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파타!” (마르코 7,31-37).

2015. 2. 13. 오전 8:34:56

글자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오늘의 말씀초대]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는 하느님의 금칙에 대해 뱀은 이렇게 꼬드겨 따 먹게 한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된다.” 마침내 사람의 삶은 하느님의 언약을 벗어나 고해(苦海)의 삶으로 변형한다(창세기 3,1-8).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에파타!’(열려라!) 하시며 치유하신다. 사람들은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는구나.” 하며 하나같이 예수님을 칭송한다. (마르코 7,31-37).     

 

[복음말씀]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 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마르코 7,31-37).     

오늘의 묵상

 

보지 못하는 것과 듣지 못하는 것 중에 어떤 고통이 더 클까? 소외감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심으로써 소통시켜 주셨다. 이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쁠까. 그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청력은 좋은데 청각 장애인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기보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미움으로 말미암아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스러운 이도 있고,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말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철이나 식당, 심지어 수업 시간까지 휴대 전화에 빠져 있다. 모두 청각 장애인이요 언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영화나 청소년들의 말에는 외설적이고 폭력적 욕설이 너무 많아 민망스럽다.
‘에파타!’는 진흙에 숨을 불어넣으신 창조를 떠올리게 한다. 소통이 생명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대화법에 대해서는 한 과목도 가르치지 않는다.

귀가 있고 입이 있으니 당연히 듣고 말할 수 있다고만 여길 뿐, 대화에도 기술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투고 갈등하며 상처 받고 원수가 되는 출발점에는 꼭 대화의 충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언어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언이인격’(言而人格)이라는 말도 있다. 말에 인격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평화의 대화는 첫째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겸손한 태도가 바탕이 되는 것이다. 경어와 품위 있는 표현이 교양이다.

 둘째는 내 말이 중심이 아니고 먼저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셋째는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원칙만 따르면 대화가 감정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의 목적은 통교와 공감에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귀를 열어 주시고 혀를 풀어주십시오         반영억신부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귀머거리 입니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관해 말할 수 없다면 그는 벙어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의 현존을 깨닫기도 전에 먼저 나를 생각하고 찾으셨습니다. 먼저 믿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로마10.17)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에파타!열려라! 하시며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귀를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사회적으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지위도 있으며 세상 것에는 해박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에는 둔한 사람들이 있다면 들을 귀가 없는 그는 귀머거리요, 입이 있어도 주님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반벙어리입니다. 그들의 귀와 입을 열어주시길 청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엘리사벳 자매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분의 취미는 음악 감상입니다. 놀라시겠지만 ‘음악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육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느끼고 살아갑니다. 지금도 서예를 가르치고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하시며 말씀도 얼마나 예쁘게 잘 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는 영적인 귀와 입이 열려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환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서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듯이 주님과 한적한 곳에서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말씀으로 끝날 수 있음에도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가두어 놓은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발라 혀에 대는 행동으로 당신의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 하셨듯이 우리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이웃사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꼭 안아주는 포옹으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그의 손길에 담았습니다. 눈먼 이에게 눈이 되어주고, 듣지 못하는 이에게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침을 발라 혀에 대는 것은 비위생적이고 단정치 못한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늘 혼자 외롭게 지냈던 그들에게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엄마가 자식에게 먹을 것을 꼭꼭 씹어서 주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셨다고 하였는데 하늘을 우러러 본다는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하였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 2마리와 빵 5개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루카9,16)을 베풀 때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처지나 환경 안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감곡매괴성모성당의 '수난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 천상을 향해 있을 때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3,2).

성경은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 뵐 것이다(신명4,29)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귀를 열어 주시고 입을 열어 주시는 주님을 만나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열리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위로와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너 한껏 네 입을 벌려 보라, 나는 곧 그 입을 채워 주리라(시편80,11). 사람들이 우리의 변화된 삶을 보고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하고 놀라워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말(言)                    조재형신부

서품식이 끝나고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전례, 무대, 디자인, 홍보, 신학생, 성소후원회, 방송담당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평가를 하면서 서품식이 하나의 종합예술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들 맡은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할 때 서품식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몸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지만 사실 우리의 몸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역할을 하는 지체들이 있기 때문에 겉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혈관을 타고 하루 종일 신선한 공기와 양분을 공급해 주는 혈액이 있습니다. 매순간 혈액이 순환하게 해 주는 심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말을 합니다. 어떤 말은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하고, 어떤 말은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한 친구가 버스에다 카메라를 놓고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위로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카메라 다시 사면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버스에 놓고 왔던 친구에게 정말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은 다른 말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카메라를 잃어버렸으니 속상하겠다. 카메라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었는데, 단순하게 돈 주고 다시 사면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운전기사가 연락을 하였습니다. 버스를 청소하다가 카메라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오면 그 편에 보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2가지의 말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1독서에서 우리는 사람을 유혹하는 말, 사람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말, 죄를 범하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비록 달콤하고, 아름답게 들리지만 그 말을 따라서 하면 우리는 하느님과 멀어집니다. 처음에는 두렵고, 걱정도 되지만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두 번째는 첫 번째 보다는 더 쉽게 하게 됩니다.

학생 때, 친구들이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담배를 맛있게 피우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너도 한번 피워봐!’ 저는 그 말을 듣고 담배를 배웠습니다. 담배를 끊는데 15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도 종종 듣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머!, 이렇게 안하면 너만 손해 본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양심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도 커다란 유혹입니다.

오늘 뱀은 여자를 유혹했습니다. ‘하느님과 같아 질 것이라는 말로 유혹을 합니다. 교만함은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 같지만 우리를 가장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겸손함은 악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기는데 가장 큰 힘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찾아오는 많은 병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하십니다. ‘에파타이 말씀은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어둠속에 빛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절망 중에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고독한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희망을 주는 이야기, 위로를 주는 이야기,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에파타란?

에파타' '열려라'라는 뜻으로, 마르코 복음 734절과 35절에는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한숨을 쉬시며 그에게(귀먹은 반벙어리) '에파타' '열려라'고 하셨다 그러자 (즉시) 그의 귀가 열리고 그의 굳은 혀도 풀렸다 . 그래서 그는 제대로 말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에파타는 일종의 치료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손가락을 넣고   침을 바르며 하늘을 쳐다보고 숨을 내쉬는 것은 당대 유대계 및 이방계 이적사화에 흔히 나오는 치유행동이다. 침은 물, , , 기름과 더불어 액체약품에 속한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얻으려는 것이요, 한숨을 쉬는 것은 그 기운으로 병마를 물리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치유행위에 대해 구약성서에는 의술에 의존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단 의술자체까지도 변질시키는 우상숭배적 성격이 짙은 마술행위는 금했다. 또한 치유는 하느님께서 인류의 아픔을 덜어주시기 위해 얼굴을 그들에게 돌리셨음을 알려주는 표지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신약성서에서 병은 죄인이 처해있는 상태를 상징하고, 예수는 죄인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다. 결국 치유자 예수는 인류의 죄악을 제거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의 운명에 동참하신 것이다.

 

 

< “에파타!”  곧바로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다>. (마르 7,34-35)

외국어를 배워 본 사람은
말분이 안트여서 힘들었던 때를 기억할 겁니다.
이제 좀 알아듣기는 하는데
도대체 말문을 떼기가 얼마나 힘드는지...

귀멀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치유해 주신 오늘의 복음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는 유학시절에
귀머거리요 반벙어리였던 때를 떠올리게 됩니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내가 말하는 것은 알아듣는 것에 비례하더라는 겁니다.
정확히 알아들을수록
편하게 귀가 열릴수록
말이 더 쉽게 술술 나오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신앙을 소신있게 증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잘 못한다면
그건 말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가 바로 귀머거리요 반벙어리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이러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고
말문이 트이도록 치유시켜 주실 겁니다.

자, 귀를 기울여보세요.

"에파타!"
"열려라!"

들리지요?
이제 말해보세요.
잘 될 겁니다.

오늘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좀더 귀 기울여봅시다~~^^

                      오상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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