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봉헌 축일 / 봉헌 생활의 날

2013. 2. 2. 오전 6:44:24

글자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


중심 미사 직전에 초를 축복한다. 교우들은 “보라, 우리 주님…….”이란 노래를 부를 때 촛불을 켠다. 초를 축복한 후 행렬을 하거나, 성대한 입당식을 가질 수 있다. 성당에 들어오면서 ‘시메온의 노래’나 ‘입당송’을 하고 곧 ‘대영광송’을 한다. 주례 사제는 예식 시작 때부터 제의를 입을 수 있다.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6세기에는 시리아에서 이 축일이 거행되었고, 로마는 7세기 후반에 이를 받아들였다. 8세기 중반에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18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주님 봉헌’으로 바뀌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황청 수도회성은 해마다 맞이하는 이 봉헌 생활의 날에 모든 신자가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루카. 2,22-40)

 

 

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성전에 홀연히 나타나시어 이스라엘의 제사를 정화하심으로써 주님 마음에 들도록 하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이러한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봉헌되심으로써 성취되었음을 드러낸다. 시메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자신의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가운데 한 분이 꿈에 그리던 가족을 상봉하고 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꼭 하고 싶던 일을 마침내 이루었을 때 흔히 이런 말을 씁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목적하던 바를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메온이 바로 이런 경우라 하겠습니다. 시메온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이 위로받는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정결례를 위해 봉헌하러 오신 마리아와 요셉에게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시메온은 자신이 평생을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임을 깨닫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실 이런 기다림의 삶입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내가 믿고 기다리는 주님을 삶 속에서 깊이 깨닫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년을 넘게 살든, 단 몇 년을 살든, 중요한 것은 주님을 깊이 깨닫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놓고 나면 우리 인생에 무엇이 남을 수 있는지요? 지금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을 깊이 만날 때입니다.


☆☆☆

  

주님, 시메온의 희망을 이루어 주셨으니,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주님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고, 시메온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기쁨을 누렸던 것처럼, 저희도 주님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율법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를 일정 기간부정한 몸으로 규정해, 남편과 떨어져 있게 했습니다. 몸에 피를 묻혔기 때문입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33일간이었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66일간이었습니다. 이 의식이 정결례의 핵심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내아이는 7, 여자아이는 14일로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뒤, 사내아이는 성전에 봉헌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셨기에 주님께 드린다는 종교 예절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굉장한 마음가짐이지요. 그리고 형편에 따라 새끼 양이나 비둘기를 봉헌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비둘기 한 쌍을 바치십니다.
신앙인 역시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성사로 주님께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사건을 그분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기쁘고 즐거운 일에는 봉헌이 쉽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일에는 힘이 듭니다. 억울한 사건을 주님께서 주셨다고여기는 것은 신앙 없이는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봉헌의 삶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시메온과 한나를 만나십니다. 그분들이 우연히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평생 의롭게 살았기에 구세주를 뵈올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신심 깊은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삶의 봉헌

- 이진원 신부-

 

무언가를 봉헌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유다인들이 아기를 봉헌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아기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아기를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얼마나충실히봉헌하느냐가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것이 물질만이 아니듯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물질만은 아니다. 우리가 받은 시간
?·?재능?·?에너지, 심지어 마음까지도 우리가 봉헌할 수 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기도?·?삼종기도?·?성체조배?·?묵주기도와 같이 시간을 내어 드리는 기도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내가 가진 재능과 능력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나를 봉헌하는 것이다.
수도 생활은 다른 말로봉헌생활
?이라고 부른다. 삶의 전부, 순간순간을 모두 봉헌하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도 삶의 순간순간을 봉헌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그 순간의 나를 봉헌하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기도로 시작하고 끝맺는다면, 그것 역시 봉헌하는 것이다. 내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해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내는 그만큼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다. 그것은 봉헌생활을 하는 수도자만 맛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봉헌하는 그만큼 맛볼 수 있다. 내 일상을 봉헌하면 삶 전체를 봉헌하는 것이 된다.


봉헌생활의 날에...

-오상선신부-


오늘은 예수님의 봉헌축일인 동시에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수도자들의 봉헌축일이다.
이름하여 <봉헌생활의 날>이라고 한다.

수도생활을 봉헌생활(Vita Consecrata)라 칭함은
아마도 수도생활의 본질이 '바치는 데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바치는 삶, 비우는 삶,
결국 자신은 없어지는 삶이 수도생활이란 말일게다.

수도자들의 날을 맞이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얼마나 주님께 바쳐드리고 있는지 반성해봐야겠다.
내년이면 수도서원 은경축을 맞게 되는데
과연 내 삶이 바치는 삶이었는가?
끝없이 비우는 삶이었는가?
끝없이 자신을 죽이는 삶이었는가?

정말로 내가 봉헌의 삶을 제대로만 산다는
내가 없어져 있기에
그 어떤 오욕칠정에도 사로잡힘이 없이
늘 복됨을 누릴진대
아직도 그렇지 못함은
이 봉헌생활이 온전히 성취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모 수녀원 종신서원식에 참석한다.
종신서원은 바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서약이다.
수도생활은 이렇게 끊임없이 바쳐드리는 삶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치고 또 바치고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의 목숨을 바쳐드림으로써
봉헌생활을 완성하게 된다.

봉헌성가를 부를 때마다
내 몸과 맘을 다 바쳐드리오니 받아달라고 하지 않는가?
수도자의 삶은 봉헌성가를 진정으로 몸으로 부르는 삶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진정한 봉헌생활이 될 수 있으리라.

오늘,
내가 아는 수사님, 수녀님들께
축하인사를 드리자.
오랜만에 메일이나 전화라도 드리면 어떨까?
자신을 태워 없애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처럼
늘 자신을 내어놓고 버리고 바쳐드림으로써
봉헌생활을 완성하시도록 기도해 드리자.

그 옛날 예수님께서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상의 봉헌으로 봉헌생활을 완성하셨듯이
모든 수도자들도
자신의 서약으로 봉헌한 삶을
끊임없이 버리고 바쳐드리는 삶을 통해
완성에로 나아가시도록 말이다...

모든 수사님, 수녀님들 축하드립니다!
더욱더 봉헌의 삶, 아름다운 비움의 삶에 정진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성소가 아니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성소로 불러주신 주님께 오늘 하루
질퍽하게 감사를 드립시다!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신앙인
-
경규봉 신부-


모든 수확의 첫물은 하느님의 것이다. 사람도, 가축도, 곡식도 첫물은 하느님의 것이다. 모든 첫물은 다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맏아들 대신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의 모든 맏배 대신 레위인들의 가축을 구별하여 세워 나 야훼의 것으로 삼아라.”(민수 3,41)는 말씀에 따라 첫 물을 직접 바치지는 않았다. 다만 첫아들을 낳은 경우 속죄의 예물로 다섯 세겔(1세 겔은 하루의 품삯)을 바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첫아들이셨기 때문에 속죄의 예물을 봉헌해야 했지만, 굳이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 성인과 성모님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셨다. 이는 곧 사무엘 상권에서 한나가 사무엘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처럼 예수님을 온전히 하느님의 아들로 봉헌하고자 함이었다.

예언자 사무엘은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으로 성별되어 일생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았다. 그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어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축성되어 사시도록 한 것이다.

예수님의 일생을 보면 예수님이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신 분임을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당신의 뜻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셨고,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하셨으며, 자신의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셨다.

오늘 주님봉헌축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봉헌되셨음을 기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봉헌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겠다. 우리가 성전에서 우리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여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 하는 것이 더 좋다.

우리가 하느님께 내 자신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벌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마태 6,5)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 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 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의 생 각과 말과 행위를, 나의 온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자..........◆

 

기다림의 기쁨

 반영억라파엘신부

오늘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주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었듯이 우리도 매순간 자신을 주님께 봉헌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제단의 초를 바라보며 자신을 불태워 빛을 밝혀야 하는 사랑의 응답을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시메온이라는 사람은 의롭고 독실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알림을 받았고, 이스라엘에 내려질 위로, 곧 메시아가 가져다 줄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아가 장차 오리라고 선언하였지만 시메온은 메시아를 직접 보았습니다. 이는“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 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이사52,10)한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메온은 의롭고 독실하기에 끝까지 기다릴 줄 알았고 마침내 주님을 직접 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시메온은 기다림의 열매 앞에서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안히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2,29-32).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옛말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희망하는 대로 살아감으로써 행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열망이 있는 만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으로 기다림을 간직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게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 것을 갚는 일”(시편50,14).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12,1)라고 말합니다. 사실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 되었고 만국의 빛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거룩한 삶을 봉헌함으로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만민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구원을 우리가 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듯이 하십시오! 또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있는 듯이 기다리십시오”(성 이냐시오). “우리가 그분께 드릴 것이 정령 아무 것도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자체를 드리기로 합시다”(마더 데레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어떤 기다림이든지 그 간절한 기다림이 하느님 마음에 들어 기쁨이 되고 복이 되길 바랍니다. 기다림의 열매를 가지고 주님을 증거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기다리시며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려고 일어서신다. 주님은 공정의 하느님이시다. 행복하여라, 그분을 기다리는 이들 모두!(이사30,18) 사랑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