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자선과 단식 (마태오 6,1-6.16-18)

2015. 2. 18. 오전 7:12:37

글자

  [(자) 재의 수요일]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ASH WEDNESDAY(재의 수요일) 유래와 의미,,, 작은 불꽃 하나가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교회가 이날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이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은 단식과 금육을 함께 지킨다.
말씀의 초대

“이제라도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고,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회개를 위한 진실한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이다(요엘 2,12-18).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하지 말라면서,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임을 강조한다(코린토 2서  5,20―6,2).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에 대해 말씀하시며 진실한 삶을 가르치신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자선을 베풀 때에, 기도할 때에, 단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오 6,1-6.16-18)).     

복음재의 수요일 의미와 전례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성찰과 회개의 때, 은혜로운 사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삶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수행의 때이다. 진실한 인간, 진실한 그리스도인, 진실한 제자의 삶을 추구하며 자기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회심의 시기인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객관적 현상이고, 진실은 내면적 의지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것을 진실이라 한다. 인간의 판단은 한계가 있어 믿을 것이 못 된다. 모든 갈등은 사실만 보고 진실을 알아주지 않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인간 사이에는 목격자가 있어도 사실과 다를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는 속임도, 거짓도, 억울함도 없다. ‘숨은 일도 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아시는 만큼이 진실인데 타인에게도 그런 진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모습에도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 유념해도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자선과 선행, 기도와 단식은 고행과 극기의 종교적 수행들이다. 인간에게서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진실의 함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존재라는 진실을 믿으면, 상황이 어떤 경우이든, 상대가 누구이든 겸손할 수 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모든 삶의 진실성을 존중하자. 올해 사순 시기에는 함께 사는 이들의 말과 행동에 담긴 진실을 믿어 주자. 그러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하면 사랑이 된다.     

 

 

2013년2월13일 재의 수요일 복음묵상

<재의 수요일>(2015. 2. 18. 수)(마태 6,1-6.16-18)

 

<위선>     송영진 모세 신부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마태 6,2)."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마태 6,5)."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마태 6,16)."

 

'위선'은 '거짓 선'이고 '악'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자이기 때문에 '악인'입니다.

사람들은 속아서 그를 의인으로 생각할 때가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 경우는(마태 26,41) '위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게 되거나, 아니면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위선'은 처음부터 마음 자체가 순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와 지향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위선자들의 '자선'의 경우, 그들도 실제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냅니다. 내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는 것이고, 누군가가 그 도움을 실제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일의 결과만 본다면 위선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고, 속마음이 어찌 되었든 칭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주는 사람이 위선자이든 아니든 간에 받은 것에 대해서 고마워할 수도 있습니다. 받는 쪽에서 칭찬하고 고마워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마태 6,1)." 

위선자들의 '단식'의 경우에도, 그들도 실제로 밥을 굶습니다. 먹으면서 굶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굶는 것이고, 굶으면 당연히 배가 고플 것이고, 그 배고픔을 참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단식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위선적인 단식이라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은 위선인지 아닌지 모를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위선자들의 '기도'의 경우는 '자선'이나 '단식'의 경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실제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하는 모습을 흉내 낼 뿐입니다. 입으로 어떤 기도를 바친다고 해도 그것은 '빈말'입니다.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께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 위선자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위선이라는 것을 모르고, 누가 비판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위선'의 가장 큰 위험이고, 함정입니다. 

자기 딴에는 진심으로 실천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위선이라고 비판한다면, 그 비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은 진실하다고 스스로 믿었고,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이라고 비판하시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위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성하지도 않았고, 고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을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본받으라고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위선자가 아닌,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항상 자기가 하는 일이 혹시 위선이 아닐까 조심하고, 반성합니다. 누군가가 비판하면 겸손하게 그 비판을 경청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르기를, 하느님만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을 감추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가? 아닌가?" 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6,1.5.16). 그래서 시작할 때에는 진심이었더라도, 하고 나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다면, 그 일이 위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마태 6,4)."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른다는 말은, 자기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른다는, 즉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

이 말씀은 기도할 때마다 숨어서 기도하라는 뜻은 아니고,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만 생각하고, 하느님만 만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골방'을 자신의 '마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자기의 마음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서 하느님만 만나야 합니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마태 6,17)." 이 말씀은 단식하면서도 밥을 먹고 있는 척 하라는 뜻은 아니고, 무슨 대단한 극기고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또 신앙인들이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외적으로만 요란하게 사순시기를 지낸다면, 그것도 위선이 될 수 있습니다.

 

재의 수요일의 의미 (구자윤 신부님)

하느님의 눈에 들어라     영억신부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이라는 말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기도와 희생으로 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고유명절인 구정과 함께 사순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단식, 금육의 관면을 허락하셨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다른 날을 정하여 단식, 금육에 동참하고 그 정성을 이웃과 함께 나눕니다. 재를 지키는 것은 더 큰 기쁨을 지금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몸소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기쁨이 큰 만큼 거기에 걸 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자선과 기도, 단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선할 때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하라.” 단식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모르게 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의 삶이건 신앙의 삶이건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합니다. 좋은 평판을 받기를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면의 힘을 길러 그런 것에 민감해 하지마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적인 힘이 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을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기도는 내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듯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시켜 줍니다(구엔 반 투안 대주교).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 살려면 호흡을 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호흡을 해야 합니까?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자선은 단식과 기도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민첩하게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리면 열매는 천국에서 넘치도록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베푸십시오.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은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다른 것이 불완전 해 집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면서 기도하고 단식을 지켰는가? 그렇게 하셨다면 그 희생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는가? 사실 아침을 굶고 나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점심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셨어요. 그렇게 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평소에는 굶어도 굶었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치는데 사순절이 되면 유난히 배가 고파 옵니다. 합동 판공성사에 다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살이 올라요. 가는 곳마다 오랜만에 오신 신부님 대접한다고 고기에, 회에 넘치도록 챙겨주시거든요. 마음을 먹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유혹의 빌미는 항상 생기게 마련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루세끼 식사는 꼭 챙겨 드시려고 하거든요. 오히려 너무 바빠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빠서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면 베풀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시면 하실수록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에 자주 듣는 말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하느님께로 다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외적인 기도와 단식, 자선에 앞서 마음의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재의 수요일 의미와 전례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코린 5,20)      오상선 신부

어김없이 사순절이 돌아왔네요.
이번 사순절은 설연휴와 함께 시작되니
사순절을 어떻게 보낼까 좀 고민스럽습니다.

주교회의에선 재의 수요일과
연휴 금요일에 금육재를 관면해 주어서 고맙기는 한데
이번 사순절의 중심을 어디에 둬야 할 지 고민입니다.

이번 사순절은
아마도 극기와 희생의 재를 지키며 보내기보다는
더 사랑하며 기쁘게 보내라고 하시는가 봅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그길은 더 사랑하고  더 용서하고
더 배려하고  더 믿어주고
더 감사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이번 사순절을 보내 봅시다.
그래야 이 시기가
참으로 구원과 은총의 때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는
의미있는 사순절 보내시길 축원합니다.

ASH WEDNESDAY(재의 수요일) 유래와 의미,,, 작은 불꽃 하나가

 

 

 

하느님께 가까이       반영억신부   2014. 3. 4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이라는 말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기도와 희생으로 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몸소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기쁨이 큰 만큼 거기에 걸 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자선과 기도, 단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선할 때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하라.” 단식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모르게 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의 삶이건 신앙의 삶이건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합니다. 좋은 평판을 받기를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면의 힘을 길러 그런 것에 민감해 하지마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적인 힘이 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을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도는 내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듯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시켜 줍니다(구엔 반 투안 대주교).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 살려면 호흡을 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호흡을 해야 합니까?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자선은 단식과 기도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민첩하게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리면 열매는 천국에서 넘치도록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베푸십시오.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은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다른 것이 불완전 해 집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면서 기도하고 단식을 지켰는가? 그렇게 하셨다면 그 희생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려고 마음먹었는가? 사실 아침을 굶고 나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점심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셨어요. 그렇게 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평소에는 굶어도 굶었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치는데 사순절이 되면 유난히 배가 고파 옵니다.

합동 판공성사에 다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살이 올라요. 가는 곳마다 오랜만에 오신 신부님 대접한다고 고기에, 회에 넘치도록 챙겨주시거든요. 마음을 먹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유혹의 빌미는 항상 생기게 마련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루세끼 식사는 꼭 챙겨 드시려고 하거든요. 오히려 너무 바빠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빠서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면 베풀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시면 하실수록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에 자주 듣는 말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하느님께로 다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외적인 기도와 단식, 자선에 앞서 마음의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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