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마르코 4,26-34)
하느님 나라
반영억라파엘신부
한 유치원 원장님이 아이들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예쁜 꽃을 피워온 아이에게는 멋진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내가 제일 예쁜 꽃을 피워야지!’ 하며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들은 꽃이 활짝 핀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원장님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밝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빈 화분을 들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게을러서 꽃을 못 피웠어요!” 원장님은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시며 그 아이에게 멋진 선물을 주었습니다. 나누어준 씨앗은 싹이 나지 않는 가짜였던 것입니다.
정말 싹을 틔워야 할 것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입니다. 사실, 씨앗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싹은 트지 않습니다. 또한 씨앗 자체의 신비로운 힘을 믿지 않는다면 씨앗에서 싹이 트고 새싹이 돋아나도록 땅을 가꿀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면서도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씨앗이 땅에 묻혀 모든 것이 끝나고 정지된 것처럼 보일 때 땅 속에 있는 씨앗은 은밀하게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지금 당장 밝히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싹을 틔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좋든 나쁘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수고와 땀, 희생 봉헌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결코 작지 않음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겨자씨가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씨의 크기는 0.95-1.6밀리미터=보니까 아주 먼지 같아요!)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되듯이(마르 4,32) 우리의 정성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요한3,27).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로마11,35-36).
국무총리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의혹, 아들의 병역문제등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진실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불신이 가득한 이 세상에 빈 화분을 들고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진실됨으로 하늘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 진실 됨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요, 불신과 거짓으로 서로를 경계하면 그 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쑥쑥 자라길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송영진 모세 신부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6-27)
이 말씀에서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라는 말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몰라도 된다." 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또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입니다.)
이 세상의 일 가운데 우연히, 또는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몰라도, 또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이 세상의 일에는 하느님의 섭리와 통치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결과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시니까 씨를 뿌린 다음에 가만히 있어도 된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뿌린 씨를 가꾸고 보살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 생명 작용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사람도 사람의 일은 해야 합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면, 그 나머지 과정은 하느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사도들은 교회를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를 알았을까? 몰랐습니다. 그냥 했습니다.
사도들은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교회 운영에 관한 무슨 '매뉴얼' 같은 것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고, 정해진 틀이나 제도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열성적으로 일했을 뿐입니다. 일하다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일곱 봉사자'를 뽑아서 식탁 봉사를 맡긴 일은(사도 6,2-5) 배급 문제로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입니다(사도 6,1). 아마도 그때 사도들은 함께 의논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기도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율법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를 연 일도 마찬가지입니다(사도 15장).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 4,31-32)."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마티아를 사도로 뽑을 때 그 자리에 모여 있었던 사람은 '백스무 명가량'이었습니다(사도 1,15). '120명'은 당시 교회의 전체 신자 수였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때 박해자들이 교회를 일망타진하려고 작정했다면, 아주 간단하게 전멸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후에 베드로 사도가 설교했을 때, 그날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사람은 '삼천 명가량'입니다(사도 2,41). '120명'이 순식간에 '삼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글자 그대로 '겨자씨'가 '큰 나무'로 성장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7)." 신자들의 수가 늘어난 것은 '주님께서' 보태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과 발전은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물론 사도들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충실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런 결과를 예상했을까? 기대는 했겠지만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선교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6-7)."
이 말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말은 "안 해도 된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우리는 결과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심는 사람은 열심히 심고, 물을 주는 사람은 열심히 물을 주고..."
이 내용은 개인의 신앙생활과 인생에도 적용됩니다.
지금 뭔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또 그 희망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확신한다면,
자기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 하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또 자기가 바라는 대로만 되어야 한다고 주님께 결과를 강요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그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확신한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사람 쪽에서 할 일이고, 합격 여부는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주님의 뜻이 어떤 것이든지 상관없이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교만입니다.
(승진, 건강, 사업... 인생살이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