예수님, 구원자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근심, 걱정에 쌓여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으니 우리와 주님 사이의 통교는 오죽하겠습니까? 주님과의 깊은 만남에 이르는 길이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오늘 한 발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창세 6,6)
                                                 
오상선 신부


 

가끔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확 뒤엎어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러하셨으니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만하면 살만한 세상인가요?
아니면 확 뒤엎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세상인가요?

그런데 확 뒤집어 버린다면 그 속에 나도 포함되겠지요?
그래도 상관 없나요?
아니면 내가 노아같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의인이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하느님 보시기에 멋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세상이 이렇니 저렇니 하기 전에
내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삶을 살아 봅시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구나!" 하는
그런 세상을 위하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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