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 (마태 5,17-19)

2013. 3. 6. 오전 6:15:36

글자

2013년 3월 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말씀의 초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켜야 할 규정과 법규들을 가르쳐 주며, 이를 마음에 간직하고, 후손들에게도 알려 주도록 명한다. 규정과 법규를 지키는 사람은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정의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구약의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음을 밝히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은 완전한 사랑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에 이릅니다.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십계명이 되고, 다시 더 줄이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이 됩니다. 만일 이것도 더 줄여서 한 단어로 말한다면 ‘사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율법을 한 자 한 획도 폐지하지 않고 완성하신 것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어 ‘사랑 자체’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들이 녹아들어 가 ‘하나’가 되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삶도 모든 목적과 의미가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어떤 지식도, 온몸을 바치는 희생도, 심지어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까지도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1코린 13,1 참조). 우리 인생이 텅빈 껍데기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훗날 우리가 그분 앞에 갔을 때, 주님께서 질문을 많이 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어떤 업적을 쌓았느냐?” 아니면, “세상에 사는 동안 얼마나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이 없었느냐?” 등과 같은, 구구한 질문은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너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 하는 물음만 던지실 것 같습니다.
‘율법의 완성’이라는 복음 말씀은 곧 ‘사랑의 완성’입니다. 우리 삶이 완성되는 최종 목적지는 바로 ‘사랑에 이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 존재 자체가 온통 ‘사랑’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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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몸은 움직여도 마음은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동과 감격이 있어야 몸과 마음도 ‘함께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규칙과 법규가 많은 조직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자율과 투명성이 앞서야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 됩니다.
율법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율법은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님을 천명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율법에 매달리는 행위를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매달리면 폐쇄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찌 율법뿐일는지요? 무엇이든 거기에 ‘목을 매고’ 살아가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하느님을 위한 계율이고, 사람을 위한 계명입니다. 이것을 망각했기에 엉뚱한 방향으로 갔습니다. 유다인 역시 몰랐기에 율법을 ‘글자 그대로만’ 지키려 했습니다.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본 셈입니다. 어떤 법이든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사람을 법에 ‘옭아맨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조직이든 단체든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은 언제나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단체에 가입했는데, 그 안에서 ‘상처를 받는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더구나 규칙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고 있다면 바리사이의 조직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십니다. 거짓 율법참된 율법을 구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율법은 인간이 만든 것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처럼 꾸며 놓은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을 옭아매고 못살게 굽니다.
그렇지만 참된 율법은 해방과 자유를 줍니다. 기쁨과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소극적인 율법 준수를 적극적인 실천으로 바꾸라는 것이 말씀의 의도입니다. 하지 말라는 율법을 하라는 계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일상사에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너무 많습니다. 그 많은 금지 사항이 있음에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1서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천사의 언어를 말하고 예언의 능력을 지니며 재산의 전부를 나누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장 참조).
그러니 사랑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하는 사랑입니다. 자녀들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라는 말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됩니다. 사랑을 받아들이면 아이들은 금방 환하게 바뀝니다.

 


 

 양승국신부-

 <밭을 일구면서>

 밭을 일구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멀리서,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는 조금도 보이지 않더니,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니 그 안에 얼마나 ‘작은 것들’ ‘소중한 생명’들이 숨어있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물웅덩이에는 벌써 뭔지 모를 작은 알들이 우글우글 거립니다. 적당히 부드러워진 땅 속에는 새끼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댑니다. 이웃 밭과의 경계선으로 심어놓은 나무 가지 마다에는 수많은 작은 꽃들이 보송보송 매달립니다. 바닥에는 아주 작은 노란 풀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오릅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 ‘작은 것’들의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만 타고 다닐 때는, 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보지 못할 눈부신 광경입니다.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개발 논리, 속도전에 젖어 살아와서 그런지 너무 큰 것, 빠른 것, 대단한 것, 뛰어난 것, 앞서 가는 것만 선호합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것, 평범한 것, 소박한 것, 가족적인 것,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과 가치는 어느 새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신앙생활 안에도 많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 안에서도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다닙니다. 특별한 분위기만 선호합니다. 말씀 좋고 ‘기도빨’ 세다는 곳만 순례합니다.

 요즘 몇 군데 사순특강을 다니면서 단단히 느끼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본당 안에서 특강은 한 번씩 분위기를 바꿔주는 외식이나 간식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명강사라 할지라도 반짝 한번 왔다 가는 것입니다. 특강 한번 듣는다고 뭐가 특별히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 간식이나 외식이 아닌 주식은 본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매일의 미사입니다. 매일의 간단한 아침 저녁기도, 이것 역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하루 세 번 간단히 바칠 수 있는 삼종기도, 하루 기본으로 한번 정도는 바치는 묵주기도, 수시로 바치는 화살기도, 매일의 꾸준한 작은 봉헌, 일상적인 십가가의 수용, 이런 것들이 사실 신앙의 기본이자 근간입니다.

 여기 저기 특별한 곳, 대단한 곳, 신기한 곳, 줄기차게 찾아다녀봐야 그 끝은 언제나 허탈함이며 공허함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작은 것, 일상적인 것들을 중요시여기고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큰 것, 대단한 것도 중요시 여기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것, 반복적인 것, 구체적인 것,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충실하게 해나가야겠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 큰 사람, 대단한 사람들도 잘 대우하고 환대하지만 내 가장 가까운 가족, 형제, 이웃, 직장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작고 소소한 일상들에도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는 이

-이병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율법만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의 갈등 구조 안에 핵심은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망각했던 율법의 근본정신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망각한 채 사람들을 비판하고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데 급급했던 율법 학자들을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라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이십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데에만, 즉 계명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한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에 급급하고, 미사에 급급한 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로서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 주신 사랑을 ‘너’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근본이고, 
이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먼저 지키고 가르쳐라 

반영억라파엘신부

시골 본당 신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성당으로 가고 있는데 앞에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왕복 1차선 길에서 얼마나 천천히 가던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추월해서는 안 되는 곳이지만 속도를 내어 추월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면허증을 주면서 죄송합니다.하였더니 그분이 신부님이시네요! 바쁘신가 보죠? 하였습니다. 속이 상해서 제가 잘못하였으니 딱지나 끊으시지요! 말했더니 그냥 가십시오. 다음부터는 천천히 다니십시오. 하며 친절하게 보내주었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지역 관할 경찰간부 소양교육에 제가 강사로 초빙된 날입니다. 경찰서장을 비롯하여 70여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전날의 일을 서두로 꺼냈습니다. 제가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보내주셔서 부끄러움이 더 컸습니다. 정말 좋은 말을 하기는 쉽지만 말 한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제가 잘못을 범하거든 앞으로는 꼭 벌점을 주십시오! 한바탕 웃고 나서야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대로 행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 정신을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계명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계명 준수만으로는 율법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도 법이니까 지킨다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안전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생명을 지키는 차원에서 지킨다면 그것은 큰 사랑의 행위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만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챙기는 모범을 보여야겠습니다. 어떤 모임을 가보면 과속을 한 것이나 음주운전을 한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과연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결정한 것은 미루지 말고 그분의 뜻대로 실천하시고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에페6,6). 여러분은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그리하여 율법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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