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가타 성녀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평생을 동정으로 살았다. 아가타는 철저하게 동정을 지킨 나머지 그녀를 차지하려던 지방 관리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고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기간(249-251년)에 순교하였다. 성녀에 대한 공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널리 전파되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내가 애써 궁리한 끝에 거울을 하나 얻었는데 놀랍고 신기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영혼 상태를 비추어 주는 것이다. 착한 사람의 얼굴은 꽃이나 천사로 보인다. 그래서 ‘내 얼굴은 사랑의 하트 모양으로 보이겠지.’ 하고 들여다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뿔이 달린 마귀가 나타난 것이다. 사제로서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성령의 보살핌 속에 있다고 여기며 사는데 내 영혼이 악령에 잡혀 있다니, 너무 놀랍고 슬펐다.
용기를 내어 그 뿔을 잡아 올렸더니 온갖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왔다. 명문 학위와 전문가 자격증, 큰 승용차와 고급 음식과 최신 전자 제품, 명품 의상과 가방, 유명 클럽의 회원권, 저택의 화려한 거실과 아무리 꺼내 써도 마르지 않는 투자 통장 등 셀 수도 없었다. 문명의 이기와 귀한 자격증을 얻고자 모두들 그토록 투쟁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악령의 것이란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악령은 지금까지 나로 하여금 돌로 빵을 만드는 기술과 보란 듯 뛰어내리는 위용과 황제의 감동과 편리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선망의 대상, 이른바 ‘로망’으로 삼게 했다. 가난한 이들과 놀면 품위가 없으니 부자 편에 붙으라고 했다. 사람들은 왜 시장에서 1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가방을 명품이랍시고 5백만 원을 결제하였는지, 왜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로 내몰아 악령의 자발적 노예로 살아가게 만들려 하는지를 알고 있을까?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의 거울을 들고 악령을 색출해 추방하는 구마사로 살기로 했다. 그 거울은 선망의 대상들이 악령의 주술에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악령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어 파견하셨는지를 깨우칠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분명한 자의식이 필요하다. 그대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복음 말씀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다(마르 6,7-13).'입니다.마르코복음에 있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지시하신 사항들"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손으로 떠나라.
2. 한 집에만 머물러라.
3.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경고하여라.
4. 회개하라고 선포하여라.
5. 마귀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 주어라.
이 지시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을 선포하여라."입니다.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회개하여라." 라고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즉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귀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은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일들도 역시 복음 선포입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뜻이고,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안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못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리는 행동은(마르 6,11)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회개하는 사람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죄 속에서 그냥 살다가 멸망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받기도 전에 자기가 심판의 결과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한 집에만 머무르라는 지시는 더 좋은 대접을 하는 집을 찾아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복음 선포는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먹을 것을 준다면 주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이 지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은 호의호식을, 또는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추구하면 안 된다."는 지시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만 추구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말하면서 실제 삶으로는 부귀영화를 추구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손으로 떠나라는 지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복음의 힘'(하느님의 힘)으로만 하라는 지시입니다. 돈의 힘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결국에는 돈 때문에 망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돈이 떨어져서 망하든지, 아니면 돈이 너무 많아서 망하든지 간에.)
만일에 돈을 뿌려서 사람들을 많이 모은다면,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돈을 받는 동안에는 남아 있지만, 돈이 떨어지면 바로 흩어집니다.
또는 물질적인 부귀영화를 약속함으로써 사람들을 많이 모은다면, 그 약속을 믿고 모인 사람들은 그게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흩어집니다. (그렇게 약속한 사이비 종교는 많은데, 그 약속을 지킨 경우는 없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복'을 받는 방법만 말한다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그냥 세속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입니다.
빈손으로 떠나는 모습과 한 집에만 머무르는 모습은 복음 선포의 방식이기도 하고, 그 모습 자체가 복음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빈손'과 '한 집에 머무르는 일' 자체가 복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빈손이 되었을 때 그 손에 가득 채워지는 하느님의 힘이 복음입니다.
또 세속적인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만 추구할 때 누리게 되는 순수한 기쁨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지시는 궁상맞은 모습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걸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힘으로 가득 차 있는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빈손인 것 같지만 빈손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10)." 라는 말씀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불우이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들에게 음식과 숙소 등을 제공하는 것은 불우이웃 돕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일꾼들이 하는 일, 즉 '하느님의 일'을 돕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선교사가 아니더라도 신앙인은 모두 자신의 삶으로 복음을 증명해야 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지시 사항들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신앙생활 지침입니다.

근본에 충실하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여행을 하기위해 짐을 챙길 때에 이것, 저것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에 따라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꾸려야 합니다.
잘 챙긴다고 해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빠뜨리고 쓸모없는 것을 잔뜩 싸 들고 돌아다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부터 ‘짐을 줄여야지’ 하고는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무엇인가 많이 소유를 해야만 안심이 되는가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교활동을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마르6,8-9)
이 말씀은 한마디로 ‘한눈 팔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직 근본에 충실할 것이지 부수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능력에 의지 해야지 인간적인 그럴 듯한 수단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7,31) 고 하시며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근본에 충실하면 일의 결과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편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17) 하고 적고 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면서 물질의 소유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뜻에 의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힘을 비워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이 그 자리를 채워주십니다. 보이지 않는 힘에서 보이는 힘이 나오는 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처음여행을 떠날 때에는 보따리가 큽니다. 그런데 자주 여행을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보따리가 작아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뭔가 손해 볼 것 같은 마음,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말씀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실천하면 할수록 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접고 주님께서 명하시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