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2015. 2. 19. 목)(루카 12,35-40)

2015. 2. 19. 오전 6:24:37

글자

 

[설날](2015. 2. 19. 목)(루카 12,35-40)

 해피 설날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들을 지켜 주시며 평화를 베푸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제1독서민수기 6,22-27).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자만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우리의 삶은 주님께서 인도해 주심을 믿으라고 한다(제2독서야고보 4,13-15).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깨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복음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2015년 을미년 청양띠 - 새해 인사

 

♡ 복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다  / 반영억라파엘 신부님

명절미사 
 

어느 민족에게나 그 민족의 고유한 명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설명절과 추석명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때에는 서로 고향을 찾고 부모 형제를 만나고 조상들을 기억하며 서로 가족으로서의 친밀한 관계를 확인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명절을 더 귀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하여 가족과 이웃과 함께 서로 간에 복을 빌며 사랑을 주었습니다. 오늘도 길이 막히고 어려워도 고향을 향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만남의 기쁨이 있기에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발달하여도 명절의 전통을 바꿀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1. 유다인들도 명절을 보냈습니다.

유다인들에게는 3대 명절이 있습니다. ①유월절이라는 무교절(봄철 축제) ②맥추절이라고 하는 오순절(여름에 곡식의 맏물을 바치는 축제) ③초막절이라고 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가을에 모든 곡식을 거두어드리는 추수감사).

 

2. 어떻게 지냈는가?

이 삼대 절기에는 의무적으로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성전에서 하느님 앞에 감사하며 예물을 드리고 한 주간씩 축제를 하였습니다. 이때야말로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이 가족과 친지와 모두를 만나서 기쁨을 나누며 서로 축복하는 절기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명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내려오는 명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부인하지 말고 성경적 입장에서 하느님의 뜻 가운데 해석을 해야 합니다.

 

3. 유다인들의 무교절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무교절은 ①새로운 역사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절기입니다. 고달팠던 지난날을 생각하고 민족의 쇄신을 이루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유다인들은 다 무교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그 이듬해 첫째 달, 주님께서 시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해진 때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너희는 정해진 때, 곧 이달 열 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야 한다. 관련된 모든 규정과 법규에 다라 지내야 한다.’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고 일렀다. 그래서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서 첫째 달 열 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파스카축제를 지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민수9,1-5).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축제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들은 평생 그리고 대대로 잊지 않고 내려오면서 이 절기를 지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봄철축제인 과월절에는 새끼양을 축제의 제물로 바쳤는데 훗날 이를 누룩없는 빵의 축제와 일치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는 신약의 축제로 이어집니다. 신약에서 축제 중의 축제는 부활축일입니다. 죽음을 이긴 파스카신비 안에서 종말론적인 의미를 확인시켜 줍니다. 천상축제를 지향하는 주간의 시작인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핵심축일입니다. 함께 모여 주님을 찬미하고 영성체로써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4.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설 명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우리나라의 설 명절은 유다인들의 무교절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은혜 가운데 보내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한 해를 펼쳐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 은혜를 생각하지만 동시에 조상들의 은덕도 생각하고 서로간의 만남 안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이 무교절을 지킨 것과 같이 1).구원의 은혜 감사 2).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은혜 감사 3).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 하느님께 감사(적당한 절기, 경제, 문화, 건강, 물질) 4). 또 한 해도 하느님께서 자녀 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5).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마라. 이러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6).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25-34).

그러므로 설 명절에는 서로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고 주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나눠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들도 부모님들께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고 천상에 대한 희망 안에서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5. 맥추절(오순절)은

그리스어로 50이라는 서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주간절이라고도 합니다. 농업관련 축제로 이스라엘백성은 그해 새로 거둬들인 곡식을 제단에 바치고 축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희생제사를 바쳤습니다(신명16,9-12. 민수28).

이 축제일은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축제인 오순절은 1세기 후에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바뀌었고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강림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리스도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성령을 보내겠다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실현되었습니다(루카24,49.요한16,7.사도1,4-5.8).

 

6. 초막절(추수감사)

초막절은 주님의 축제라고도 불렸습니다. 기쁨의 축제로 농업적인 요소와 역사적인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1년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종살이에서 나와 광야에서 살았던 것을 기억하며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초막은 사막에서 지냈을 때의 궁핍함과 비참함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열기와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의미했고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했습니다(시편27,5. 이사4,6).

유다인들은 이 절기를 하느님의 말씀대로 잘 지킴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이 축제 때에 남자들은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축제의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일상의 노동을 중지하고 쉬었으며 거룩한 모임을 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림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오늘을 사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교인들도 명절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은 유다인의 절기처럼 하느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옛날의 수고와 땀을 추억하면서 오늘의 풍성한 은혜를 감사하면서 축제를 지내야 합니다.

설 명절에는 조상들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드리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부모 형제 친척 친지들과의 기쁘고 즐거운 만남을 이루며 서로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전하는 절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모두에게 하느님의 복이 넘쳐나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6,24-27).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내려 너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성읍 안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의 광주리와 반죽 통도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들어올 때에도 복을 받고 나갈 때에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28,2-6).

 

 

 

<복 福>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 12,35)."

이 말씀은 종말과 재림에 관한 말씀이고,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말씀으로 생각한다면, 주님 앞으로 가는 여행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 경우에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길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되고, 등불을 켜는 것도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됩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우리는 종말과 재림이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믿고 있지만,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지는지는 모릅니다.그래서 '지금', 그리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때' 라는 말은, 그날이 언제인지 인간은 계산할 수 없고, 예상하거나 예측할 수도 없음을 뜻합니다.

이 말씀을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말씀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뜻은 같습니다.

언제 주님 앞으로 가서 심판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지금', 그리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즉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주님 앞에 서게 되면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좋은 날, 설날의 복음 말씀으로 왜 이런 말씀이 정해졌을까? 아마도 흐르는 세월(시간)에 대해서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말씀을 복음 말씀으로 정한 것 같습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설날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을 주신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묵상하라는 것.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졌다고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어리거나 젊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져서 서러워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시점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고,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좋아할 것도 없고, 서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평균 수명은 글자 그대로 평균 수명일 뿐이고, 각 개인의 수명은 아닙니다.

설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하는데, 만일에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인사를 해야 할까?

어떤 복을 빌어 주어야 하나?

그래도 설날이니까 모르는 척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하느님 앞으로 잘 가라고 빌어 주어야 할까?

반대로 우리 자신이 임종을 맞이한 입장이라면, 어떤 인사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복을 빌어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그래도 설날인데... 강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이상한 방향은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최고의 복은 하느님 앞에서 영혼의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는 동안에도, 죽어서 심판을 받게 될 때에도.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8)"

더 많은 돈이 생기는 일을 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돈 때문에 참 평화를 잃는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평화를 잃는다고 해도 돈이나 많이 생기기를 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이 복일까?  권력이 크면 책임도 크고,그 책임 때문에 평화를 잃고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력을 잘못 사용하면 혼자서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평화의 인사'를 하는 것은 형식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다른 복이 없기 때문에 서로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설날에만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서로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몸만 편안한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마음과 양심과 영혼이 모두 편안해야 평화입니다. 그러니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혼자서만 편안한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진짜 평화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울고 있고 아파하고 있는데 권력과 재물을 움켜쥐고 혼자서만 편안하게 지낸다면, 그 편안함은 결코 평화가 아니고, 그런 사람이 혼자서 살고 있는 그곳은 지옥입니다. 그러니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지금' 누리고 있다면, 인생의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남은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진다고 서러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다른 것만 찾는 사람은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는 것이, 한 해, 또 한 해 세월이 흐르는 것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안타까울 것입니다. 아니면 몹시 허무해질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이룬다고 해도 허무해질 것입니다. 그 목표라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또 하느님 앞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것은 모두 먼지일 뿐입니다.

 

2015년 을미년 청양띠 - 새해 인사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다. 이 을미년 한 해 동안 모든 가정에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원한다.

 명절이라지만 고기 한 근 사 들고 들어갈 수 없는 가장에게도 좀 더 기쁜 소식이 있기를 기도한다. 지난가을 내내 연어 떼가 개천 어귀에 철썩거리더니 눈이 많이 내리고 보리밭은 더욱 푸르다. 나의 탯줄이 묻힌 땅 어머니를 찾아간다.

뿌리를 찾아가는 내 걸음에 차가 밀리고 도로가 막힌다고 야단한들 무슨 상관이랴. 하늘이 막히지 않은 한, 날아서라도 간다.
외가 동네로 머슴살이 갔던 큰아들은 새경을 짊어지고 와서 지게를 받쳐 놓고 더 말라 버린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공장으로 돈 벌러 갔던 누이도 벌써 도착했고, 객지에 나갔던 작은아들은 빈손이라 못 온다더니 섣달그믐 한밤중에서야 사립문을 들어섰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초라한 가방에서 버선과 고무신을 내어놓고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낀다. 모두 모였다. ‘그래, 고생들 많았다. 몸성히 돌아왔으니 더 바랄 것이 뭐 있겠어.’
설날 아침이다. 차례 지내러 가자. 문중 어른들께 세배하고 친척들과 함께 여기저기 조상들의 산소를 순례한다.

하얀 두루마기 차림에 기러기 떼처럼 외줄로 밭길을 걸어간다. 까만 교복의 까까머리, 꽃댕기 매고 색동 치마저고리 차려입고 재잘거리는 아이들까지 모두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찾아가는 착한 이들이다.

평화의 주님께서 축복의 한 해를 열어 주시리라. 명절이 참 좋구나! 창 너머 보이는, 마른 나뭇가지를 오가며 까옥거리는 까치가 평화롭다.     

 천호 애견카페 하울링 2015년 을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