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마태21,33-43.45-46)

2013. 3. 1. 오전 7:47:20

글자


2013년 3월 1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마태21,33-43.45-46)

 

 말씀의 초대

요셉은 아버지 이스라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이 때문에 형제들의 질투를 사게 된다.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하였지만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긴다. 결국 요셉은 이집트로 끌려가게 된다(제1독서).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소작을 주어 포도 농사를 짓게 한다. 수확 철이 되자 포도밭 주인은 종을 보내어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게 한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은혜를 잊고 종들을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매서운 비유 말씀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려고 당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죄인들과 세리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예수님께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큰 위험이 닥치고 있음을 알아차리십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말씀을 통해 그들이 회개하도록 끝까지 호소를 하십니다. 이 마지막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께서 많은 수확을 내라고 주신 포도밭입니다. 우리는 그 포도밭의 소작인들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우리가 성실하게 일하여 좋은 포도를 수확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땀 흘려 포도밭을 가꾸어 주인에게 성실히 도지를 내기를 바라십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마냥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회개의 기회는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여기’에서부터입니다.

 ☆☆☆ 

소작인들은 겁이 없습니다. 소작료를 내지 않을뿐더러, 주인이 보낸 종들을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주인이 보낸 아들마저 죽입니다. 그러고는 아들의 상속권을 가로채려 했습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렇게까지 할 소작인들이 있을는지요? 유다인들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제대로 주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깨우침을 전하러 온 예언자와 예수님을 학대하고 죽이려 든다는 비유입니다.
조선 초기의 한명회권람은 세조의 즉위를 도운 일등 공신입니다. 정국이 안정되자 두 사람은 견제 세력으로 바뀌지요. 그러다 한명회의 딸이 성종 비로 간택되자, 권람과 그의 사위 남이 장군은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유자광을 찾아가, 세조의 장례식 때 쿠데타를 일으켜 한명회를 없애자고 합니다. 하지만 유자광은 거절합니다. 이후 계획은 탄로 났고, 남이는 숙청되고 맙니다.
유자광이 남이에게 동조했더라면 한명회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한명회는 유자광마저 제거하려 듭니다. 그리하여 성종을 움직여 유자광을 경상도 동래 땅으로 귀양 보냅니다. 그런 뒤에도, 유자광이 남이 장군을 거짓 밀고해 죽게 했다는 소문을 만듭니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것이지요. 역사에 남아 있는 유자광에 대한 억울함입니다. 복음의 소작인들은 우리 역사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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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賊反荷杖

 복음에서의 포도밭 임자는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칩니다. 포도 을 만들고는 탑까지 세웁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먼 길을 떠납니다. 고맙고 여유 넘치는 주인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포도밭을 그렇게 맡기셨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은 주님께서 맡기신 포도밭인 셈입니다.
많은 이들은 포도밭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소출을 받으러 온 사람들을 외면합니다. 더러는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늘의 힘을 차단하는 행동입니다. 복음의 비유는 유다인만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기대를 걸지 않았던 이들이 소출을 바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 사람들인지요? 언제라도 삶의 원인은 주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고통은 그분께서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소출을 바치는 삶입니다.
인생의 포도밭은 우리가 가꾸지만 마무리는 주님께서 하십니다. 원래 그분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무 꽉 쥐고살면 안 됩니다. 때가 되면 돌려줄 것이란 생각을 가끔은 기억해야 합니다.

☆☆☆

의형제를 맺은 도둑 세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협동하여 부잣집을 털어 큰 재물을 얻었습니다. 도둑 한 명이 자신들의 성공을 자축하고자 술을 사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남은 두 명은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공모하였습니다. “우리 합심하여 저놈이 올라오면 즉시 죽여 버리자. 그러면 우리 몫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 두 도둑은 술을 사러 간 그 하나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한편 술을 사러 간 도둑도 한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 저 두 놈을 죽이면 그 많은 재물이 다 내 차지가 될 수 있을 터이니 저놈들을 죽여 버리자.’ 이윽고 마을로 내려간 도둑이 돌아오자 남은 두 명이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뜻을 이룬 둘은 서로 축하하며 마음껏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도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마신 술에는 이미 독약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결국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포도밭 소작인들이 주인의 종들과 그 아들까지 죽이고 자신들이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하자, 주인은 그 악한 소작인들을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다른 소작인들에게 그 포도밭을 맡깁니다. 우리는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상의 욕심으로 그나마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은총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신헌문 신부-

 하도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라는 말을 합니다.
이 뜻은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설친다는 뜻’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말이나 되는 일이겠습니까?
잘못한 이가 오히려 성을 내며 몽둥이를 들고 설치다니요?
오늘 복음이 딱
그 광경입니다. 포도밭 소작인들이 주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의 아들까지 죽이며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무서운 음모와 폭력을 휘두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나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도리를 겸손되이 잘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남의 것을 넘보고, 욕심내지 않는지 말입니다.
요즈음 시끄러운 정치판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국민을 위한 일꾼이 되겠습니다.’라고 늘 말하는 정치꾼들이 자리만 차지하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뜻’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당략과 안위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다니는 모습이 딱 오늘  이 복음에서의 소작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우리는 진정
성실한 ‘소작인’인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 것이 내 것? 내 것이 하느님 것!

-김태완 신부-

 예수님의 비유를 들으며 우리도 착각 속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것도 아닌데 내 것인 양, 내가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는데 가질 수 있는 양.’ 우리 삶에서 하느님이 우리한테 맡겨주신 포도밭은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시간을 주셨습니다. 재물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하느님 몫의 소출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받은 포도밭이 내 것이 된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것이 될 것처럼 행동합니다.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기도로, 봉사로, 봉헌으로, 사랑으로 갚아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일부러 모른 척 하기도 합니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하는 어느 성가 가사처럼 세상의 기준으로 편하게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우리한테 모든 것을 맡겨주심으로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하느님을 모른 척 한다고 될 일이 아닌데, 우리는 가능하다고 착각합니다.

적당히, 눈치껏 요령을 피우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요? 아들을 죽이고 상속재산을 차지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십니다. 우리가 못 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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