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오 5,43-48)

2013. 2. 23. 오전 7:21:15

글자

2013년 2월 23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복음
<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5,43-48)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당신의 규정과 법규를 명하신다. 실천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과 목숨을 다해 지켜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말씀의 실천을 위해 율법 준수에 매달렸다. 율법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제1독서). 이웃 사랑의 정점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니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일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용서에 대한 마음을 지니면 은총이 함께한다(복음). 

 

오늘의 묵상

 

 

 

남을 미워하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사랑하라’고 합니다. 입으로만 말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남의 잘못을 ‘잊어버리는’ 행동입니다. ‘모른 척해 주는’ 행위입니다. 상대의 실수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랑’의 출발입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어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운한 것은 ‘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길에는 ‘사막’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지나면 삭막해집니다. 자신만 손해 보는 듯한 생각에 빠집니다.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좋은 결과’가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때로는 손해가 오고 오해도 생깁니다. 자신의 처신이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체험은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사막에는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그곳은 사막을 걷는 이만이 갈 수 있습니다. 낙타는 오아시스를 만나면 더없이 겸손해진다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사막에서 죽음을 체험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에 숙연해집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사랑의 길을 걷는 이는 ‘사막을 걷는’ 이들입니다. 언제라도 오아시스가 있음을 희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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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에너지는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일는지요?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삶의 의욕을 앗아 가는 이들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감동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담고 있는 언행과 몸짓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장애물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라고 느껴진다면 넘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 되돌아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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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평범한 삶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삶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자녀들은 무엇인가 달라야 하는데, 바로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만 좋은 감정을 지니는 사람의 특징은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금세 좌절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의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 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그 사람이 사라지면 이내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랑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 상대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자신에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사랑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기보다는 사랑은 ‘내가 먼저’라는 점을 깨우치도록 합시다.

 

- 양미강 목사-

 흑과 백은 분명한 색이다. 서로 섞이기 어렵다. 젊었을 때는 생각이 분명해서 흑과 백으로 나누었다. 그래서 ‘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세상은 흑백으로 구분될 수 없는 수많은 중간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일 과거사 문제해결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은 피해국, 일본은 가해국이라고 분명하게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가해와 피해라는 분명한 도식이 성립될 수 없는 회색 지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일본 강점기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일본 관동군 출신이었던 일본인 이케다 고이치 씨와 조선인 BC급 전범인 이학래 씨를 만나면서 내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 모두 80을 훌쩍 넘겨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백발의 노신사들이다. 한 사람은 일본 강점기 전쟁을 수행한 일본군으로 종전이 되자 하루아침에 구 소련군에 의해 하루 10여 시간 이상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전쟁 피해자다. 또 한 사람, 조선 사람인 그는 일본군으로 자원해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BC급 전범으로 몰려 교수형 판결을 받았다. 조국에서는 죄인,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 차별당한 피해자였다.

이 두 사람은 바로 흑과 백 너머에 서 있다. 이제 그들은 적이 아니라 동지다. 한일 과거사를 해결하는 데 국가를 뛰어넘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 원수 되게 하는지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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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에너지는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일는지요?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삶의 의욕을 앗아 가는 이들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감동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담고 있는 언행과 몸짓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장애물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라고 느껴진다면 넘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 되돌아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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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평범한 삶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삶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자녀들은 무엇인가 달라야 하는데, 바로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만 좋은 감정을 지니는 사람의 특징은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금세 좌절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의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 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그 사람이 사라지면 이내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랑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 상대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자신에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사랑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기보다는 사랑은 ‘내가 먼저’라는 점을 깨우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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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너머에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긴 사랑에 빠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1초면 된다고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 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도 사랑에 관계되는 것인데요, “사랑했다는 이유로 서로 60년 넘게 살아줘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사랑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하긴 많은 사람들이 연애할 때는 열정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많은 다툼과 분쟁이 생기게 되지요. 처음 가졌던 사랑을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완전한 사랑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사랑이 변하지 않는 사랑이 될 수 있도록,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섣부른 생각과 판단으로 완전한 사랑보다는 나 위주의 작은 사랑을 만들면서 애인의 관계를 원수로 만들 때도 참 많습니다.
즉, 그 작은 사랑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랑이 없어지려는 위기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전세 경비행기 한 대가 공중을 날고 있을 때였습니다. 조종사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곧 추락할 것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저를 포함하여 5명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낙하산은 4개 밖에 없습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그가 먼저 낙하산을 타고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이 앞 다투어 탈출을 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어떤 청년과 신부님뿐이었지요. 하지만 세 명이 탈출했으니 낙하산은 하나만 남았다고 신부님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청년에게 낙하산을 양보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청년이 이렇게 말해요.

“신부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은 두 개 남았습니다. 방금 탈출한 사업가는 낙하산 대신에 제 배낭을 메고 뛰었습니다.”

사랑을 버리려는 사람은 낙하산인지도 확인하지 않았던 사업가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고 조금 더 주의 깊게 생각할 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완전한 사랑으로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도저히 용서 못해.’, ‘저 사람 다신 안 만나면 되지 뭐.’, ‘저 사람을 다시 보면 내가 성을 간다.’ 식의 섣부른 판단은 이제 하지 말도록 합시다. 이런 말을 하면 할수록 주님과 나의 간격은 더욱 더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다. 고통의 숨결 속에서 영혼이 발육된다(바흐).

 

사랑의 신비

 -고계영신부-

 하느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사랑이시며, 이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고, 가장 참된 사랑입니다. 흠도 티도 없는 이 사랑은 형언할 수 없는 감미로움이며 찬란한 신비입니다.
사랑 자체이며 신비 자체이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아름답게 빛나는 당신의 이 지극히 감미로운 사랑을 영원히 관상하십니다.
성자께서는 사랑의 원천이신 성부의 사랑을 관상하시고 성부께서는 성부께 대한 성자의 절대적인 사랑을 관상하십니다. 성부로부터 나와 성자와 완전히 일치하시며, 성자로부터 나와 성부와 완전하게 일치하시는 사랑은 성령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완전한 감미로움이신 이 사랑을 서로 영원히 절대적으로 관상하는 관상의 하느님이십니다.
삼위께서는 당신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움과 빛을 서로 관상하는 이 영원한 사랑의 신비에 인간이 온전히 참여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이 바라심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완전성입니다. 완전해지지 않으면 완전한 세계에 결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완전성의 요구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인간이 흠없이 참여하기를 바라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최고의 배려이시고 완전한 사랑 고백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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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이 영원하리라 

반영억신부

소공동체 모임의 말씀나누기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한 형제님이 미운 사람을 용서하기가 너무도 힘들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면 자기도 모르게 치유를 받는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분도 그에 공감한다며
사랑이 중요하다. 사랑을 담아 그를 위해 기도하면 그도 좋아지고 나도 분명히 좋아진다. 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엮인 것을 풀지 않으면 세월이 가도 풀리지 않은 채 있습니다. 다 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미운 사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어떤 처방을 내리셨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5,44-4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원수를 골라서 사랑하라는 말씀도, 원수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가리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멘틱한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커다란 맛을 느끼는데 있지 않고 매사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한가할 수 없고 한가로운 사랑은 벌서 잘못되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참된 사랑에 불타는 영혼은 조금도 피로하지 않고 또 남을 피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십자가의 성요한). 따라서 십자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사랑,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에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 밖에 난 사람에게도 마음을 두어야 하고 허물을 안고 있는 상대방을 보면서 바로 나의 숨겨진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상처를 입힌 미운 사람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분명 그의 모습이 곧 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안에도 어둠이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든지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 그는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는 결국 나를 올곧게 살아가게 하는 빛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감사해야 하고 한편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의 허물은 그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이 그를 한 순간 이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사람과 마주치게 될 때 오히려 내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확인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는 시발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약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약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결코 자만하지 마십시오. 방심하면 한 순간에 어둠의 세력에 지배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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