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징 (루카 11,29-32)

2015. 2. 25. 오전 7:41:22

글자

 

<사순 제1주간 수요일>(2015. 2. 25. 수)(루카 11,29-32)

 

 미켈란젤로의 요나 , Michelangelo Buonarroti, Jonah, 1511, Fresco, 400x380cm

 

니네베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요나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즉시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회개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하느님의 재앙을 모면한다(요나 3,1-10). 자기들이 경탄할 만한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개탄하신다. “악한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표징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루카 11,29).     

 

  

 

몸이 아프다는 것은 치유를 요구하는 생체의 반응이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위험 상태도 감지할 수 없다.

가정이나 공동체 생활에서 심기가 불편한 것은 삶의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신호다. 시대의 이상 징후는 사회적 건강성을 성찰케 한다.
우리 삶의 주변에는 사라지거나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적지 않다. 점심 도시락,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 주는 풍경, 대가족제, 어머니와 대한민국 아주머니의 힘 등이 사라졌고, 가족은 있어도 가정이 없다.
 노동과 상부상조, 예의염치, 의협심, 마을, 가내 수공업도 사라져 버렸다. 공동체가 해체되었다는 징표들이다.

그러나 쓸모없고 나쁜 것들은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 늘어나는 암 진단과 중환자실, 자격증, 명품 브랜드, 전자 기기, 외식, 퇴폐업소, 게임, 복권, 중독증, 이혼, 우울증, 핵 발전소 ……. 과학 기술과 금융 자본주의가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들이다.
종말론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는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가? 타락한 니네베의 도시에서 회개를 외친 요나 예언자가 구원의 징표가 되었듯이, 인간성과 영성이 한없이 추락하는 흉측한 소비문화의 도시에서 교회는 다가오는 종말의 날과 새날의 빛, 죽음과 생명 가운데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고 외치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가 되어야 한다.
기술 문명과 소비문화의 혜택에서 스스로 물러나 바위가 있는 겟세마니 언덕으로 가야 한다.

불편한 생활, 고행과 극기의 삶이 우리 시대를 치유하는 유일한 성사다. ‘우리가 보여 줄 것은 성체성사의 기적밖에 없다.

’ 예수님께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하시고는 다음 날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바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그리스도화 하는 성체성사(2)

살아있음이 기적이다    반영억라파엘 신부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있고 그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으면 여한이 없을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루고 나면 언제 그랬는가 싶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한번 깨우침을 얻었다든지 소망을 이루었으면 그 감사함을 오래도록 지켜야 하는데 마음 같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릅니다.” 한결같은 마음을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그들이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기적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11,29). 하고 말씀하시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천둥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표징을 보여줘도 마음을 닫아건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옛 말을 생각해 봅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딴 곳에만 마음을 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군중들이 그랬습니다. 참된 신앙과 회개에는 무관심한 채 표징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통하여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고, 당신의 권능을 일깨워 주심으로써 새 삶으로 인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만 육체적인 치유와 기적이 최고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표징을 일으킬 수가 없으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참례를 하여 성체를 모시면서도 예수님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기 보다는 이상한 현상이나 신비로운 표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우리를 위한 생명의 양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표징중의 표징이요, 기적중의 기적이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두를 주시지만 우리는 그저 밀떡하나 받아먹는 것으로 만족하니 주님의 역사하심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으로 준비하지 않은 나를 보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요구하기에 급급해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더 큰 것을 바라기에 앞서 지금 내가 주님 앞에 서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기적은 내가 지금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많은 실수와 잘못, 허물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이기는 자비에 힘입어 이렇게 살아있음이 사랑이신 주님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쫓기보다 내 삶의 자리를 표징의 자리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을 영성체를 통해 모실 수 있음을 기뻐하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한 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빵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양식이 되신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성경속인물] 구약성경인물 요나의 기적 

<요나의 표징>     송영진 모세 신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사람들은 예수님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했습니다(루카 11,16).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라는 말씀은 믿으려고 하지도 않고 회개하려고 하지도 않고, 표징만 요구하는 것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악한' 태도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믿고 싶어서 표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서 요구했고, 그것은 사실상 회개를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악한' 태도입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난 일을 가리키고, 이것은 다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요나 예언자처럼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겠다."가 아니고, "내가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을 보면 너희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믿게 될 것이다."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나를 믿으면 나의 부활을 보게 될 것이고,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이고,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표징도 보여 줄 수 없다고 거절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전서에서 이 내용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1코린 1,22-23)."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안 믿겠다는 태도입니다.

지혜를 찾는 것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학문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납득이 되지 않으면 안 믿겠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믿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표징을 보여주어도 안 믿고,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안 믿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도 안 믿었습니다. (부활 자체를 안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부활 자체를 안 믿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관한 복음 자체를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표징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지혜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으려는 마음 없이 표징만 찾고 지혜만 추구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것을 의심하기만 하는 태도이고, 그런 사람은 표징을 보아도 의심하고, 진리를 들려주어도 의심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데려가서 그 나라를 직접 보여주어도 의심할 것입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루카 11,30)."

이 말씀은,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이 구원의 길인지 알려 준 표지판 같은 존재였다. 나도 너희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는 표지판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요나가 선포한 하느님 말씀을 니네베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나를 믿고 내 복음을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만일에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믿지 않아서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멸망했을 것이다. 너희도 나를 믿지 않아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멸망할 것이다."입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

이 말씀은 니네베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니네베 사람들과 정반대의 운명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낯선 외국인 예언자의 말만 듣고서도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쪽에 서게 될 것이고, 요나보다 더 큰(위대한) 분이신 메시아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이 세대 사람들은 단죄 받는 쪽에 서게 될 것이고... (여기서 '이 세대' 라는 말은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는 말씀은, 이 세대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것은 죄라고 증언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안 믿는(또는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한 번 믿고, 한 번 회개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바로 믿음과 회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니네베 사람들도 포함해서)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방심해도 안 되고, 자만해도 안 되고, 믿으려는 노력과 회개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날마다 계속해야 합니다.

틴토레토의 고래의 배에 남겨진 요나 ,

Tintoretto, Jonah Leaves the Whale's Belly, 1577-78, Oil on canvas, 265x370cm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요나 3,4-5)

니네베는 환락의 도시입니다.
그 누가 봐도
탄탄한 경제력과 능력을 지닌 그런 도시였고
그래서 그런 도시가
패망할 거라고는  믿기 쉽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네베가 무너질 거라고 외쳐야 하지만
니네베 사람들이 콧방귀나 뀔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모두가 그 말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든 가난한자든 심지어 임금까지 믿고 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남들이 황당하게 잘 되거라는 소리는 믿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누군가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허황된 소리는 무시하고
회개하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오상선바오로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