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인근의 도쿠시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대단한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1597년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마르코 6,14-29)

인류 역사상 이런 선물도 있었던가? 헤로데는 사랑하는 딸을 기쁘게 해 주려고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선물했다. 이렇게 해서 당대 최고의 예언자는 임금의 생일잔치 안줏감으로 처형되어 버렸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랑을 위하여 북을 찢어 조국을 패전시킨 낙랑 공주도, 기울어진 나라를 넘겨준 을사오적의 매국노들도, 원자 폭탄과 네이팜탄과 고엽제 투하와 무차별 학살을 명령한 자도, 고문 기술자도 모두 제 목숨과 가족과 연인은 사랑할 것이다.
사랑이란 이처럼 못할 것이 없을 만큼 위대하지만 그 사랑도 타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보다 더 커 버리면 헤로데가 되고 만다는 점을 깨우친다.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룬다.’는 뜻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삶에는 인정과 정의와 평화가 있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고, 도덕과 윤리, 예의염치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성적 욕구에 따라 살기 십상이지만 그 욕구가 선이 되려면 항상 하느님의 법 앞에 있어야 한다.
생각이 본성의 지배를 받으면 이기적 폭력이 될 수 있고, 이성의 지배를 받으면 이웃과 세계를 발전시키는 진정한 사랑이 된다.
헤로데는 그 점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자식 사랑 때문에 그를 처형했다. 예수님과 요한은 자신의 길이 죽음을 향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충실성 때문에 피해 가지 않은 분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분들의 제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언젠가 사제 서품식 미사의 성찬례가 시작되기 전 복사가 ‘쟁반’을 들고 나와 주교님의 빨간 모자를 받아 드는 걸 보고 덜컹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마르 6,14-16)."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식'과 '소문'은 분명히 다릅니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사실 그대로(또는 들은 그대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문'을 전하는 것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추측이 덧붙여져서 돌아다니는 불확실한 말들을 듣고 다시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고, 주로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에 대해서만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죽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아니다. 엘리야가 온 것이다.", "아니다. 예수는 옛날의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하고,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헤로데의 신하들은 그런 소문들을 모아서 헤로데에게 전했을 것이고...
마르코복음 2장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마르 2,1-2)."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은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퍼진 예수님께서 집에 계신다는 소식"입니다.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잘 고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고, 또 그분이 지금 집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복음 3장에도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돌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이 말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졌고, 친척들이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예수님에 관해서 좋은 소문만 퍼진 것이 아니라 나쁜 소문도 많이 퍼졌음을 나타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무덤에서 일어난 일을 사제들에게 보고합니다(마태 28,11). 이것은 자기들이 직접 본 것을 말한 것이고, '소식'을 전한 것인데, 사제들은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라는 소문을 퍼뜨리게 합니다(마태 28,12-14).
그래서 그 이후에 오늘날까지(마태 28,15)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과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이 대립하게 됩니다.
그런데 듣는 쪽에서 정확한 '소식'인지, '헛소문'인지를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해도 헛소문이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고, 헛소문인데도 정확한 소식이라고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우선 자기가 먼저 그 소식을 믿고 있어야 합니다.믿음도 없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면 듣는 쪽에서도 안 믿을 것입니다.
이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소식, 누구든지 회개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식,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단, 그것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만. 믿지도 않고 희망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헛소문, 또는 헛소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자기가 죽인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그의 미신적인 불안감을 나타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의 여러 가지 모습을 전부 종합해서 생각하면, 이 불안감은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의식하는 '양심의 가책'은 아닙니다.
이것은 "요한이 정말로 하느님의 예언자였던가? 그러면 내가 하느님의 예언자를 죽였다는 것이 되는데, 그 일 때문에 혹시라도 해로운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라는 불안감입니다.
(되살아난 요한이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는 천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그러면서도 "내가 뭘 잘못했지?" 라는 오만함...)
헤로데가 하느님을 믿었는지, 내세, 심판, 부활 등을 믿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안 믿었더라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죽인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도 있음을 믿었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더라도 그리스도교의 부활 신앙과 같은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헤로데의 모습에서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한 것도 아닌 죄인의 모습을 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자라고 해도 '영혼의 평화'를 자기 마음대로 얻어 누리지는 못합니다.
양심이라는 것이 아예 없어서 양심의 가책을 안 느낀다고 해도 죄 속에서 살고 있다면 '참 평화'는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의심과 불안이라는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이것은 심판을 받기 전부터 이미 스스로 지옥에 가 있는 것과 같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진정한 회개.'

체면을 지킨다는 것 반영억신부
여자는 기념일을 먹고 살고 남자는 체면을 먹고 산답니다. 여자는 쉽게 감동하기에 그렇고 남자는 자존심을 세워주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 맹세는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헤로데 왕은 요한이라는 인물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습니다(마르6,20).
그런데 그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왕은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기에 그에게 원하는 선물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6,25)하고 요구하였습니다. 너무도 당혹스런 선물입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이 자기의 결혼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 앙갚음의 기회를 딸을 통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약속한 것이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라 그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습니다(마르6,26). 그래서 결국은 요한의 목을 베게 되었습니다.
의인의 목숨과 자존심을 건 맹세에서 하나를 선택했거늘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체면이 뭔지?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다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만(야고5,12)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의로운 일에 자존심이 좀 상하면 어떻고 체면이 좀 손상되면 어떻습니까? 가정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그리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든 더 큰 것을 위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에 손상을 입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 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필립4,12-13).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어떤 처지나 여건 안에서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위신, 체면을 지켜야 할 때 지키십시오! 자존심을 내세워야 할때 내세우십시오!
그리고 헛것인줄 알았으면 곧 버리십시오! 서둘러 버리십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