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4,21-25)

함께 사는 생활에는 늘 갈등도 따르기 마련이다. 대립적 감정으로 지내는 것은 괴롭다. 화해란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똑같은 형국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면 불신까지 겹쳐서 더욱 어렵게 된다. 날마다 얼굴을 보아야 하는 관계이니 서로 힘들다.
상대편이 사과까지는 아니지만 먼저 미안해하는 모습이라도 조금 보인다면, 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말이라도 친절하게 걸어온다면 자신도 선의로 대할 수 있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기다릴 때야말로 가장 좋은 화해의 시기다.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감정을 상대편도 같이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친절히 대하면 너무도 쉽게 풀릴 것이다.
거기다가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이는 마음만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잘못이란 30%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만큼의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상대편은 마치 내 잘못을 100% 인정하고 사과하며 용서를 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는 이전보다 더욱 깊은 눈길로 받아들이며 결국은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미안함을 친밀감으로 드러내게 된다. 그는 상대편을 등잔 위에 올려놓은 등불처럼 밝은 빛으로 느끼면서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할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로 세상 사람들에게 친숙한 사상가 톨스토이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어떤 다툼이나 갈등도 그 원인이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없으니, 누구든 먼저 자기 잘못만큼만 물러서면 즉시 풀릴 수 있다.” 평화를 만들어 내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해답이다.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등불이 되어라
반영억라파엘신부
등불은 등경위에 놓아야 제대로 비출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이 빛나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비출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둠이 깊을수록 우리의 소명은 더 커집니다. 세상의 어둠을 탓하기보다 하나의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4.16).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말씀을 새기고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 그 기운이 이웃에게 전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기운이 감싸면 악한 기운은 서서히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히브10,22). 그리고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파독 광부 및 간호사, 이산가족들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했다고 합니다. 손수건까지 미리 준비하여 연신 눈물을 닦았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 좋은 문화콘텐츠는 사회통합에도 이렇게 도움을 주고 기여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국제시장을 통해 실감했다"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영화를 본 것이 뉴스거리가 됩니다. 사회통합의 주역이 누구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변화되라고 강요하지 말고 내가 먼저 쇄신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령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4,2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은 결국 “간수하지 않는 것은 곧 잃어버리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우울해 하며 남을 비판하고 불평불만하면서 아무런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움켜쥐면 빼앗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먼저 주면 빼앗길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먼저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주지 않는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금고에 쌓아 놓았다할지라도 이웃과 나누지 못하면 그것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부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받으시고 이웃과도 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 하나를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히브10,24). 마무리 하겠습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마르4,24).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등불의 비유>
송영진 모세 신부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마르 4,21-23)."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4-25)."
예수님은 '빛'이신 분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5)."
신앙인은 예수님의 빛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빛은 없고, 다른 생명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빛을 따라가는 것은 생명이 아닌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이 아닌 것이라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빛만 따라가야 한다는 말에서 동방 박사들의 여행이 연상됩니다.
동방 박사들은 '하느님의 별'의 인도를 받아서 예루살렘까지는 잘 왔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다음에는 메시아가 태어난 곳을 '사람들에게' 묻고 있습니다(마태 2,2).
마태오복음을 보면, 별이 예루살렘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어쩌면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만 마음을 놓아버리고 '하느님의 별'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일에 동방 박사들이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계속 '하느님의 별'만 바라보고, 그 별의 인도만 받았다면, 헤로데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베들레헴으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헤로데를 만나게 한 것이라는 해석이 교회의 정통 해석이긴 합니다. 당시의 통치자가 메시아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동방 박사들이 중간에 잠깐 '하느님의 별'을 놓친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빛' 안에서 사는 것은 믿음, 희망,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은 이기심, 욕망, 의심 등에 사로잡힌 삶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욕망대로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요한 3,19)."
욕망대로 사는 사람은 빛보다 어둠을 (선보다 악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당신의 빛 안에서 사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능동적으로 세상의 빛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신앙인은 '빛 자체이신'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고,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등불의 첫 번째 기능은 어둠을 밝히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 있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말해야 합니다.
또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선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박해가 두려워서 침묵을 지키는 경우도 있고, 세상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방관하는 경우도 있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만 복 받으면 된다는 이기심을 버리지 않고 외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런 모습은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빛을 가리는 것은 사실상 등불을 꺼버리는 일입니다.
그런 모습은 '탈렌트의 비유'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이 탈렌트를 땅 속에 숨기는 모습과 비슷합니다(마태 25,18).
주인은 그 종의 탈렌트를 빼앗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이 말은 '등불의 비유'에 나오는 말씀과 똑같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등불을 빼앗길 것입니다.
등불의 두 번째 기능은 신호등처럼 올바른 방향을 안내하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신호등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5)."
신앙인은 처음에는(신앙인이 되기 전에는) 동방 박사들처럼 하느님의 별을 따라간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인이 된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 주는 하나의 별이 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