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토요일>(2015. 2. 28. 토)(마태 5,43-48)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한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제1독서신명기 26,16-19). 율법에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신다. 혈육의 정과 민족애를 넘어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복음마태오 5,43-48 ).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5,43-48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하느님의 유전자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가장 닮는 순간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이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능력이 있다.
인간의 사랑이란 혈육 간이 가장 가깝고 원수 간이 가장 멀지만 하느님의 사랑에는 거리도 경계도 장벽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땅과 하늘, 빛과 공기와 물을 주셨다. 그래서 하늘의 별, 땅의 꽃, 사람의 사랑 …… 이 모두가 아름답지 않던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렸을까? ‘자연, 나, 너, 그리고 하느님’으로 엮어진 큰 세계가 하나의 존재임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유전자를 가진 존재는 모두 하나의 몸이고 ‘공동체’(한가지 共, 한가지 同, 몸 體)이다. 사람은 공동체의 틈새에서 생겨났고 살아간다. 평생 쌀 한 주먹도 생산해 본적이 없지만 굶지 않고 살아온 것이 그 증거다.
이를 ‘공동체 세계관’ 또는 ‘공동체 영성’이라 한다. 공동체 세계에는 완전하신 분과 그분의 사랑이 있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은 하느님의 사랑과 합일되는 것이며, 그를 위해 내 안의 작은 사랑을 확장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수행이다.
공동체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미움이고 시기다. 그것이 단절이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공동체로 살고자 하는 이유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이며,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께 합일되는 길이다. ‘주님, 저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저희에게도 사랑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소서. 아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복음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3-48)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하느님의 '완전함'에 도달하는 일이고, 그것이 사랑의 궁극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 말씀은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하느님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5)."
자녀로 완성되려면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자비가 바로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인간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은(마태 5,46), 또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하는 것은(마태 5,47) '불완전한 사랑'인데, 사실은 하느님의 기준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그런 일은 죄인들도 하는 일이고,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하는 일이기 때문에(마태 5,46-47), 사실상 사랑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려면 이웃도 사랑해야 하고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 아예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완전한 사랑' 안에서는 이웃과 원수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형제이고, 이웃입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입니다. 사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사랑의 불완전함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44). 이 말씀은, "박해자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여라."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라고 기도하심으로써 박해자들을 위한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인데, 박해자들도 '모든 사람' 속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박해자들도 구원받기를 바라신 기도입니다. (그 박해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은 그들 자신들의 숙제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입으로는 그렇게 기도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박해자들이 천벌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거짓 사랑이고 거짓 기도입니다. 그래서 박해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증오심과 복수심을 없애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어떤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억울한 심정, 원한, 증오심, 복수심, 분노 등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원수를 사랑하는 행동 자체는 쉬울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평화를 되찾는 일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특별한 비결 같은 것이 있는가? 무슨 비결 같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일 자체가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노력을 해서 먼저 마음의 평화를 회복한 다음에 원수를 사랑하게 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은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고, 이것은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한 노력도 됩니다.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완성되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만일에 원한과 분노와 증오심과 복수심 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완전한 사랑도, 완전한 평화도, 완전한 행복도 이루어지지 않고, 그런 곳이 하늘나라일 수는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원한과 미움이 하나도 없는 곳, 완전한 용서가 이루어진 곳, 그래서 증오심이나 복수심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순교자 스테파노와 박해자 바오로가 형제가 되어서 함께 사는 곳입니다. 스테파노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어떤 감정이 남아 있을까? 순교하기 전에 이미 박해자들을 용서했으니(사도 7,60)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는 나중에 스테파노를 만났을 때 많이 미안해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아직은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금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거나 열등감에 빠지면 안 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우리도 완전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이 약이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홍문택 신부님의 ‘사람을 상대할게 아니랍니다’라는 글입니다.
“누가 당신을 모함합니까? 누가 당신을 두고 빈정거립니까?
누가 당신을 험담하고 다닙니까? 누가 사사건건 당신을 반대합니까?
누가 당신을 미워합니까?
그래서 얼마나 속이 상하십니까? 얼마나 분하십니까?
얼마나 야속하십니까? 얼마나 그가 밉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미워하시는 사람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당신이 싸울 상대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 싸울 상대는 그 사람 안에 있는 악(惡)의 세력입니다.
그러니 그가 상대가 아닌 만큼 그를 미워하거나
그에 대한 미움과 실망을 부질없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싸움 상대가 악의 세력인 만큼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생각하십시오.
악을 이기는 방법은 오로지 완전한 선(善)입니다.
오로지 완전한 사랑입니다. 오로지 진실뿐입니다.
그리고 철저히 자제된 침묵입니다. 그렇게 싸워야 이길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긴 예수님의 방법이 바로 그 방법이었답니다.
절대, 당신을 비난하고 욕하며 미워하는 사람과 상대하여 싸우지 마십시오.
그건 적을 모르고 싸우는 꼴입니다. 싸움을 부추긴 장본인은 멀쩡히 놔두고 엉뚱하게 딴 사람과 아웅다웅하는 꼴이 되는 셈입니다.”
미운 사람을 용서하기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용서를 넘어 사랑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먼저 길을 알려주셨기에 믿고 따르면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5,44-4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원수를 골라서 사랑하라는 말씀도, 원수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가리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만난 억울한 일들을 그저 ‘억울함’으로 안고 살면 그것은 억울한 채로 남아서 슬픈 인생을 만들어 냅니다.”따라서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행복해야 하겠습니다.
‘돼지는 열 받으면 바비큐’가 된답니다. ‘사람은 열 받으면 쓰러집니다.’ 그리되면 누가 손해입니까? 마음에 화를 담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멘틱한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커다란 맛을 느끼는데 있지 않고 매사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한가할 수 없고 한가로운 사랑은 벌서 잘못되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참된 “사랑에 불타는 영혼은 조금도 피로하지 않고 또 남을 피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십자가의 성요한). 따라서 십자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사랑,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에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 밖에 난 사람에게도 마음을 두어야 하고 허물을 안고 있는 상대방을 보면서 바로 나의 숨겨진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상처를 입힌 미운 사람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의 모습이 곧 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안에도 어둠이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든지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 그는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는 결국 나를 올곧게 살아가게 하는 빛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감사해야 하고 한편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의 허물은 그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에 한 순간 이용당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사람과 마주치게 될 때 오히려 내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확인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는 시발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움에는 세월이 약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약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결코 자만하지 마십시오. 방심하면 한 순간에 어둠의 세력에 지배당하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사람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불완전한 것이 사람이죠.
하느님 한분만이 완전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보고 하느님처럼 완전한 자가 되라고 하시네요.
불완전자에 머물지 말고 완전자로 나아가라시네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하느님의 완전성은 차별없이 공명정대하다는데 있다네요.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두드러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폭이 좁아질수록 불완전한 사람으로 남게 되고
모든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차별없이 한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완전하게 변해간다는군요.
태어날 때 하느님의 모습과 비슷하게 태어난 여러분은
세상사와 관계에 상처를 입으며 원래의 그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죠.
이제 다시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돌아갑시다.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그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하느님의 자녀요 나의 형제자매라고 바라보면 됩니다.
하느님 모습 많이 닮은 여러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