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1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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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오 7,7-12) |
말씀의 초대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한다. 궁중 옷을 벗고 화려한 장식들을 떼어 낸 뒤 재를 몸에 뿌렸다. 그러고는 고뇌와 슬픔으로 주님께 기도했다. 자신과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청하는 기도였다(제1독서). 간절한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주신다. 많은 이들은 문을 두드리다가 중간에 그만둔다. 인내의 부족이다. 부모는 자식의 애원을 모른 체하지 않는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청원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인내심을 갖고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복음).
오늘의 묵상
게으른 아들을 둔 부모가 있었습니다. 고생하며 재산을 모았건만 아들은 일을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께 말합니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재산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답합니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전에는 재산을 주지 않을 작정이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을 주며, 아버지께는 ‘일해서 번 돈’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며칠 후 아들이 나타납니다. “아버지, 제가 일해서 번 돈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없이 화로 속에 던져 버립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깜짝 놀랐지만 말을 못합니다.
얼마 뒤 아들은 어머니의 돈으로 또다시 말합니다. “제가 일해서 번 돈입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불 속에 던져 버립니다. 그제야 어머니는 남편을 이해하고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네 힘으로 돈을 벌어 오너라. 미안하구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아들은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고는 험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아들은 어렵게 번 돈을 아버지 앞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화로 속에 던져 버립니다. 아들은 깜짝 놀라며 뜨거운 화로 속에 손을 넣어 돈을 꺼냅니다. “아버지 너무하십니다. 이 돈을 버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아들의 눈물에 아버지는 손을 잡고 말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정 내 아들을 찾은 것 같구나!”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격을 갖추면 반드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니 언제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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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계시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잘되기만을 바라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필요한 것과 구하는 것을 결코 모른 체하지 않으시며, 자녀들이 미처 구하지 못하는 은총도 내려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아무리 미천한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한이 없는데, 하물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모른 척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하느님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거나 하느님께서 고통만 안겨 주실 뿐 돌보아 주지 않으신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게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손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황금률
-김훈일 신부-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하고, 칭찬받기를 원하고, 선물 받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얼마나 받을지를 염려하지 말고, 얼마나 줄 수 있는지를 염려하라고 하십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그 사람의 처지에 서라는 것이 황금률입니다. 그들의 고충과, 그들의 실망과,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슬픔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황금률입니다.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고, 그리고 자신과 그들의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한 다음, 자신이 그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그들에게 행하라. 바로 이것이 황금률입니다. 황금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은총을 적게 받은 사람들에게 빚을 진 처지에 있다는 것도 황금률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장 14절에서 그리스인이나 비그리스인이나 지혜로운 이들이나 어리석은 이들이나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죄와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재산이 많아서 안락한 생활을 살고 있다면,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황금률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청하여라(마태 7,7-11)
-유광수 신부-
기도는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아버지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자녀로서 청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무엇을 주시고자 하시는지를 알고 그것을 나도 청하는 것이고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억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도록 하느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고 하느님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내가 청해야 하는 것은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것을 청하는 것이고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청하고 바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에페3, 20)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청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는 말은 명령어이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가 18,1)고 말씀하셨듯이 계속해서 청해야한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지 않으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각자 가지가 청한 것만큰 은혜를 받을 것이다. 청한다는 것은 우리의 원의를 넓힌다는 것이요, 하느님의 원의가 나의 원의가 되게 하는 것이요, 영성생활은 하느님의 원의를 나의 원의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청해야하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원의를 막거나 꺼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의 원의가 무한대로 넓어지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된다.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처럼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청함으로서 받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 청할 것이고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을 주실 것이다.
왜 우리는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가?
"청하고 두드리고 찾는다"라는 것은 내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완전한 존재라면 굳이 청할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으며 두드릴 것도 없다. 나는 늘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인정하는 이는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매일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청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고 청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찾지 않을 수 없고 주실 수 있는 분에게 달라고 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다.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리라"는 것은 하느님이 청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으면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즉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두드릴 때 그런 모습으로 발전하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투수는 세계의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서 매일 땀을 흘리며 투수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 그런 노력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경쟁사회에서 남아있을 수 없고 자기가 바라는 세계최고의 투수가 될 수 없다. 누구든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많이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지만이 가능한 것이지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청하지도 찾지도 두드리지도 않으면 절대로 자기가 바라는 대로 이루워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이지 하느님이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는 말씀 사이에 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청해야하는지 그리고 왜 청해야하는 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때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청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하느님께 청한다 하더라도 남을 심판하는 그런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고 했던 말씀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 좋은 것이란 "성령"이시다.
성령이란 우리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서 서로 화해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마태 18,15참조), 서로 마음이 갈라졌을 때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라는 것이요,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마태18,22)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할 때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청하고 노력할 때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가 가져야할 유일한 자세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것을 청해야하고 원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는다면 아무도 그것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청하고 찾아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청할 때 결코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야고보 사도는 "만일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야고보 1, 5-8)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우리가 기도를 할 때 간절한 마음으로 신뢰심을 가지고 겸손되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청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가장 강력한 힘
반영억라파엘
“기도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도 양보하시는 힘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특권입니다.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그 자녀의 필요와 염려에 관심을 나타내실 수 있는 길이고, 주 하느님나라의 창고는 기도로 열리며 믿음은 그 열쇠를 돌리는 것입니다.”(작자미상)
그런데 기도의 응답은 때때로 즉각 이루어 주십니다. 가르멜 산위에서 기도한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곧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천천히 적당한 때에 이루어주시기도 합니다. 다윗왕은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지만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케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이루어주지 않음으로 응답이 되게 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들어주어서 손해가 될 것은 들어주지 않음으로 해서 유익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큰 사랑으로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7,8) 라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바람이 많이 있겠지만 세속적인 만족과 위로를 찾고 구하기보다 먼저 하느님을 찾고 갈망하여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청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욕정을 채우려는데 쓰려고 청하기 때문(야고4,3)이라고 하였으니 헛된 수고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열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울지 않는 아이는 젖도 못 얻어먹는다.”고 했습니다. 먼저 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울 자리보고 발 뻗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들어주실 것을 청하십시오.
사실 문이라는 것은 열릴 때 열리고, 닫을 때는 닫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열고, 악에는 닫아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는 물론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와 명예, 명성의 유혹에는 문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열고 욕심의 입은 닫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고 따라서 우리는 받을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구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고마운 응답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되 내 뜻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길 바라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7,1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좋은 의향을 가지고 마음껏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반복해서 청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그분의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것입니다.”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우리의 바람과 기도가 헛되지 않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받을 때,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주님과 더불어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