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콜라스티카축일 ] 코르반. (마르코 7,1-13)

2015. 2. 10. 오전 9:01:19

글자

  

                    2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마르코 7,1-13)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오늘의 묵상

학생들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교과서로 배운다. 부처의 가르침은 ‘자비’이고, 공자의 가르침은 ‘인’(仁)이며, 예수의 가르침은 ‘박애’라고 쓰면 정답이다.

 일반의 종교 이해는 그렇지만 교우들의 신앙생활이나 교회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랑일까, 주일을 지키는 것일까? 아니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일까, 단체 활동일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이며 가장 강조했던 가르침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내가 믿는 세상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하느님 나라’였다.

복음서에는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를 시작으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설명과 비유가 압도적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10) 하고 기도하라 하셨다. 그분께서 마침내는 하느님 나라 때문에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후 초대 교회의 상황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유업으로 증언하기보다는 ‘당신들이 죽인 나자렛 사람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메시아였다.’는 진실 규명의 강조가 더 시급했다. 생사 존폐가 달린 박해 정국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 나라’보다는 주일 미사나 고해성사가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교회 역사의 강조점이 하느님 나라에서 그리스도로, 성사 생활로 탈바꿈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강생 목적과 십자가 죽음의 이유는 강조점에서 저 멀리 가 버렸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떠나 있다. 너희의 전통을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가슴을 아리게 찌른다. 나도 바리사이가 되어 버렸음이 부끄럽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반영억신부

 

우리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게 됩니다. 더러운 것을 만지지 않았어도 습관적으로 씻습니다. 위생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건강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청결히 합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유다인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이 있었는데 왜 손을 씻게 되었는가는 관심이 없고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에만 마음을 둔 것을 지적해 줍니다. 사실 모든 음식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육적인 생명양식으로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합당한 마음으로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였습니다. 위생적인 의미도 있지만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미사전례 때에 참회예절이 있듯이,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예의로서 손을 씻고 음식을 먹었던 것입니다(유광수 신부).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 내용은 잊은 채 전통을 고집하면서 손을 씻었느냐? 아니냐? 를 가지고 더러운 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미사중에 사제는 예물준비를 하고 손을 씻으면서 혼자 기도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사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외적인 것을 통해 내면의 깊이에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사제들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사목자는 곧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목자의 관점에 더 큰 비중을 두기를 고집한다면 본래 복음 선포자로서의 소명을 소홀히 하는 오류를 범할 것입니다. 본당신부하려고 신부가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사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기 지켜야 할 전통과 관습이 있지만 그것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재해석하고 쇄신할 수 있어야 미래에 희망이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7,6-7) 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알맹이보다도 껍데기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여전히 같은 꾸중을 들을 것입니다.

내용보다도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하며 거기에 얽매이다 보면 우리의 예배는 헛되고, 헛된 행위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을 중요시 하되 그 의미와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시대를 앞서며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좋은 전통과 관습이라 하더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좋은 것이 아니니 마땅히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간혹 부득이 주일미사 참례를 못하여 주님의 기도 33번을 하였는데 고해성사를 봐야 되느냐? 몸이 불편한데 미사전례 때 앉고 일어서고 꿇는 것을 따라 해야 하느냐? 고해성사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판공성사를 또 봐야 하느냐? 라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질문에 대답을 일일이 해 드려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행하는 것의 의미와 내용을 알고 거기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바에 얼마나 사랑으로 응답하느냐의 문제 입니다. 법은 함부로 무시하여서도 안 되고 내 입맛에 맞게 합리화시켜서도 안 되느니 만큼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전통과 관습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울산태화강 전통혼례시연< 옛날 조상들의 얼과 혼이 담긴 전통결혼식에서 재밌게 엿보는 삶의 지혜~^^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정결 예식을 행하지 않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르 7,5)" 예수님께서는 잘못하고 있는 쪽은 당신의 제자들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마르 7,9)."

지금 상황은 제자들 때문에 논쟁이 생긴 상황이지만, 사실은 예수님도 정결 예식을 무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루카 11,37-38)."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정결 예식을 무시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행동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계명'은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라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말한 '조상의 전통'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실천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정결 예식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전통은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전통'이라고 표현하십니다(마르 7,8).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또 자기들의 정결 예식이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만 생각하느라고 하느님의 계명대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통 때문에 계명을 무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 7,6-7)."

마음이 따르지 않는 행위는 '위선'입니다.

실제로는 거룩하지 않은데도 정결 예식을 행하고 있으니까 자기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진짜로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척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전통이 나쁜 것인가? 아니면 그 전통을 악용하는 사람이 나쁜 것인가?"

정결 예식이(또는 그런 예식을 행하는 전통이) 하느님의 계명 실천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식과 전통이 계명 실천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고, 그런 것은 없애야 합니다. 또 그 전통을 사람들이 악용한다면 더욱더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전통 때문에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마르 7,13)."

이 말씀에는 "하느님의 계명을 폐기하게 만드는 전통이라면, 그런 전통은 없애야 한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나중에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 때에 몇 가지만 남기고 유대교 율법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 일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사도 15,28-29)."

이 결정은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던 할례를 비롯해서 모든 전통과 관습을 전부 다 없애기로 한 결정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모습과 우리 자신의 모습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악용하는 일이 없는가?  껍데기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악용해서 너무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은 없는가?

예를 들면, 마음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미사 참례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거나, 고해성사는 형식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이미 마음으로 회개했고 용서받았다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거나,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교회 전례와 공동체의 기도를 외면하거나...

옷만 잘 입으면 정성스럽게 미사 참례를 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마음이 정성과 열성으로 가득 차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단정한 옷을 입고 경건한 모습으로 미사 참례를 할 것입니다.

정말로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정성을 다해서 고해성사를 볼 것이고, 정말로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정성을 다해서 전례를 함께 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는 분명히 나쁘지만, 율법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외적인 경건함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적인 거룩함은 저절로 외적인 거룩함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로 거룩한 사람이라면 하느님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기념일 성무일도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조재형신부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감기입니다.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히고, 힘이 없습니다. 손님은 제게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음주도 적당히 하고, 잠시 쉬라고 찾아 온 것 같습니다.

 일정도 조절하고 감기와 며칠 친구하면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원하지 않았던 손님이 가끔씩 찾아 왔습니다. 유행성 출혈열로 한동안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병원에 있는 동안 함께 해 주셨습니다. 다리의 골절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통풍도 가끔 찾아와서 저를 쉬게 해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통이라는 손님을 만나게 됩니다. 제 몸을 찾아 왔던 손님처럼 고통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불가에서는 고통을 크게 4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런 고통은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도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고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박해의 시대에 고통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금과 은도 단련을 받듯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의 악이라는 관점에서 고통을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원하지 않는 것들이 함께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악은 구조적인 경우도 있고, 인간의 탐욕과 집착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악은 함께 연대해서 하느님의 뜻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했고, 강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전쟁의 역사이며, 비극의 역사였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러한 행동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피부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소중한 전통이 파괴당했고, 그들의 전통은 사라져야 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제국주의 역사관에 의해서 희생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잘못된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다양한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생명체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서로 경쟁하고 싸워서 정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맞도록 서로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며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의 율법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대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먼저 이야기를 듣고, 왜 그렇게 했는지 묻지도 않고 먼저 단죄를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들 역시 짧은 시간 이 지구라는 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는 머물다 가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인 것처럼 사는 것은 교만입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옆에 있는 분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비슷한 점은 무엇인지, 그러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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