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23,1-12)

2013. 2. 26. 오전 7:36:26

글자


2013년 2월 26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복음
<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태오 23,1-12)

 

말씀의 초대

 자신을 씻고 깨끗하게 살라고 하신다. 악한 행실을 치우고 선행을 베풀라고 하신다. 그러면 자비와 용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진홍빛 같은 죄악이라도 눈처럼 희어지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질책하신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게으름을 꾸짖으신다. 그런 삶은 진정한 지도자의 삶이 아니다. 올바른 신앙인의 삶도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헌신하지 않으면 누구나 게으른 생활에 젖게 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렇다고 육친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그렇게 받아들이면 어린이의 신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나를 있게 하신 분이며,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분입니다. 주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다. 진리는 주님께만 유보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정확한 이론도 그분 앞에선 참고 사항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진정 아는 사람은 고개를 숙입니다. 낮추어야 할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스승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인지천산 불여 천지일산(人之千算不如天之一算)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천 번을 계산해도 하늘이 한 번 계산함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하늘이 한 번 봐주는 것에 못 미친다는 말과 같습니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복음 말씀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늘의 힘이 개입하기에 그렇습니다.
☆☆☆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은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사야에게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은 이사야가 하느님을 이해하는 독특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이사야에게서는 다른 우상들과 절대 공유되어서는 안 되는 독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삶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배척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갖 종류의 우상 숭배와 하느님의 눈길을 피해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교만은 반드시 단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활을 버리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형식적인 예식으로만 일관하는 이스라엘에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 믿음을 증언하라고 외치고 있으며, 이렇게 하느님께 돌아온 죄인들은 그 죄가 아무리 다홍같이 붉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용서로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과,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가르침입니다.

  

<말하기에 앞서 먼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여기저기 ‘꼭 오셔서 귀한 말씀 나눠달라’는 곳에 자주 다니다보면 스스로 ‘이게 아닌 데’하는 생각과 함께 사람이 좀 이상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하느님의 말씀을 쉽고 간결하게, 또 재미있게 풀이해서 전해드리고, 지치고 힘들어하시는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일들이 절대로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본인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솔직히 별 것도 없는데 사람들 앞에 그럴듯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사람들의 호응과 박수갈채에 맛을 들여갑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극적인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과장해서 말도 하고, 거짓말도 자주 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 앞에 자주 서면 설수록 자신의 고유한 가치,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품위도 하락됩니다.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입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내면은 점점 공허해지고 자주 허탈감을 느낍니다.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은 감동받고, 환호하고, 감사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우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삶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들 역시 외면적인 삶은 그럴듯했겠습니다. 멋있게 차려입고, 어디를 가든지 귀빈석으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들의 명강의에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가르침 안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명설교 안에는 자신의 박학다식을 드러내려는 사적인 욕심만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하느님 말씀의 전달자로서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저 이벤트 회사 사람의 노련한 이미지만 풀풀 풍겼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 최고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떠벌이지 않고 늘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인생길을 잘 걸어가고 계십니다. 
 사사건건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묵묵히 온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 참된 스승으로서의 좋은 자질을 갖추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들, 말뿐인 사람들,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사람들, 언젠가 반드시 자신이 던진 말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말하기에 앞서 먼저 심사숙고하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사랑을 실천하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겸손의 덕을 갖추길 바랍니다.

푹 떨어지고 마는

 반영억라파엘신부

첫 여성대통령이 취임하였습니다. 산적한 과제를 안고 첫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말이 아니라 약속이 지켜지고 체감되는 날이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벌써부터 대선공약의 후퇴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 통합, 경제민주화, 문화융성, 보편적복지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아가면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높아지려고 하다가 하루아침에 낭패를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어서 만족시켜 주면 줄수록 그 요구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높아지려다가 오히려 푹 떨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자를 거꾸로 하면 자가 된다는 것을 생각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공자께서도
남의 선생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망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높아지려고 애쓰며 남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삶으로 말해야 하겠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은 당시사회에서 스승이요, 지도자로 행세하고 남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권위는 자기가 내세우기보다 남들이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2-3)고 하셨습니다.

높이 오르면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채워줄 수 있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넉넉해지고 자상한 어른이 되어야 하거늘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부끄러움만 더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지만 나와는 무관한 말씀으로 듣고 살아갑니다. 대접 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 길을 서슴없이 가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8) 고 말씀하신대로 사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삶으로 사랑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누가 먼저 인사하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인사할 수 있는 날, 누구에게 무엇을 시키기 보다는 솔선수범하는 날, 무엇을 기대하기보다 먼저 베푸는 은총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마태 23,1-13)
-유광수신부-

 

그 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아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제 자리가 있다. 우리는 저 마다 자가 자리를 알고, 제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은 눈의 자리가 있고, 입은 입의 자리가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가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가 있다. 선생은 선생의 자리가 있고 학생은 학생의 자리가 있다. 저마다 자기의 자리를 지킬 때 사회의 번영이 있고 가정의 평화가 있고 교회의 발전이 있다. 저마다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데에서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질서가 어지러워지고, 혼란과 멸망의 길로 전락한다.

 

저마다 제 자리를 알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을 한문에서는 수분(守分)이라고 한다. 제 분을 지키는 것이다. 수분은 질서와 평화와 번영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미의 원리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자리에 있을 때 건강하고 아름답다. 밥알이 밥그릇 속에 있을 때에는 이름답지만 얼굴이나 옷자락에 붙으면 아름답지 못하고 도리어 추하다. 그것은 제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사회는 제 각기 제 자리를 지키는 사회다. 그 자리에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있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는 다 제 구실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제 구실을 다 해야 한다. 우리말의 구실이란 말을 한문으로 옮기면 직분이요, 책임이요, 사명이요, 기능이다. 어머니가 되기는 쉽지만 어머니 구실을 다하기는 어렵다. 스승이 되기는 쉽지만 스승 구실을 다하기는 어렵다. 신자가 되기는 쉽지만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사제나 수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만 수도자나 사제의 구실을 다하기는 쉽지 않다. 인생의 의미는 저마다 제 도리를 다하고 제 구실을 다하는 데 있다. 인생은 사명실현(使命實現)의 자리요 직분완수의 무대이다. 인생은 놀고 즐기는 향락의 놀이터가 아니고 제 각기 제 구실을 다하고 제 도리를 다함으로써 제 빛과 제 의의를 드러내는 창조의 일터이다.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하고, 학교는 학교구실을 하고, 나라는 나라 구실을 다해야 하고 교회는교회의 구실을, 가정은 가정의 구실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제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이 별로 없다. 정치, 경제, 입법, 교회,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제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눈이 눈의 구실을 다하고, 위가 위의 구실을 다하고, 간이 간의 구실을 다 할 때 우리의 몸은 건강하다. 눈이 보는 구실을 못하고, 위가 소화하는 구실을 못하고 간이 영양저장의 구실을 못한다면, 우리의 신체는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구실, 어머니는 어머니의 구실, 선생은 선생의 구실, 사제는 사제의 구실, 수도자는 수도자의 구실, 평신도는 평신도의 구실을 다할 때 이 사회가 교회가 건강하고 발전한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모세의 자리란 어떤 자리인가? 모세는 하느님한테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이끌어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간 이스라엘백성의 지도자요, 목자이다. 그는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중간 위치에서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였고 하느님의 분부대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간 사람이다. 그는 하느님께 충실한 종이었고 또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충실히 전달한 지도자요, 목자였다. 모세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 일하지 않았고 자기의 뜻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백성의 지도자로서 흠없는 자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충실하게 봉사하였다. 모세는 한마디로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백성의 지도자로서, 하느님의 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요, 목자로서 자기의 직분에서 자기의 구실을 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세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의 나이 120세 나이로 그의 사명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자리를 이어 여호수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가나안 땅에 이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세의 자리를 이어받는 이들의 사명과 역할이 조금씩 흐려졌고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였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즉 세월이 흐르면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제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백성들에게 봉사하고 모범을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영예와 존경을 받는 자리로 삼았다. 즉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들의 이익과 영예를 위해서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며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 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였다.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던지 아니면 잘못 알고 있었든지 둘 중에 하나의 삶을 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기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 또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자기의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다. 어느 한 사람만이 잘해서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올바르게 해줄 때 사회가 건강해지고 가정이 그리고 공동체가 교회가 단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 사람의 자리와 역할이 어떤 자리 어떤 역할이냐에 따라서 그가 끼치는 영향은 다를 것이다. 세계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의 자리는 세계 모든 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부시의 오만하고 탐욕 때문에 전 세계가 전쟁의 불안 속에 떨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수많은 생명이 죽어갈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이다.

 

결국 나의 삶은 내가 사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기가 져야 한다.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한 마지막 심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역할과 사명을 맡기신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자리와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하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평가는 그리고 책임은 주님이 하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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