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가 6,36-38)

2013. 2. 25. 오전 7:29:32

글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가 6,36-38)


말씀의 초대

다니엘은 자신의 백성이 하느님께 불충실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간청한다. 그는 용서를 베푸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자신들의 모든 악행과 죄를 낱낱이 고백한다(제1독서). 우리는 남에게 해 준 그대로 되돌려 받는다. 우리가 남을 단죄하면 우리도 단죄를 받고, 우리가 후하게 남에게 베풀면, 주님께서 흔들어서 넘치도록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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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양포(楊布)가 외출할 때는 흰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맞아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는데, 양포의 개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짖어 대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개를 때리려 했더니, 형 양주(楊朱)가 “네 개가 나갈 때는 흰옷을 입고 나갔다가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온다면 너 역시 괴상하게 여기지 않겠느냐?” 하고 나무랐습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양포지구(楊布之狗)의 뜻풀이입니다. 곧, 겉모습을 보고 속까지 판단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주로 쓰는 고사성어입니다. 사람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의 마음도 하얀 것이 아니고, 검은 옷을 입었다고 속까지 검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했듯이, 사람이란 그 자체로 이렇게 신비로워서 그 마음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자신마저도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감히 누구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약한 사람은 있어도, 악한 사람은 없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편해질 것입니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 심지어 범죄자들까지도 그 사람이 악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약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악의 세력이 인간의 나약함을 타고 들어와 일을 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 안에 선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악은 힘을 잃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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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엄청난 말씀입니다. 주고 베풀어도 모두 ‘돌아올’ 것이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실천은 희박합니다. 쉽게 베풀려 하지 않습니다. 많이 따지고, 틈이 생기면 그 일에서 빠지려 듭니다. 복음 말씀은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받으려고 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고 되받는 체험을 ‘실천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이 돌아옵니다. 웃으면 분위기도 밝아집니다. 하지만 거친 말은 ‘거친 분위기’를 만들고, 분노는 분노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아는 데’ 그치지 말고 삶의 자세를 바꾸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말씀이지만, 실천이 어려운 것은 예사롭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무관한’ 사람에게도 쉽게 비판의 화살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별생각 없이 말하더라도, 듣는 이의 영혼에는 화살이 꽂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예스맨’이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지요. 심판과 단죄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되돌아옵니다. 올바르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에 상처를 남깁니다. ‘부메랑’은 목표물에 명중해야만 되돌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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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말썽 없이 나누려면 쪼갠 뒤에 먼저 골라잡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게 보이는 쪽을 가져가게 하는 것이지요. 어찌 빵뿐이겠습니까? 많은 부분에서 선택권을 양보하면 불만이 적어집니다. 불만이 생기더라도 쉽게 해소됩니다. 그러므로 약자에게 선택권을 배려하는 이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일도 양보하라는 말씀입니다.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심판을 서둘러 하는지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가 먼저 ‘감정을 섞고’ 언행을 높입니다. 별일도 아닌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여 분위기를 흐립니다. 때로는 침소봉대하며 떠벌립니다. 모두가 내 삶에 ‘어두운 기운’을 불어넣는 행위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을 만드는 것이지요. 먼저 양보했더라면 피해 갈 수 있었던 ‘업’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잠든 영혼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실천에 옮긴다면 매일매일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말씀입니다. 늘 부딪치는 관계를 새삼스레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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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어느 빵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인은 신선한 빵을 구우려고 버터를 매일 아침마다 직접 농부에게서 배달받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버터가 정량에 모자라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저울에 달아 보니 역시 버터의 양이 부족하였습니다.
주인은 매우 화가 나서 자신을 속인 농부를 고소했고, 농부는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뒤집어쓰고 망신을 당한 쪽은 농부가 아닌 빵집 주인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농부에게는 젖소 몇 마리는 있었지만 너무 가난하여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농부는 배달할 버터의 양을 정하는 데 매일 자신이 납품하는 빵집에서 갖다 먹는 빵의 무게를 기준으로 버터를 잘랐던 것입니다. 결국 빵집 주인의 얄팍한 상술과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판단한 마음이 오히려 자신을 판단받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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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을 비판하거나 단죄하고 싶을 때 먼저 우리 자신의 비판받고 단죄받을 행동들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고 그것을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 비로소 이웃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감정은 관용으로 바뀔 것입니다.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반영억신부
짧은 여정이었지만 파티마, 아빌라, 산띠아고, 로욜라, 루르드, 파리의 노틀담 성당, 몽마르트 언덕 예수성심대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믿음의 삶에 고통과 은혜는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며 견디어내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천상의 기쁨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감당합니다. 주님께서는 맑고 깨끗한 겸손함을 지닌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세례로 축성된 정화된 마음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성직자의 어려운 점을 농담 삼아 얘기합니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면 “너무 직선적이야”하고 지적하지 않으면“너무 타협을 하는구만!”하고 말합니다. 강론을 할 때 원고를 보고 하면,“너무 딱딱하고 재미없어”하고 원고 없이 하면,“왠지 깊이가 없는 것 같애”하고 말합니다. 여러 예화를 들면 “성경말씀은 도대체 하질 않는구만!”하고 예화를 안 하면“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면 “인기 끌려고 그러는구만!”하며 부자와 가까이 하면 “돈 있는 사람만 좋아하고 너무 귀족적이야!”하고 말합니다. 이래저래 한 소리 들으니 성직자가 고집스러워지나 봅니다. 

누구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자기의 역할에 관계없이 좋아라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꾸중을 듣는다든지 비판을 받게 된다면 아무래도 기분이 상하며 마음에 화를 쌓게 됩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바른 인생길 알려는 사람은 훈계를 달갑게 받고 미련한 사람은 책망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잠언12,1) 상대의 비판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운 충고로 그를 구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받기 위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얼마나 넓고 깊은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국 그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주시지만 담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혜택을 입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비는 이웃을 비판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교부 푀멘은“비판과 험담의 주제에 있어서는 그것들을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고 마음속에서 파헤칠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마음속에서 확실하게 분별하고자 하더라도 그것이 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판과 험담하는 입은 스스로 멸망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누구에게 충고를 하려거든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충고해서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부터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충고를 하느님의 소리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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