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목요일>(2015. 2. 26. 목)(마태 7,7-12)

에스테르는 누명을 벗을 길 없는 억울함 앞에서 주님께 간절히 의탁한다.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제1독서에스테르 4,17(12).17(14)-17(16).17(23)-17(25)).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주듯이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시며, 하느님께서 지니신 부모의 사랑과 자비로운 마음을 보여 주신다(마태오복음 7,7-12)
[복음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오복음 7,7-12)
[오늘의묵상]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나라 아기의 7.3%가 선천성 기형아로 태어나는데, 이는 6년 전에 비해 2.4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일곱 살까지 본다면 아토피와 자폐,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다운 증후군, 틱, 저능 등은 전체 30%에 육박한다. 아동들의 생리가 점점 빨라지고 키도 커진다. 신혼부부 열 쌍 중 한 쌍꼴로 불임을 호소하고 있다. 몸의 재앙이다.
고기와 빵, 과자와 콜라 같은 탄산음료까지 모든 식품을 추적하면 놀랍게도 옥수수, 콩, 밀 3대 작물이 원료임을 알게 된다. 농부 한 명이 수십만 평의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제초제를 견뎌 내는 ‘유전자 변형 작물’(GMO) 콩과 옥수수 개량종을 만들었다.
그것이 식용유 따위의 식자재로 방부제가 첨가되어 유통되며, 축산 사료가 되어 성장 촉진제와 항생제와 함께 소·돼지·닭 고기, 우유로 전 세계에 공급된다. 학교 급식에는 늘 튀김이 오르고, 과자와 음료를 입에 달고 살며, 치킨과 맥주를 이른바 ‘치맥’이라 부르며 신이 내린 음식이라 한다. ‘아이에게 과자 한 봉지를 주기보다는 담배 한 대를 피우게 하는 것이 덜 해로울 것이다.’
전자레인지 또한 분자 구조를 충돌케 하는 원리로서 아주 나쁜 도구다. 여러 번의 변조 과정으로 식탁에 오른 음식은 체내에 ‘환경 호르몬’(내분비 교란 물질)으로 작용하는 것이니, 암과 기형성 질환이 없을 수 없다.
지난 6월의 국제 연합(유엔) 총회의 기조연설에서는 ‘정크 푸드’(즉석식품)도 담배처럼 규제하자고 했다. 결혼을 앞둔 이들은 몸의 섭생 정화 기간을 가질 일이다. 아기가 무슨 죄가 있는가? 부모가 진정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에게 어떻게 독이 든 음식을 주고 전갈과 뱀을 먹으라고 할 수 있는가? 영원한 구원을 얻기 전에 깨끗한 음식부터 구하라!
<황금률> 송영진 모세 신부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이 말씀은 신앙생활의 기본 정신에 관한 가르침이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의 대원칙이어서 황금처럼 귀하다는 뜻으로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하느님께 해 드려라." 하느님께 뭔가를 달라는 말만 하지 말고, 하느님께 뭔가를 드리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칠 줄은 모르고, 하느님으로부터 받기만을 바라는 신앙은 이기적이고 미신적인 기복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뭔가를 드린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더 부유해지시는 것도 아니고, 안 드린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궁핍해지시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께 뭔가를 드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더 잘 받기 위한 노력입니다.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예가 바로 솔로몬이 성전 건축 후에 바친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완공된 다음에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자신과 이스라엘 왕국과 백성들을 보살펴 달라는 기도를 바칩니다(1열왕 8장). 솔로몬의 기도는, 성전 건축은 겉으로는 하느님께 집을 지어 드린 일이지만, 사실은 인간들을 위한 집을 지은 일이었음을 잘 나타내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뭔가를 달라는 말만 하지 말고 하느님께 뭔가를 드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더 잘 받으려면 먼저 잘 바쳐야 한다."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또 "하느님은 우리가 바치는 것을 보시고 그것에 비례해서 복을 내리시는 분이다." 로 오해해도 안 됩니다.우리가 하느님께 뭔가를 바치는 것은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거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채'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뭔가를 바치지 못해도, 또는 바치기도 전에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은총을 주시는 분입니다. '황금률'을 하느님 쪽에서 생각하면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당신께 해 주기를 바라시는 그대로 이미 너희에게 해 주셨다."
우리는 하느님께 뭔가를 청하기 전에, 이미 주신 은총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청원 기도를 바치기 전에 먼저 감사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그대로 '이웃 사랑'에도 적용됩니다. '이웃 사랑'에 적용하는 경우에 '황금률'을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네가 받기를 바라는 그것을 이웃이 너에게 해 주지 않더라도 너는 그대로 이웃에게 '먼저' 해 주어라." '황금률'은 이웃에게서 받아내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이웃에게 주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는 너에게 사랑을 주었는데 너는 왜 나에게 사랑을 안 주는가?" 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또는 "내가 너에게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 주어야 한다."고 요구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조건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주는 것입니다. 준만큼 받아내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황금률'의 '바라는 그대로' 라는 말은 준만큼 그대로 받기를 원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고, 내놓으라고 요구해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런데 베풀지는 않고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인간 세상의 실제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다가 지칠 때도 있고, 실망할 때도 있고, 서운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베푸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어서 받을 줄만 알고 보답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 밭에 '사랑'이라는 씨를 심는 심정으로 그에게 사랑을 주면 됩니다. 그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됩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 탓입니다. (아예 씨를 안 뿌린다면, 그것은 뿌리지 않은 우리 탓이고.)
또 보답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뭔가를 베푼 것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대신 보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4)."
주는 입장이 아니라 받는 입장에서 '황금률'을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이 너에게 사랑을 주었으니 적어도 그만큼은 너도 그대로 이웃에게 주어라.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줄 수 있다면 더 좋고." 나에게 사랑을 준 이웃과 내가 사랑을 주는 이웃이 같은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랑이 좀 더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이 가면 됩니다.
우리는 '이웃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베푸는 일만 생각할 때가 많은데, 자기가 받은(받고 있는) 사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간에...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황금률'의 실천이 시작됩니다.
가장 강력한 힘 반영억신부
“기도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도 양보하시는 힘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특권입니다.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그 자녀의 필요와 염려에 관심을 나타내실 수 있는 길이고, 주 하느님나라의 창고는 기도로 열리며 믿음은 그 열쇠를 돌리는 것입니다.”(작자미상)
그런데 기도의 응답은 때때로 즉각 이루어 주십니다. 가르멜 산위에서 기도한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곧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천천히 적당한 때에 이루어주시기도 합니다.
다윗왕은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지만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케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이루어주지 않음으로 응답이 되게 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들어주어서 손해가 될 것은 들어주지 않음으로 해서 유익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큰 사랑으로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7,8) 라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바람이 많이 있겠지만 세속적인 만족과 위로를 찾고 구하기보다 먼저 하느님을 찾고 갈망하여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청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욕정을 채우려는데 쓰려고 청하기 때문(야고4,3)이라고 하였으니 헛된 수고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열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울지 않는 아이는 젖도 못 얻어먹는다.”고 했습니다. 먼저 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울 자리보고 발 뻗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들어주실 것을 청하십시오.
사실 문이라는 것은 열릴 때 열리고, 닫을 때는 닫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열고, 악에는 닫아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는 물론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와 명예, 명성의 유혹에는 문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열고 욕심의 입은 닫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고 따라서 우리는 받을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구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고마운 응답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되 내 뜻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길 바라야 하겠습니다.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알아채는 것이 기도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7,1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좋은 의향을 가지고 마음껏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반복해서 청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그분의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것입니다.”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우리의 바람과 기도가 헛되지 않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받을 때,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주님과 더불어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고, 하루를 닫는 자물쇠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복음화 학교는 지난 25년 동안 같은 건물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건물 주인이 올해 10월까지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복음화 학교로 사용될 장소를 청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남산 쪽에 건물이 하나 나왔습니다. 명동에서는 조금 멀어지지만 그 건물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매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 건물을 매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길을 우리에게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가톨릭 회관에 강의실과 사무실을 임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화빌딩의 시대를 넘어서 복음화 학교 설립 25년을 맞이해서 새로이 명동 가톨릭회관의 시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봉사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물의 결정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서 변한다고 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감사해, 잘 될 거야, 너를 믿는다, 너를 지켜 줄께‘라는 말을 하면 물의 결정이 아름답게 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워, 죽일 거야, 나쁜 놈, 싫어, 넌 왜 그러니‘와 같은 말을 하면 물의 결정이 심하게 찌그러진다고 합니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물의 결정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하느님께서 못 하실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제1독서는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에스테르 왕비의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스테르 왕비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디언들의 기도는 꼭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디언들은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기우제’를 드릴 때도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린다고 합니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안동의 어느 공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소회장님은 그 마을에 신부님이 오시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우연히 주교님께서 그 마을에 오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새벽에 일어나 신부님이 오시기를 청하는 공소회장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교구청으로 돌아가셔서 다음 인사이동 때 그 공소에 신부님을 파견해 주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이제는 공소회장이 다른 기도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소회장이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 공소에 신부님께서 오셨으니 예쁜 성당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또 몇 년을 기도하는데 서울의 독지가들이 기금을 마련해 주셔서 예쁘고 아담한 성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공소회장님의 기도 방법도 인디언들의 기도와 같았습니다.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배를 생각합니다.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하고 싶을 때 노를 젓는다면 배는 험한 파도를 뚫고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배는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난파할지도 모릅니다. 파도가 거셀수록 함께 힘을 모아 같은 방향으로 호흡을 맞추어서 노를 저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두드리고, 찾고, 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이가 되어주는 헌신과 봉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믿음입니다.
“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고, 하루를 닫는 자물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주님, 제가 부르짖던 날, 주님께서는 제게 응답하셨나이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마태 7,7)
여러분은 청할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청하십시오. 분명히 주실 겁니다.
그런데 잠깐!
내가 무엇을, 왜 청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나서 청하십시오.
아버지는 자식에게 좋고 유익한 것만 주시지
나쁘고 해가 되는 것은 주시지 않을테니까요.
찾을 것이 있으면 찾으십시오.
분명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무엇 때문에 찾고자 하시는지요?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열릴 것입니다.
자다가 남의 봉창문을 두드리진 말고
어려운 이웃의 문을 두드리고 구원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무엇보다 나에게 청하고, 나에게서 구하고,
나의 문을 두드리는 이웃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렇게 하는만큼 나도 받게 될 테니까요.
오늘 여러분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일이
풍성한 축복으로 그대로 이루어지길 빕니다.
아멘.
오상선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