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세계 병자의 날)
교회는 해마다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는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발현에서 비롯되었다. 성모님께서는 1858년 2월 11일부터 루르드에 여러 차례 나타나셨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부터 해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이 발현 첫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하였다. 이날 교회는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하여 기도한다. 또한 병자들을 돌보는 모든 의료인도 함께 기억하며 병자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책임감을 다지도록 기도한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말씀초대>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와 금기를 생의 원리로 제시하신다(창세기 2, 4ㄴ-9.15-17).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며 악한 것들을 경계하라고 이르신다. 곧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다. (마르코 7,14-23).
[복음말씀]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코 . 7,14-23)
[오늘의 묵상]
사람에게는 세 가지 ‘본성적 욕구’가 있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으로 식욕, 수면욕, 성욕이다. 젖 빠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그 방법을 안다. 자는 법도 배우지 않는다. 욕구가 육신을 돌보고 유지케 한다. 욕구가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혼자 있을 때를 ‘사람’〔人〕이라 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인간’(人間)이라고도 하는데, 본성적 욕구는 인간관계에서 사회적 욕망으로 발전한다. 식욕은 소유욕이, 수면욕은 명예욕이, 성욕은 지배욕이 된다.
욕구에 따라서만 살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되니, ‘이성’이라는 것이 작동되어 본성을 제어한다. 그렇게 하여 공동체와 사회 질서의 규범을 마련한다.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본성이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이성이다. 배가 고프지만 타인도 생각하고, 놀며 자고 싶지만 근면하며, 욕정이 일어나지만 스스로 삼가는 것이 이성의 작용이다. 본디 교육이란 자기 절제 능력, 곧 ‘예의염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금기의 열매’란, 본성의 자유는 이성의 질서를 넘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유혹자란 악령이다. 욕망을 유인하여 욕구를 관철시키는 현상으로 공동체를 파괴한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새사람은 세례의 정화로 태어난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악마에게 소유욕, 명예욕, 지배욕의 유혹을 받으셨을 때 ‘말씀의 순종’으로 물리치셨다. 본성은 사람에게서 나가는 욕구이고, 이성은 들어오는 성찰의 작용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신앙도 윤리 생활에서는 이성의 작용이다.


속마음을 보라 반영억신부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그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보시니 좋더라.”, “보시니 참 좋더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더럽히고, 안 더럽히는 것은 사람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실 좋고 나쁨은 사람들이 서로 비교하여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더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게 창조된 것이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쓰려고 하면 더러움을 만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 안에 품은 육의 욕망들은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을 밖으로 표출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자주 확인해야 합니다. 정작 문제는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내적인데, 외적인 것에 연연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그러니 내면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나라의 중책을 맡기 위해서 청문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국무총리후보자의 청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논문표절, 황제특강에 이어 특혜채용, 언론통제까지 의혹에 의혹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뿌리는 마음 안에 품은 욕망입니다. 감추어진 것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남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과 하늘을 숨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얼짱’ ‘몸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외면을 중시하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성형수술을 하고 겉모양을 가꾸는데 온갖 노력을 다 쏟아 붓습니다.
반면, 속을 가꾸는 데에는 소홀히 해서 내면을 황폐하게 버려둡니다. 심지어 ‘감정에 충실하자.’ ‘솔직한 것이 좋지 않으냐?’하면서 자신의 악한 생각을 합리화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죄악에 대해서 많이 무뎌졌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속마음을 들여다본다”(1사무16,7). 그러니 내면을 더 깨끗하게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글입니다.
“당신의 행동에 있어서는 활달하며 당신의 대화에 있어서는 조리를 지키며 당신의 사상에 있어서는 방황하지 말고 당신의 영혼에 있어서는 내적인 분란과 외적인 혼란을 없애고 실생활에 있어서는 여가가 없을 정도로 분주한 생활을 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고 당신을 갈기갈기 찢고 당신을 저주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이 순결하고 현명하고 건전하고 올바르게 머물려고 하는 당신의 영혼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투명하고 맑은 샘물가에서 샘물을 저주한다 하더라도 샘물은 결코 식수를 제공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진흙이나 오물을 집어넣었다 하더라도 샘물은 이것들을 흘려보내고 씻어내어 전혀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평범한 우물이 아니라 영원한 마음의 샘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그것은 만족과 단순과 겸손으로 결합된 자유를 스스로 끊임없이 누리면 된다”(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진정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숨, 당신의 영, 얼을 불어넣어주셨으니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잘 지키고 가꾸며 하느님의 좋은 작품인 만물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안에 담겨져 있던 것입니다. 평상시에 좋은 것을 잘 담아 놓아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죄의 원인과 책임>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마르 7,18-19)."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
예수님의 말씀은 음식에 관한 구약시대 규정들을 모두 폐지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 구약시대의 사고방식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즉 부정한 음식이란 없다고 선언하시고, 사람이 부정하게 되는 것의 원인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음식이든 무엇이든 간에 물질 자체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좋은 것입니다(창세 1,31).
그러나 사람들이 악한 용도로 사용한다면 악의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죄의 원인'은 죄를 짓는 사람 안에 있다는 가르침이고, 일차적인 '죄의 책임'도 죄를 지은 그 사람에게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간단하게 줄이면, 남 탓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일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첫 번째 죄이기도 하고, 뭔가를 먹어서 지은 죄 가운데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해서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죄의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무엇에게) 있는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은 선악과가 원래 악한 열매였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런 나무를 만들어 놓으신 하느님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인가?
또는 나무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령 때문인가?
만일에 하느님께서 그런 나무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또는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먹은 일이 죄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하느님께서 왜 인간들이 먹으면 안 되는 나무 열매를 만들어 놓으셨는지, 또 인간들이 따 먹을 것을 아셨으면서도 왜 금지 명령을 내리셨는지, 또 죄를 짓는 것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가 왜 나중에 벌을 내리셨는지...많은 부분들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만일에 선악과가 죄의 원인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런 나무를 만들지 않으셨거나, 아니면 나중에라도 그 나무를 없애셨을 것입니다.
또는 그런 나무를 만드신 당신 자신의 책임이라고 선언하셨거나, 아니면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하셨거나... 그렇게 하셨을 텐데, 그렇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죄에 대해서 가장 먼저 뱀(사탄)을 심판하셨습니다.
그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하느님의 명령을 어겨도 된다고)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것은 '죄를 짓게 만든 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담과 하와 자신들이 스스로 결정해서 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죄는 그들 자신들의 죄이고, 책임도 그들에게 있습니다.
(열매에서 죄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안에서 죄가 나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처음에 아담에게 왜 열매를 따 먹었느냐고 물으셨을 때, 아담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죄의 일차 책임은 당신에게 있고, 그 다음에는 당신께서 주신 여자에게 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상투적인 변명입니다.
카인의 살인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죄의 원인은 무엇이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제사가 원인인가?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카인의 제사는 안 받으신 일이 원인인가?
그러면 그 살인죄의 책임은 하느님에게 있는가? 아니면 아벨에게 책임이 있는가? 카인의 살인죄의 원인은 처음부터 그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제사를 제대로 바치지 않게 만든 그의 마음속의 어떤 것, 그리고 제사를 바친 뒤에 하느님과 아벨에게 느낀 시기, 질투, 분노 등.
카인은 하느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라고 대답합니다(창세 4,9).
아담은 죄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변명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죄를 지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카인은 아예 모든 것을 부정했습니다.
자기에게는 전혀 죄가 없다는 태도입니다. 아담보다 더욱 악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다음에 아담처럼 변명할 때도 많고, 카인처럼 아예 모든 것을 잡아뗄 때도 많은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덮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제 탓입니다." 라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
그런데 진짜로 외적인 환경과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상황 속으로 내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도움도 주지 않고 박해만 해서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죄를 짓는 경우. 그런 경우에도 죄가 죄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 안에서 죄가 나온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개인만의 죄인가, 모두의 죄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사회와 국가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사람들에게 먼저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환경과 여건 탓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변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에덴동산[회복] 조재형신부
31명의 신입생이 곧 신학교에 입학 할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신학, 성서, 철학, 심리학, 교리 교수법을 배울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친교를 나눌 것입니다. 운동도 할 수 있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에는 꼭 지켜야 할 내규가 있습니다.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영성입니다. 영성은 매일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배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침기도, 미사, 낮기도, 묵주기도, 저녁기도를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 기도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못하면 다른 것들을 잘 한다고 해도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사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지성입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신학과 철학 그리고 심리학은 오랜 시간 공부를 요구하는 학문입니다. 수업을 충실하게 듣고, 면학에 열중해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해도 학업 성적이 나쁘면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사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건강입니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남을 돌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은 몸의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사람은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은 모두 성지였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발자취가 가득담긴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아무런 흠이 없이 ‘원죄 없이’ 창조해 주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창조계획과 질서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흔들리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교만함입니다. 교만함이 원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다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교만함으로 일그러졌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 이 세상이 다시금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한 ‘에덴동산’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인간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 교만, 인색, 탐욕, 욕망, 미움, 원망’과 같은 것들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밖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 내면의 갈등과 우리들 내면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의 뿌리를 자를 때 비로소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들은 내 안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면 우리는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심, 시기, 질투, 탐욕, 인색, 게으름은 모두 내 안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 용서, 인내, 나눔, 성실함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